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등원버스가 떠난 자리에 서서 뒷모습을 바라보다, 초록색으로 바뀐 보행신호에 길을 건넌다. 옆동네 오일장을 구경하러 간다는 지인들을 따라가기로 했는데 시간이 10분 정도 남았다. 집에 다녀오는 건 실익이 없으니 차라리 조금 걷기로 했다.
매일 아침 아이들 옷을 고르기 위해 오늘의 날씨를 확인한다. 기온, 바람의 세기, 강수확률, 미세먼지를 잘 살핀다. 오늘은 낮기온이 포근하다고 하여 가볍게 나섰는데, 그늘진 거리를 걸으니 꽤 쌀쌀하게 느껴진다. 아이들 옷이 충분히 두꺼웠던가를 떠올려본다. 차를 가져오는 지인이, 다른 지인을 먼저 픽업한 후 나를 픽업해 주기로 하였다. 계속 움직이다간 길이 엇갈릴 것 같아 10분만 걷고 멈추어 섰다. 잠시 후 나타난 익숙한 차량에 탑승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전통시장 오일장을 구경하러 나온 게 얼마만이더라. 신랑과 알콩달콩 신혼생활 중이던 시절 정선 오일장에 가본 것이 마지막인 것 같다. 그게 벌써 7~8년은 족히 지난 일이라니 우리의 역사가 길고도 깊다. 그때 그 사람이 그리운 것은 피차일반일까.
하천 둑방 길에다 주차를 마치고 그곳부터 시장 깊숙한 곳까지 이어지는 장막의 행렬을 따라 이동한다. 봄이라 그런 물품이 많이 나온 건지, 눈이 봄을 좇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화원과 봄나물이 많이 보였다. 도착하자마자 현금부터 준비하는 지인에게 부탁하여 나도 돈을 찾는다(더 뽑아달라 부탁하고 송금해 주었다).
오늘 따라나선 이유는 이들이 시장에 가서 호떡과 어묵, "도나스"를 사 먹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배가 고팠지만 군것질해야 할 게 많기에 꾹 참고 왔다. 수다 떨며 시장을 구경하다 호떡(나는 2개나 먹었다)과 어묵을 사 먹고 나니 배가 불러 도나스는 먹지 못했다. 포장해올까 싶었지만 식으면 그 맛이 아니라는 말에 참았다. 마트에서 장을 보면 채소나 과일의 퀄리티가 실망스러울 때가 많은데, 이곳 시장은 신선하고 알이 굵은 식자재들이 저렴하기까지 했다. 저녁 먹을 때 신랑에게 우리도 이제 오일장 가서 장을 보자고 했는데, 가겠다고 하면 핸드카트를 끌고 가야겠다.
구경하다 보니 사고 싶은 것이 잔뜩 있었지만 오후 일정이 있었기에 무거운 짐을 피했다. 현금을 써야 한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한 달에 한 번 큰 단위의 숫자만 접하게 되고 쓰기 간편한 신용카드와 달리, 내 주머니 속 돈은 만져지고 눈에 보이는 데다 제한적이다. 손안에 가진 만큼만 써야 한다는 압박이 크게 다가온다.
시장 근처 식당에서 짬뽕을 먹기로 했었으나 가게 오픈까지 1시간이나 남았다. 근처의 다른 맛집에 갈까 했더니 하필 목요일이 휴무일이란다. 어쩔 수 없이 돌아오는 길에 다른 식당에 들렀다가, 야외정원이 멋진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다. 오늘 모인 세 명은 성격도 의견도 다른데 존중할 줄 아는 관용과 따뜻한 마음이 있어서 같이 이야기하는 게 재밌었다. 드라이버를 자청한 지인은 시간에 맞추어 나를 오후일정에까지 데려다주고 갔다. 고맙고, 참 따뜻하다.
오늘부터 매주 목금 5일에 걸쳐 이 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한 수업을 듣는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한 게 많지만 아는 것이 없어 아쉽던 차에, 적합해 보이는 교육이 있길래 신청하였다. 지역의 역사문화와 아이들 체험수업에 관한 이해를 동시에 높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오늘은 첫날이라 지식 전달과 함께 아이들이 한다는 체험을 3개나 해보았는데 꽤 재미있다. 지역 축제에 가서 아이들 체험을 볼 때마다 '별거 없네' 싶어 심드렁했는데 직접 하게 되니 꽤 재밌었다. 아이들은 더 재밌다고 느끼겠지.
교육장이 있는 동네는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라 택시가 안 와줄까 봐 걱정했는데, 신랑이 데리러 와 편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 어제 못 먹은 샤브샤브를 오늘 먹기로 했다. 차를 세워놓고 한구석에서 흡연하는 신랑의 뒷모습을 보니 그리운 느낌이 든다. 신랑이 나를 기다려주는 모습을 보는 게 오랜만인 것 같기도 하고, 2년 전 봄에 이곳에 벚꽃을 보러 왔던 기억도 났다.
잠이 든 아이들을 차에서 조금 더 재우다가, 너무 늦지 않게 깨워 식당으로 들어갔다. 샤브샤브는 맛있지만 할 일이 너무 많다. 같이 간 일행이 스스로 챙겨 먹기 힘든 사람이라면 할 일은 더욱 늘어난다. 다행인 건 신랑이 샤브샤브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신랑이 아이들을 더 챙기는 동안 나는 더 먹을 수 있다. 외식할 때 식당에서 만큼은 아빠가 주양육자가 된다.
맛있게 먹고 귀가하여 아빠가 아이들을 씻기는 동안 나는 아이들 물병을 꺼내어 설거지하고 소독하고, 청소기 돌리기, 아이들과 대화하기 등의 일을 한다. 요즘 들어 부쩍 말이 많아진 아이들 셋을 혼자서 상대하는 것은 꽤나 버거운 일이다. 셋이서 함께 말할 때는 물론이고, 하나씩이지만 번갈아가며 연이어 나타날 때도 그렇다. 나는 내가 멀티태스킹에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보니 전혀 아니었다. 아이들의 말에 좀 더 성의 있게 대답해 주고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시간과 체력이 많이 부족하여 미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