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준비

3월 27일

by 란님


서울로 놀러 가는 날인데, 행 준비를 하나도 못했다. 어젯밤까지도 멤버 확정을 못했기 때문이다. 다 같이 가는 걸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첫째가 집에 있겠다고 하였고 신랑은 얼씨구나 거기에 동조하는 바람에 이리되었다.


주말이라 가족나들이 가려는 건데 나누어서 가면 의미가 반감된다. 더구나 월요일에는 어차피 포항에 같이 가야 하기에 동선도 복잡해진다. 물론 나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있다가 기차를 타고 포항에 가는 방안도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 얄밉기도 하고 집에서 포항까지 1박 2일 왕복하게 되면 차 타는 걸 힘들어하는 첫째에게 무리한 일정인 것 같다. 그럼 일요일에 하루 일찍 포항에 가겠다고 말했지만, 어차피 가족을 위해 일요일을 쓸 거면 모두에게 쓰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나? 무엇보다 토요일 오전에 온 가족이 다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걸 빠진다는 건 너무 서운하다.


말을 들은 신랑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는 없어"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내가 아이들에게 종종 쓰는 건데, 단어 그대로 기억했다가 돌려주는 걸 보면 아닌 척해도 내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예전에도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해 뒀다 써먹었다. 근데 왜 상황과 문맥은 기억하지 않고 단어만 기억하는 거지? 전체를 기억하여 응용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나도 매일 하기 싫지만 티 내지 않고 참으면서 그냥 하고, 하고 싶은 건 다 참다가 애들과 관련된 극소수만 골라서 하는 거거든? 흥.


아침 루틴 수행 후 아이들을 등원시키는데 둘째가 등원버스 탑승을 거부한다. 엄마가 서울에 갈 것 같은데 확정된 계획을 고지하지 않으니 불안한가 보다.

"엄마 혼자서 가는 거 아니고 너희랑 같이 갈 거야. 놀고 있으면 데리러 갈게." 하며 달래보아도 서럽다고 운다. 다음 정거장에서 기다릴 반 친구를 마냥 기다리게 할 수는 없고 따로 데려다줄 시간도 없으니, 그냥 같이 타고 이동하여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버스 선생님들 보기 부끄럽다.


집안일을 시작하기 전에 신랑과 다시 한번 여행계획을 논의한다. 어차피 일요일에 올 생각이면 하루 반만 더 양보하면 되니 같이 가자고 얘기했다. 주말에 할 일이 많아 바쁘다고 하길래 최대한 시간을 배려해 주기로 약속하고 같이 가기로 했다. 밖에서 낳아 데리고 온 아이들을 같이 봐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 애들이랑 시간 보내자는 게 이렇게까지 설득할 일인가. 출발하기도 전에 벌써 지친다.


오늘 스케줄은 댄스수업과 역사문화 수업 두 개나 있었지만 다 포기하고 집안일과 여행짐 챙기기를 시작한다. 빨래, 밥, 설거지, 쓰레기 정리, 화장실 청소까지 다 하고, 4박 5일 여행짐을 챙기고 나니 3시가 다 되었다. 3시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겠다 유치원 선생님께 미리 말씀드렸으니, 신랑에게 아이들 픽업을 부탁하고 정리를 마무리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돌아왔을 때 냄새가 나지 않도록 쓰레기를 버리고, 세탁기와 식기세척기를 청소하고, 화장실 청소도 강화버전으로 한다. 빨래를 쌓아두지 않는 것도 다녀온 후의 일정에 큰 도움이 된다.


출발하니 거의 4시가 다 되었다. 언니집에 도착하니 6시 반, 학원 가방을 가지러 온 첫째 조카가 얼굴만 잠깐 비추고 학원으로 뛰어간다. 엄마(애들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카레에다 밥을 비벼 후딱 먹고, 내어주시는 과일도 먹었다. 세 명의 조카와 우리 아이들 셋이 함께 노는 동안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이야기하다 8시가 넘었을 무렵 나왔다.


내일 이른 아침부터 스케줄이 있어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체크인할 때 인원추가 요금을 요구하셔서 기분이 언짢아졌다. 규정이니 당연하다는 걸 이해하는 건 머리이고, 식구가 많다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차별(!)로 속상한 건 마음이다. '이러니 애"들"을 안 낳으려고 하지' 속으로 투덜투덜거리며 방에 들어가 보니, 리노베이션 된 방에 더블침대 두 개가 놓여있어 깔끔하고 좋다. 전망도 송현광장 방향이라 대기가 맑았더라면 아주 멋진 뷰를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배려하여 업그레이드를 해주신 것 같아 마음이 감사와 기쁨으로 급선회했다. 다만 새집 냄새가 심한데 창밖은 또 미세먼지가 가득하여 진퇴양난이었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마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