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보낼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너무 유행하는 것에는 모난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워낙에 비싸기도 한 데다, 어린아이들을 앉혀놓고 공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업 스트레스와 고비용에도 불구하고 많이들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했다. 또 아이들이 외국인을 만났을 때 불편해하며 얼어붙지 않도록, 원어민을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도 만들어주고 싶었다. 일반고에서 영어학원 한 번 안 다니고 해외 한 번 안 간 채로 수능영어 만점을 받은 나로서는, 외국인을 보고 도망가는 내 아이의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다. 마침 근처 영어유치원에서 오픈하우스 행사를 한다기에 신청했다.
밖에서 볼 때는 답답해 보이는 건물인데, 들어와서 보니 중정이 있는 데다 많은 부분이 유리로 만들어져 채광이 좋았다. 5층이지만 꼭대기층이고, 앞을 가리는 높은 건물도 없기에 전망까지 멋져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이들의 체험수업 참가 이후에 내부를 둘러보니 생각한 것처럼 공부를 많이 시키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원장님의 설명을 들어봐도 6살까지는 (영어를 익힐 수 있게 철저히 계산된) 이런저런 놀이를 하는 게 매일의 일과라고 하셨다. 사람을 교묘하게 조종하는 것(manipulation)은 내가 몹시 경계하는 일이지만 학습을 위해서라면 가끔은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실력향상을 위한 압박은 안 한다고 하셨지만 공립 유치원에 비하면 아마도 분명 있을 것이다. 원장님은 자기 일에 프라이드가 강한 분이셨고, 돈을 받았으면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쭈뼛거리며 경계하더니, 40분이 지나고 밖으로 나올 쯤엔 재미있어해서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보내는 유치원이 아주 마음에 드는 데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이 큰 행운이라 생각하기에 옮길 생각이 없지만,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만 보내는 오후반은 한 번 검토해 봐야겠다. 일반 학원비보다 조금 비싼 정도의 비용이지만, 세 사람이 모이니 가볍게 결정할 수 없는 금액이 된다. 나오는 길에 신랑이 "이것까지 보내면 허리가 더 휘겠다" 말하는 걸 보니 조금 짠했다.
우리는 보육과 교육에 많은 돈을 지출하느라 힘들게 번 돈을 다 써버리는데, 막상 그것을 엄마가 맡느라 돈을 안 벌면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일에 매몰되어 정작 해야 할 일(보육, 교육)에는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든다. 번역팀이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청소, 설거지, 영수증 처리 등 온갖 일을 다 시켜서 정작 번역은 거의 못 하는 격이랄까. 모두가 "엄마"라는 슈퍼우먼을 보며 자랐기에 비교대상이 자기 엄마인 걸까. 엄마 업무를 잘하는 건 디폴트 값이라고 보는 것 같다. 잘하면 당연한 거고, 못하면 욕먹고, 엄마일 외에 다른 일도 같이 잘해야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엄마들도 엄마가 처음이다. 엄마에게도 하루는 24시간이다.
아주 오랜만에 신랑이랑 점심을 사 먹고 들어왔다. 좋아하는 추어탕집에 가려고 했더니 휴가 가셨대고, 맛있는 생선조림 집에 가봤더니 생선이 다 떨어졌대고, 칼국수 집도 문을 닫아, 산채 보리밥집에 가 건강한 음식을 먹었다.
집에 와서 설거지하고 빨래를 돌려놓고, 글쓰기모임 과제를 위한 글을 써보려 했는데 글이 막힌다. 뭐라도 일단 쓰자 싶어 주절주절 쓰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시작했는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지금 나의 삶이랑 비슷한 것 같아 실소가 흘렀다.
청소를 하고 하원할 때에 맞추어 밖에 나갔다. 소아과에 들렀다가, 공원 놀이터에서 30분 정도 놀고, 즐겨 찾던 돈가스 집에 갔다. 점심때에 이어 저녁에도 어딜 가든 사람이 별로 없다. 이 지역 사람들은 죄다 놀러 갔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집에 와서 아이들이 씻는 동안 글쓰기 모임 과제를 수행하였다. "즐겁자고 시작한 일인데 스트레스받지 말라"던 모임 동료의 말을 들으니 무겁게 헝클어진 글이 가볍게 다듬어졌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신랑이 아이들을 씻기고 양치까지 시켰기에 편했다. 작업 마무리 후에는 얼른 책을 읽어주고 다리를 주물러 준 다음 "먼저 자고 있어~" 하고 나왔다. 내일부터 10일간 방학이다. 얼른 씻고 여행짐 챙겨놓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