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여행

2월 21일

by 란님


여행짐을 싸다 날밤을 깠다. 왠지 그럴 것 같은 예감이 12시 즈음에 라면을 끓여 먹어 배는 안 고팠지만, 3시부터는 자꾸 졸게 되는 바람에 업무효율이 안 좋았다. 6시쯤 마무리되었을 때 지금이라도 잘까 싶 유혹이 있었지만 청소로 잠을 쫓았다.


오늘부터 10일 동안 유치원 방학이라 우리 집은 7박 8일 일정으로 국내여행을 떠난다. 여행이라 하기 조금 민망한 이유는 노는 게 아니라 평소에 못했던 체험활동을 몰아서 하는 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집을 떠나 숙소에서 자며 돌아다녀야 하니 여행이 맞긴 맞다. 서울에 살 때는 휴에 지방으로 놀러 가서 시간을 보냈는데, 지방에 사니 시간이 나면 서울로 가서 시간을 보낸다.


아침이 왔건만 8시에 출발하자던 신랑은 깨워도 일어나지를 않는다. 아이들 준비하는 동안 일어나서 잠도 좀 깨고 짐도 실어두라 했건만, 가족들의 준비가 다 끝나면 그때 깨우란다.는 길에 간단하게 빵이나 먹으려고 했는데, 신랑을 기다리느라 굳이 시리얼을 먹게 하고(설거지가 할 일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옷도 갈아입혔다. 8시 반이 되어 일어난 신랑은 해보지도 않고 "짐이 너무 많아 트렁크에 다 안 들어간다"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내려가서 트렁크에 짐을 차곡차곡 넣으니 다 들어가고도 자리가 조금 남는다. 우리 신랑은 테트리스를 못하는 걸까, 귀찮아서 떠넘기는 걸까? 후자라면 너무 실망스러우니 전자라고 믿어줘야겠다.


출발 후 아이들과 10분 정도 이야기 하다 계속 잠을 잤다. 아이들이 안 자니 응대해줘야 해서 푹 잘 수는 없었고, 눈 감으면 기억이 잠깐 사라졌다가 눈을 뜨면 멀쩡한 척 이야기하고 다시 눈을 감으면 기억이 사라지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나의 뇌는 지금 어떤 상태란 말인가.


오늘의 첫 번째 일정은 국악연구원 박물관의 <박물관 나와라, 쿵딱!> 프로그램이다. 추천이 많던 곳이라 잡았는데, 어린이박물관 같은 곳(교육적인 키즈카페)을 기대하면 실망할 것 같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 특히 국악기를 접해보는 경험을 원한다면 좋은 프로그램이다. 크지 않은 박물관에서 인솔 선생님을 따라가며 악기에 대해 알아보 활동지에 스티커를 붙다. 나중에는 직접 악기(북이나 장구)를 연주해 볼 수도 있는 구성이다. 장 전 이름표를 붙여 주더니, 선생님이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이름도 불러주며 친절하게 진행해 주셨다.


두 번째 일정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 가야 한다. 점심 끼니를 놓쳤기에 김밥을 주문하여 도서관 앞 공원에서 먹었다. 근처 국기원에 태권도 행사가 있는지 도복 입은 아이들이 많았다. 언젠가 우리도 비슷한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될까? 오늘은 <체험형 동화구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 왔다. 도서관에는 몇 번 왔지만 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섯 살이 되니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그림책 가상현실 안에 자기네 모습이 담겨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인데, 내가 볼 때는 조금 허접하지만 아이들은 너무 좋아한다. 진행하시는 선생님이 이야기를 잘 살려주신 덕분인 것 같다.


그림책 전시까지 구경한 후 아이들이 좋아하는 버거와 쉐이크를 먹기 위해 강남역으로 내려갔다. 식사 후에는 교보문고로 이동하여 각자 책 하나씩을 골라 숙소로 이동했다. 바삐 놀다 잠만 잘 거라 여행 내내 비즈니스호텔에서 묵지만, 첫날과 마지막 날은 좀 안락한 곳으로 잡았다. 신랑이 눈치 주는 게 싫어 돈이 아닌 포인트와 숙박권을 썼다. "포인트는 돈 아냐?"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많이 알아보고 면밀히 따져서 얻는 혜택이니까 내가 번 것이고 추가적인 것이다. 만약 신랑이 자기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만나서 살았다면 같은 액수의 생활비를 써도 생활의 질(내 기준)은 많이 떨어졌을 거라 생각한다. 늘 체험들도 모두 무료였던 대신에 기간에 맞춰 예약을 해야 했다. 나는 나의 시간과 노동으로 돈을 아끼고 있다.


신랑이 아이들을 씻기는 동안 나는 사우나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첫째가 "엄마가 가면 싫으니 가지 마"란다. 알았다 하고 남았다. 나는 너무도 쉬운 여자다. 국 또 신랑만 사우나에 갔다.


씻고 나온 아이들의 잘 준비(로션, 드라이, 의복 착용, 양치)를 도와준 다음, 휴대폰 사진첩을 보게 하고 글쓰기를 마무리했다. 종일 바빠 잊고 있다 생각해 보니 오늘 브런치에 올리기로 마음먹은 글이 두 개인데 하나도 안 썼더라. 너무 졸려서 하나만 얼른 썼다. 바로 자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우리 오늘 도서관에 다녀오기도 했고, 엄마가 너무 졸리니까 딱 하나만 읽고 자자" 했더니 "두 개만 읽어주면 잘게요" 란다. 마지막에는 반쯤 졸면서 얼른 읽어주고,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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