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8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모닝빵 계란 샌드위치를 만들었는데, 먹으려고 보니 우유가 없다. 그저께 마트에서 집어든 기억이 나는데, 카트에 앉은 막내와 이야기하다가 그대로 내려놓고 왔나 보다. 어쩔 수 없이 물을 함께 내주었더니 첫째가 우유를 달라고 우긴다. "그럼 어떻게 해, 엄마가 지금 마트 가서 사 와야 해?" 물으니 그러란다. "싫어, 엄마도 밥 먹어야지. 그냥 네가 물 마셔."라고 단칼에 거절하고 앉았다. 시리얼을 먹는 거라면 1층 편의점에 잠시 다녀왔겠지만, 샌드위치를 먹으면서도 우유가 꼭 필요하니 사 오라는 건 억지다.
연휴 내내 너무 집에만 있던 것 같아 오늘은 눈꽃축제라도 다녀오려 했건만, 우리 집 영양김씨 4인방은 나갈 생각을 않는다. 집에 있는 게 제일 좋다는 첫째의 말을 듣다가 "나도 집에 있는 게 좋았으면 좋겠다."라고 읊조렸다. 다들 편안하다니 '내가 가정을 잘 가꾸어 나가고 있구나' 싶으면서도 '다들 편한데 나만 고되구나' 싶기도 하다.
안 나가겠다고 하니 또 점심을 차린다. 육전을 구워 반찬집 밑반찬과 함께 차려 밥을 먹고, 아이들이 귤을 까먹는 동안 치웠다. 언제쯤이면 식탁 아래에 무릎 꿇고 앉아서 물티슈로 바닥을 치울 일이 없어지는 걸까. 나도 이런 거 한 번 안 하고 자란 귀한 사람인데, 우리 딸은 결혼하지 않고 살아도 좋을 것 같다.
밖에 나오니 기분을 전환하고 싶어졌다. 시간이 별로 없어 카페에 가지는 못하니, 드라이브스루로 핫쵸코를 하나 주문했다. 예쁜 장미모양의 분홍빛 크림을 입술에 머금으며 기분이 나아지려는 찰나, 신랑이 "나오기 전에 집에서 밀크티 마시지 않았나?"라며 핀잔을 준다. "내일 만료인 쿠폰으로 사 먹은 거니까 돈 아까워하지 마"라고 쏘아붙였다. 갑자기 맛이 없다. 하나하나 계산해 들어가기 시작하면 결국 누가 손해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둘이 다를까? 결혼생활은 자꾸만 사람을 쪼잔해지게 만든다.
시립박물관에 가서 설날민속체험 행사를 구경했다. 전통가옥 담벼락 옆 음지에는 눈이 아직 남아있어 아이들을 즐겁게 했다. 가오리연 만들기 체험을 해볼까 싶어서 다가가니 옛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이 연을 알고 있다. 어릴 때 언니오빠들과 집에서 만들던 기억이 난다. 방법은 아주 쉽고 내 머릿속에 있으니 줄을 서지 않고 지나쳤다. 소떡소떡을 하나 사 먹고, 한창 일하는 중이던 아궁이와 가마솥도 구경하고(음식이 아니라 숯을 만드는 중이었다), 작년에 이미 했던 머그컵 만들기 체험에도 참여했다. 정해진 도안에 색칠만 하면 컵 겉면에 프린트를 해주는 체험이라 사실상 색칠놀이일 뿐이지만, 아이들은 자기가 만든 컵이라며 좋아한다.
박물관 바깥 공간에 생긴 놀이터에서 놀다 말고 아이들을 재촉하여 나온다. 아빠가 운동하러 가고 싶어 하는데, 다니는 골프연습장이 6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4시 반까지는 가야 했다. 그런 계획이 있으면 시간을 고려하여 오전에 나왔으면 여유롭고 좋았을 텐데, 오늘은 계속 아쉬운 점만 보인다. 나는 이동하는 도중 잠들어 버린 아들들을 지키느라 차에 있고, 깨어있던 딸은 아빠가 운동하는 모습을 구경하러 같이 들어갔다. 돌아온 딸의 두 손이 얼음장 같았는데, 아빠는 연습장이 따뜻했다고 주장하여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저녁으로 찜닭을 사 먹고 들어왔다. 밥 차리고 치울 시간을 아껴야 아이들 머리를 다듬어줄 수 있다. 들어오자마자 아이들 패딩을 세탁기에 돌리면서 세 명의 머리카락을 차례대로 잘라주었다(자격증 같은 건 없다). 바닥 가득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 조각을 치우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신랑의 말처럼 화장실 안에서 자를 걸 그랬다. 아이들이 지나다니면서 머리카락을 밟고 옮기니 치워야 할 범위가 갈수록 넓어진다.
아이들 패딩을 널고 어른 패딩도 세탁한 다음 씻으러 갔다. 서둘러 씻고 나왔는데 아이들은 아무것도 변한 것 없이 그대로 놀고 있다. 숨이 턱 막힌다. 티가 나지 않도록 표정을 정돈하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쉰 다음, 재울 준비를 시작한다. 양치를 시키고 책도 읽어주고 다리를 주물러주는 동안, 신랑은 옆에서 휴대폰만 보고 아이 셋은 쉴틈 없이 나에게 계속 말을 건다. 결국 숨기지 못하여 창문을 확 열어젖힌 다음에야 차가운 공기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명절에는 이혼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가끔 오는 명절 스트레스가 아니라, 평상시 생활이라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애아빠가 아이들에게 짜증 내는 게 싫어서 굳이 시키지 않고 내가 하고는 있지만, 자기 몸만 편하면 배우자의 고통 따위 관심도 없는 남편에게 나는 어떤 마음을 느끼게 될까. 정말이지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