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마가 아닌 상여를 타고,
인연이란 참 재미있다.
엮일 일이라곤 없을 것 같이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던 두 남녀가 혼인적령기에 각자의 어머니를 통해 만나게 된다. 다른 세상을 살았던 만큼 두 어머니도 서로를 몰랐으나, 한 분은 그즈음 무언가 배우러 간 강좌에서 '어떤 사람'을 알게 되었고 다른 한 분도 마침 그 시기에 '어떤 사람'의 가게에 들어와 아들의 혼처 알선을 부탁하게 된다.
두 사람이 만나는 날에도 어머니들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 여자는 지방까지 가서 남자를 만나야 하는 것이 싫었지만 모친께서 잡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 나갔고, 남자 역시 사회인 야구를 하는 날이라 뒤풀이에 가고 싶었지만 모친의 성화에 떠밀려 나왔다. 두 사람 다 엄마를 위해 나온 것일 뿐, 만남에 아무런 기대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남편과 내가 결혼하게 된 것은 다 엄마들 탓이다. 마음대로 약속을 잡은 것도, 양질의 유전자를 물려주어 서로의 마음에 들도록 한 것도.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족이 생기니, 내 삶에 하나 남았던 부모님의 수도 셋으로 늘었다. 한동안은 새로 생긴 부모를 알아가는 일이 재미있었다. 그냥 지인이 아니라 엄마와 아빠가 생겼다는 게 든든했고, 원래의 내 가족과는 완전히 다른 삶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서로에의 흥미가 시들해졌을 때쯤 새로운 부모님과 우리 가정의 길이 다른 방향으로 갈라졌다. 위로만 이어지던 나의 가족 줄기가 아래로도 여러 갈래 뻗어나가면서는, 우주가 팽창하듯 가속도가 붙은 채로 삶이 멀어져 버려, 계절이 바뀔 때나 한 번씩 서로 얼굴 위 세월의 흔적을 확인하는 사이가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 없다는 건 너무나 식상하지만 모두가 경험으로 체득하는 진리이다.
아이들은 가끔 내게 '죽음'에 대한 질문을 하는데, 보통은 "죽는다는 말은 가볍게 쓰는 거 아냐"라는 잔소리를 들은 후에 이어진다. 우리 가족이 언제 하늘나라에 가는지를 궁금해할 때면 나는 늘 '확률적으로'라는 부사를 활용하여 이야기해 준다.
"사람은 하늘나라의 천사였다가 인간이 되기 위해 세상에 내려온 거니까 언젠가는 다시 그곳에 돌아가야 해. 확률적으로는 내려온 순서대로 돌아가겠지만, 가끔은 순서가 바뀌는 경우도 생긴단다. 사람으로 사는 동안에는 이유를 알 수 없고 다시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왜 그래야 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부모님도 아마 그 순서대로 가실 거라 생각했다. 확률에 따르면 내 반려자를 낳아주신 분은 가장 마지막 순서여야 했다. '가늘고 길게 산다', '골골백년' 등의 말처럼 잔병치레가 많으신 그분이 가장 늦게까지 버틸 거라 생각한 우리의 예상은 틀렸다. 아니, 어쩌면 그건 소망이었던 것 같다. 오래도록 건강하실 것 같던 두 분에 비해 연약하시던 시어머님이 다른 두 분만큼이나 오래 사시길 바라는 마음 말이다.
향년 72세, 인간의 수명이 120세까지 길어질 거란 예측이 보도되는 요즘의 기준으로는 너무나도 이른 죽음이었다. 흐드러지게 피어나 들판을 가득 메우던 가을꽃이 저물 무렵이었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로 시작되는 노래를 좋아해 휴대폰 벨소리로 넣어달라 부탁하시던 분이, 가을꽃 저무는 길을 따라가셨다.
죽음은 끝인 걸까? 산 자 중에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이가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남겨진 이에게는 슬픈 상실감에 빠져있을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예고 없이 부닥쳐오는 죽음에 정신을 미처 다잡기도 전에, 대비하지 못한 이별과 강제로 마주하여야 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나의 반려자는 한동안 기운 빠진 미친놈 같았다. 49일이 지난 후에야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다.
어머님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힘들었을 것 같은 삶의 여정을 지나오셨지만,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고, 원하는 것을 말하고 행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대다수가 재어 보기만 하다 실행에 착수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을, 어머님은 그냥 하셨다. 어머님의 생명력은 꺼지지 않는 횃불처럼 강력한 불길을 내뿜었다. 나는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는 그 에너지의 원천이 어디 일지가 항상 궁금했고 경이감마저 느꼈다. 내가 아는 "어머니"들은 대부분 자신을 없애고 욕망을 아끼며 나서지 않고 조심조심 사시는 반면, 어머님은 현모양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사업가라 불리고 싶어 하셨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곁으로 소환되어 와 빈소를 지키며 어머님을 생각한다. 지칠 줄 모르고 타오르던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결코 꺼지지 않을 것 같던, 어머님의 삶에 대한 의지도 꺾여버렸다. 어머님과 나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을까. 어떤 인연이었길래 이토록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이처럼 강력하게 내 삶을 타격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넘겨주신 대신, 내게 중요한 많은 것들을 빼앗아가셨다. 마치 자기 보물을 가져간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처럼. (나뿐 아니라 주변 많은 이들에게 베풀고 또 앗았다는 사실은 장례식장에 와 알게 되었다.)
많은 일과 사람을 겪었기에 늘 날카로운 눈매로 세상과 사람을 살폈지만, 내가 아는 누구보다 순수하고 솔직하시던 분. 조금 더 연세가 들어 기운이 빠지시면 곁에 앉아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건만, 아주 흥미로웠을 그 이야기들은 이제 영영 묻히고 말았다. 강렬하던 생명의 불꽃이 화장터 거센 불길 속으로 사그라들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