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눈을 뜨니 7시, 셋째가 금방 깨길래 날씨를 검색한 후 적당한 옷을 골라 꺼낸다. 셋째의 환복이 끝날 무렵 둘째가 깨어나고 곧 첫째도 눈을 뜬다. 차분한 아침이다. 모여 앉아 시리얼을 먹은 후 등원 준비를 마친 아이들이 유치원으로 떠나면, 집안일을 시작한다. 오늘은 외출 후 종일 바쁘지만 외출까지 1시간 반 가량이 남으니 할 일을 해놓고 갈 생각이다. 가장 먼저 건조기 속 빨래를 꺼내어 정리하며 세탁기를 돌렸다. 화장실을 청소하고, 가계부 작성을 위한 지출 자료를 다운로드하여 정리해 놓은 후에 다 된 빨래를 건조기에 넣어놓고 외출했다.
예전에 가본 곳이라 차로 1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것 같다 계산했는데, 기사님이 도심으로 둘러 가시는 바람에 17분이나 걸렸다(휴대폰으로 다른 걸 보고 있느라 몰랐다). 일부러 다리를 건너가기 좋은 위치로 나가서 택시를 탔건만, 다리를 건너면 차가 막힐 것 같아 도심으로 왔다 하신다. 오늘은 주말도 아니고 지금은 아직 오전이기에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실제로 지나오며 보니 그쪽 방향 차도도 한산했다), 따지고 싸우기엔 시간차도 요금차도 크지 않기에 "아 그래요?" 하고 그냥 내렸다. 정말로 손님을 위한 거였다 생각하는 게 마음 평온할 것 같다. 아니, 그래도, "이쪽으로 오면 신호가 훨씬 많아서 더 오래 걸려요" 정도는 말씀드릴 걸 그랬다. 다음에 또 만나서 다시 이리로 올까 걱정이 된다.
작년 겨울에 한 번 방문한 이후 처음 와본 댄스학원은 오래된 건물 4층에 위치하여 올라가는 길이 무척 괴롭다. 어둡고 가파르고 좁은 계단이 쭉 이어진다. '맞다, 여기 이랬지, 요즘 무릎도 아픈데 괜히 신청했나' 생각하며 올라가 보니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선생님도 여전히 에너지와 카리스마가 넘치시는 것 같아 자극이 된다. 첫날부터 늦은 게 민망하여 조용히 들어가고 싶었으나 댄스학원이다 보니 사방이 거울이라 쉽지 않았다. 재밌는 것은 3시간 가까이 스트레칭과 운동을 하고 나니 무릎이 안 아팠다는 것이다. 운동할 시간을 따로 내기가 힘드니 이 수업이라도 열심히 나와야겠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택시를 타고 다른 교육장으로 이동하였다. 점심도 못 먹고 음료 하나 살 시간 없이 달려갔어도, 가는 데 한참이 걸리다 보니 15분 정도 늦게 도착하였다. 이곳은 거울도 없고 미디어 수업을 위해 조명도 꺼져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남은 자리가 맨 앞뿐이라 눈에 띄지 않고 들어가는 것에는 또 실패하였다. 지각쟁이로 낙인찍히면 안 되니, 다음 주에는 시간을 잘 배분하여 늦지 않아야겠다.
오늘 수업은 이 지역을 그린 예술작품들을 찾아보는 시간이었는데, 딱 내가 알아보고 싶던 내용이라 흥미진진하게 빠져들었다. 그런데 2시간 교육 후에 나머지 2시간은 공부한 풍경을 직접 찾아보기 위해 다른 동네로 나간다고 하셔서 난처했다. 다행히 뚜벅이들을 위해 차량 공유를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뒷자리에 앉으셨던 분의 차를 얻어 타고 가기로 했다. 내 옆자리셨던 분이 나와 함께 그 차에 탔는데, 두 분 다 성품이 온화하셔서 무난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나가는 길에 마실거리를 하나 사드리고 나니 최소한의 보답은 한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덜 무거워졌다. 돌아오는 길에도 사시는 곳을 지나 시내까지 들어와 내려주셨기에 더욱 감사했다.
신랑은 하원한 아이들을 데리고 소아과에 가서 1시간째 대기 중이라고 했다. 감기까진 아닌 것 같은데 아이들이 계속 비염증세를 보이기에 주말 전에 소아과에 들러 달라고 내가 부탁했다. 하원할 시각 즈음에 본 대기자 목록은 분명 8명이었기에 미리 대기를 걸지 않았는데, 아이들을 픽업하여 이동하는 사이에 대기가 많이 쌓였나 보다. 소아과에서 가족상봉한 후에 커피를 하나 사들고 집으로 왔다. 60프로 쿠폰이 발급되는 날에는 샷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구매해와서 냉동실에 얼려둔다. 나가기 귀찮은 날에도 집에서 손쉽게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위해서이다. 집에 오니 미리 주문해 둔 마트 식료품과 반찬가게 반찬이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밥만 얼른 안친 후, 계란프라이를 굽고 나머지 반찬은 데워 내어 간편하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먹은 걸 치우고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까지 정리한 후 씻으니 벌써 10시가 다 되었다. 원래라면 책을 읽어주고 다리를 주물러준 다음 잠을 청하겠지만, 너무 피곤하여 책은 못 읽어주겠다 하고 다리만 주물러주었다. 책을 읽고 싶다며 서럽게 우는 첫째를 보니 기특하면서도 미안하다.
'이게 울며 졸라야만 해줄 수 있는 일인가, 나는 대체 어떤 부모란 말인가.'
자괴감이 든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피곤하다. 종일 바쁘게 쫓아다니고 점심도 굶고 오랜만에 운동한 데다 걷기도 많이 걸었단 말이다. 더군다나 마음과는 다르게 아이들도 지금 무척 졸려하고 있으니, 내일 아침에 꼭 읽어주겠다고 타협하고 그냥 자기로 했다. 아이들이 거의 눕자마자 잠들어준 덕분에, 조금 남은 정신을 부여잡은 채로 일기를 마저 써서 브런치에 올리고 나도 꿈나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