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가물한 그리움
어린 시절 냉장고에 있는 만두를 꺼내어 먹겠다고 설치다가 부엌을 엉망으로 만든 기억이 있다. 엄마가 해주시던 모습을 따라 하겠답시고 프라이팬과 식용유도 꺼냈지만 가스불을 켤 줄 몰랐기에 식용유가 묻은 차디찬 냉동만두를 앙 베어 물고 씹었던 것 같다. 다행히 할아버지가 발견하시고는 혼쭐을 내시어 배탈은 나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왜 혼이 난 건지를 몰라 그저 속이 상했다. 만두 먹고 싶다는 게 혼날 일인가 그리 생각했던 것 같다.
연년생인 언니와 내가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 집에서 먼 여의도까지 직장을 다니느라 바쁘셨던 엄마는 여러 어르신들에게 우리 둘을 맡겼다. 엄마가 승진시험 준비를 하실 때에는 아주 멀리 있는 외가에 가기도 했고, 평상시에는 같은 아파트 단지 내 시터 할머님 댁에 가있기도 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기억에 등장하시는 분은 아빠의 아버지이신 친할아버지이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할아버지가 우리 곁에 있어 주시던 때의 공기 느낌은 뜨문뜨문 떠오른다. 엄마 말씀에 따르면, 며느리인 엄마의 부탁으로 한동안 우리 집에 계시면서 손주들을 돌봐주셨다고 한다. 집에 와주신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는 고모네 아이들만 봐주고 우리 집에는 한 번을 안 와주셨다고 꼭 덧붙이는 걸 보면 많이 섭섭하셨나 보다.
아쉽게도 그 시기의 기억을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는 내 삶에 더 이상 등장하시지 않았다. 아빠와 엄마가 이혼하신 후 엄마는 전근 신청을 해서 아주 먼 부산으로 훌쩍 떠나버리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재혼을 하셨다. 재혼한 며느리에게 손주를 보여달라고 하기 어려웠던 것인지, 할아버지는 그 후로 우리를 찾지 않으셨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아빠를 통해 할아버지가 우리를 보고 싶어 하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뵙지 못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서운했던 것 같다. 살아계시면서,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어른이시면서, 왜 한 번도 나를 보러 오지 않으셨나 하는 원망이 앞섰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노인이시기에 뵐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음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아마 시간을 내어 뵈러 갔을 텐데, 그때는 몰랐다. 왜 몰랐을까. 할아버지를 제외한 조부모님들은 모두 이미 돌아가신 후였는데, 유일하게 남은 할아버지의 존재를 왜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까.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지만 후회가 된다. 어린 날에는 왜 그리 자기중심적이기만 한 건지, 그 시절이 야속할 따름이다.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을까. 할아버지가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걸 보면, 우리를 돌봐주실 때도 그저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것 아닐까 싶다. 많은 어른들처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하고 자신의 뜻을 강요하겠다 덤비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그냥 곁에 있어주셨던 거다. 그리 생각하면 더욱이 할아버지가 그립다. 할아버지께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얼마나 많이 간직하고 계셨을까를 생각하면 곁에 앉아 듣지 못한 것도 아쉽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랄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존재만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은 부모님 외에 조부모님 뿐이기에, 사랑받고 자란 사람에게만 있는 자신감이 생길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는 것 같아 부럽다. 나에게도 그 기회가 조금 더 주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