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소

2월 19일

by 란님


아침이다. 먼저 일어난 사람들끼리 책을 보고 있는데 사부작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첫째가 부스스 일어나 "저 몇 번째예요?"(몇 번째로 일어났어요?)고 묻는다. "너 두 번째야." 대답해 주었더니 꼴찌가 아닌 것이 만족스러운 듯 입가에 옅은 웃음을 짓는다. 머리를 짧게 다듬어주니 얼굴과 목선이 더 잘 보이고 좋다(신랑은 덥수룩한 게 더 예쁘단다). 오랜만에 유치원에 가려니 설레는 것일까? 모두가 일찍 일어나 아이 여유롭다.


밀린 빨래를 돌려놓고 시리얼 먹다가 문득, 아침 10시에 나가겠다던 말이 생각나서 신랑을 깨웠다. 며칠 전 온 눈 때문에 골프장 상태가 좋지 않아 기존 예약이 취소되어 약속이 오후로 밀렸다고 한다. '오후에 나가는 거였으면 오전에는 소아과라도 좀 다녀오지, 그리고 저녁에는 손님이 오기로 했는데 나 혼자 남겨두겠다고?' 가족은 신경 안 쓰고 자기 일정에만 열중하는 게 얄밉다. 얄미운 건 얄미운 거고, 배는 고프면 안 되니까 점심으로 먹을 햄버거를 주문하면서 신랑 것도 하나 시켰다. 오늘은 고강도 집안일을 수행할 예정이라, 간편하면서도 칼로리가 높은 버거를 먹는 것이 딱이다.


모두가 나간 집에 홀로 남아 집안일을 시작한다. 화장실 청소, 설거지, 이불 빨래, 장난감과 책 정리, 부엌 정리, 바닥과 매트에 묻은 이물질 닦기 등을 몇 시간 동안 하다 보니 어느새 시작할 때 착용한 니트릴 장갑이 너덜 해졌다. 하원하여 집에 온 아이들은 "우와 깨끗하다"하며 잠깐 좋아하더니 다시 또 빠른 속도로 집을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혼돈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게 번지기 전에 서둘러 진화하고 청소기를 돌리니 손님들이 도착했다.


요즘 나는 집 정리까지는 도저히 못하겠어서 정리를 포기하고, 손님도 초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손님들은 며칠 뒤에 2시간 거리의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기 때문에 오늘 꼭 보아야 했다. 소로 하루를 다 보냈더니 음식을 할 시간이 없었다. 배달시켜 먹기로 하고 메뉴 추천을 받는데 꼬마 손님이 "치킨"이라 말한다. 이 지역에서 유명한 음식 중 하나가 닭강정이니 이곳과의 이별을 배웅하는 식탁에 꽤나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밥을 먹을 때의 최대 장점은 다양한 메뉴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 후라이드, 달콤 양념, 매콤 양념을 시켜서 골고루 먹었다(아이들이 후라이드를 너무 잘 먹어 어른들은 양념 위주로 먹어야 했다). 늦게나마 달려온 신랑도 대화에 합류하여 디저트까지 먹고 나니 어느새 잘 준비를 시작할 시간이다. 아쉽지만 또 볼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손님이 다녀간 흔적을 정리고 이불 빨래를 마무리하고 아이들 양치를 시킨 후에 나도 씻었다. 그나마 오늘은 아빠가 책이라도 대신 읽어주니 시간 활용하기가 좀 낫다. 이미 늦은 시각이었지만 잠들기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내일은 학기 마지막 날이니 가서 친구들 얼굴 한 번씩 더 보고 오라 말해주었다. 잘 자렴, 내 아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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