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7일
어떤 계기였는지 모르지만 아침 7시 반에 눈을 뜨게 되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어제 내린 눈에 덮여 아침 하늘의 색 변화를 그대로 담아내는 캔버스가 되었다. 이 동네 아침 풍경의 아름다움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역대급으로 예쁜 색감이라 하루의 시작이 만족스럽다. 양력 1월 1일에는 7시 반에 나가면 해돋이를 볼 수 있었는데(일출시각 07:43), 음력 1월 1일인 오늘은 7시 반에 이미 해가 다 떠올라 있다니(일출시각 07:15) 계절 변화가 빠르게 다가옴을 실감하게 된다.
모닝빵 계란 샌드위치를 만들어 아침으로 먹었다. 아이들에게 2개씩 주고 엄마는 3개를 먹으려고 총 9개를 만들었는데, 맛있다는 아이들에게 더 주다 보니 엄마몫은 하나만 남았다. 잘 먹어주면 기특하여 기꺼이 나누어 줄 수 있지만, 가끔은 나 혼자 온전한 1인분을 다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집안일을 조금 하다가, 12시에 떡국을 끓였다. 정성 들여 끓였건만 아침에 빵을 3개씩 먹은 아들들은 떡국을 거의 다 남겼다. 신랑과 막내가 잘 먹은 걸 보면 맛이 없는 건 아닌 듯한데, 배불러서 못 먹겠다면서 딸기는 잘 먹는 걸 보면 맛이 없었나 싶기도 하다.
설날이니 만큼 어디라도 가야 할 것 같아 외출하려 했는데, 아이들은 한창 진행 중인 놀이가 재미있는지 아무 데도 안 가고 싶단다. 안 그래도 외출하기 싫던 아빠는 그 말에 신이 나 침대로 가서 눕는다. 낮잠을 재워 쐐기를 박을 참인가 보다. 계획에 협조해 주려다 나도 아이들과 잠들어버렸다. 모두가 잠든 후 들뜬 표정으로 방문을 열고 나가는 신랑의 뒷모습을 나는 실눈 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들 피곤했는지 낮잠인데 2시간 반이나 자버렸다. 특히 아들들은 땀을 엄청 흘리면서 잤다. 감기기운으로 며칠째 약을 먹고 있던 아이들이, 오늘 휴식을 계기로 낫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반찬집에서 사 온 나물반찬을 활용해 비빔밥을 먹으려고 재료를 준비했다. 숙주나물과 시금치 무침은 뜨기 편하게 아이 숟가락 크기로 자르고, 어묵볶음은 프라이팬에 한 번 데워 잘랐다. 마지막으로는 계란프라이를 하나씩 올릴 예정이다(신랑은 2개).
이제 밥을 떠서 비비기만 하면 준비 끝인데, 밥솥에 밥이 조금밖에 없다. 나는 왜 밥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 걸까. 서둘러 다시 지은 밥에 참기름을 듬뿍 뿌린 다음 아이들에게는 김자반 조금, 어른들은 고추장 듬뿍을 넣어 비벼 먹었다.
식사 후 온 가족이 바나나와 비타민을 챙겨 먹고 차례대로 씻는다. 엄마는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야 씻고 화장실 청소까지 마쳤다. 아이들 양치와 감기약을 챙기고, 책을 읽어준 다음, 다리도 조물조물 마사지해 주었다.
설날인데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다니 죄책감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우리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