집안일

3월 17일

by 란님


어젯밤 늦게까지 빨래하고 가계부를 적다 잤더니 피곤하다. 7시 30분, 눈을 떠보니 눈 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토끼처럼 셋째 아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반갑다고 미소 짓는 걸 보니 이미 한참 전에 깨어있었나 보다. 아이를 안고 조금 더 자다가 8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양치하고 세수하며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에게도 칫솔과 옷을 가져다준다. 물통을 조립하여 물을 받으면서 계란프라이를 굽고, 접시와 빵, 딸기잼, 우유를 준비한다. 세수를 마친 아이들에게 로션과 선크림을 발라주고 머리를 빗어준 다음 함께 앉아 아침식사를 마쳤다. 어제 여벌옷을 써버린 둘째를 위해 어젯밤 세탁해 둔 옷을 지퍼백에 담아 가방에 넣어준다.


식탁에 우유를 쏟은 것 외엔 아무런 돌발상황이 없었던 덕분에 여유롭게 준비하여, 시간 맞춰 등원시켰다. 할 일이 아주 많은 날이라 서두른다. 일단 이불빨래부터 시작하고 화장실 청소를 마친다. 어제 저녁에 했어야 할 집안일(쓰레기 정리, 식기세척기 속 그릇 헹구기, 건조기 빨래 정리)부터 해놓고, 오늘 할 일(아침 먹은 거 치우기, 쌓인 설거지, 집안 정리)을 시작한다. 배가 고길래 버거세트를 시켜 밥을 먹고, 자리에 앉아 가계부 정리를 다시 시작한다. 세탁과 건조 과정을 마친 이불을 다시 깔기 위해 침대 청소도 해두어야 한다.


어젯밤에는 지난달 가계부만 정리했는데, 수작업으로 입력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니, 28일 치를 몇 시간 만에 다 적었으니 효율적이라 봐야 하나? 아무튼 오늘은 조금 귀찮더라도 각종 보안프로그램들을 설치한 후 카드사 홈페이지에서 정리된 엑셀파일을 받아서 1년 치를 모아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지금껏 가계부를 정리하지 않았던 것은 나의 모든 소비가 청구서에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세무사 사무실에 기장대리를 맡기듯 나의 금전기록은 금융기관들에게 맡겨두었다. 이젠 그 자료를 찾아와 정리 분류하고 활용할 차례이다.


노트북을 통해 카드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본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요즘은 다들 모바일로 옮겨가는 데다, 앱으로 안 되는 일은 고객센터에 전화하여 해결하다 보니 컴퓨터를 쓸 일이 없었다. 이용 고객의 수가 줄어서 그런 걸까, 홈페이지의 편의성은 수년 전에 비해 별다른 발전이 없어 보인다. 카드사 홈페이지를 이동할 때마다 요구하는 프로그램이 달라 매번 보안프로그램을 새로 깔아야 했다. 심지어 농협카드는 열 번 넘게 다시 깔아도 계속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을 깔도록 요구하였기에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채 하원시각 맞았다.


컴퓨터로 금융사를 이용하는 것은 정말 화가 나는 일이다. 십 년도 훨씬 전에 미국 은행 인터넷뱅킹을 이용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IT 선진국인 우리나라가 금융 면에서만은 오히려 더 힘든 것 같다. 한 시사 유튜브 채널에서 분석하기로, 미얀마 등지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납치하는 범죄가 많아진 이유 중 하나가 모바일뱅킹의 간소화라고 하던데(휴대폰만 뺏으면 손쉽게 대출 가능), 인터넷뱅킹만 가능한 시대였으면 확실히 더 어렵긴 했으리라.


하원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이 손에 뭔가를 들고 있다. 오늘 오감놀이 수업을 했다더니 맛있는 카나페 간식을 만들어 왔다. 너무 예쁘게 담아왔길래 사진을 남겨주었다. 간식을 먹겠다고 마음이 부풀어 있길래 저녁식사 시간을 조금 앞당기기로 한다. 오늘 메뉴는 볶음밥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냉동실에 이미 준비되어 있던 재료들을 꺼내어 볶았다. 맛이 좀 밍밍할 것 같아 스팸도 한 캔 썰어서 넣었다. 재료를 익힌 다음 밥과 참기름을 넣어 비비면서 조금만 더 볶아주면 준비 완료다. 식사를 마친 후 카나페가 담긴 상자를 열었는데, 오전에 만들었던 거라 이미 크래커가 눅눅해져 거의 먹지 못해 아쉽다.


아이들이 간식타임을 가지는 동안 나는 옆에 앉아서 글을 쓴다. 신랑은 이제야 골프를 친다는 걸 보니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오긴 힘들겠다. 목욕물을 받는 동안 환기를 하며 설거지를 넣어놓고, 식기세척기가 일하는 사이 아이들을 씻긴다. 아이들 셋을 씻긴 후에 나도 서둘러 씻고, 식기세척기 안에서 물병 세 개만 먼저 꺼내어 소독하여 엎어둔다.


다른 책 말고 에그박사만 많이 읽어달라는 아이들을 위해 에그박사 에피소드 3가지를 읽어주었다. 누우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우유를 마시겠다고 하여 스스로 다녀오라고 했다. 돌아온 아이들에게 거실 불은 껐는지 확인한 후 다리를 주물러주고 잠자리에 들었다. 어제 늦게 잔대다 오늘 고군분투로 바빴더니 피곤하여, 신랑이 오는 것도 확인 못한 채 그냥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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