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남매

언니오빠들

by 란님

엄마의 재혼으로 내게는 5명의 언니오빠가 생겼다. 5명과 2명이 만나 7남매를 이루었다. 꽤 많은 인원임에도 신기하게 나이가 겹치는 사람이 없었다. 막내였던 나와 11살 차이가 나던 큰언니 사이에 5명이 1~3살 차이로 착착 들어맞, 겉보기에는 우리가 급조된 관계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았다. 성씨가 달랐기에 자세히 보면 쉽게 알 수 있었지만 말이다.


어릴 때라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음 본 시절에 찍은 사진을 보면 나는 그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이다. 당연한 일이다. 갑자기 나보다 나이가 많은 5명이 내 삶에 들이닥쳤는데, 자기들끼리 한편 먹고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며 말을 잘 들으라 강요했으니까. 학교에서 그래도 싫을 텐데 매일매일 퇴근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니 마음이 어떻겠는가.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언니오빠들 좋아졌다. 원래도 사람을 좋아하는데, 늘 곁에 있는 가족이라니 안 좋을 수가 없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무기로 제멋대로이긴 했지만, 수많은 게임의 룰을 알려주고 같이 해주었다. 늘 집에서 티브이나 보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며 외로워하던 우리에게 신기한 것을 많이 아는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볼일 없던 드라마, 미국영화, 홍콩 무협영화, 전설의 고향 등도 언니오빠들과 함께 보고, 동네 여기저기에 놀러도 가고 오락실에도 갔다. 특히 나보다 고작 4살 많던 셋째 언니, 나는 전설의 고향을 볼 때면 그 언니 옆에 찰싹 붙어 팔짱을 끼고 보고는 했다.



셋째 언니부터 나까지는 쭉 연년생이었다. 나, 우리 언니, 막내오빠(다섯째), 첫째 오빠(넷째), 셋째 언니까지가 연년생이었기에 셋째 언니는 자연스레 우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언니는 아는 것도 많고 재치와 의욕이 넘쳤다.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새아빠의 강요에 간호사가 되었지만, 언니는 국문학과에 가고 싶어 했다. 만약 그랬더라면 꽤 좋은 글을 쓰는 극작가나 소설가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래로 동생이 넷이나 더 있으니 충분한 지원을 못해준 게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바로 위인 둘째 언니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었으니 많이 속상했을 것이다.


언니는 동생들을 이끌고 뒷산에 놀러 가기도 하고, 며칠씩 연습시켜 거실에서 연극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동생들의 머리를 잘라주겠다며 가위로 바가지 머리를 만들놓아 우리 언니를 울리기도 했다. 나는 셋째 언니가 좋았다. 언니는 중학생이 된 이후로 우리와 놀아주기를 멈추었는데 나는 그것이 너무 슬펐다.



셋째 언니 다음으로 좋아한 건 막내오빠(다섯째)이다. 밖에 나가서 노는 일이 많던 다른 아이들과 달리 막내오빠는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심심할 때면 오빠 방에 가서 같이 만화책을 보고 놀았다. 만화책방과 오락실에 데려가준 것도 오빠이다. 오빠는 본인의 엄마와 떨어져 사는 것을 많이 힘들어했고 가끔 내게 엄마 집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린 나는 마음이 안 좋기도 하고 친엄마 집에 갈 수 있는 오빠가 부러워(나는 친아빠를 못 보고 살았으니) 우리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새아빠가 자기 엄마를 그리워하는 막내오빠를 혼내면서 때렸다.


처음에는 몰랐다. 그런데 한 번은 오빠가 내게 불 같이 화를 내며 내 목을 조르려 든 적이 있었다(폭력을 당한 사람은 그걸 다른 이에게 다시 하게 된다). 언니들이 말려주어 별일은 없었지만 나는 일련의 과정이 충격이었다. 오빠가 한 말을 내가 엄마한테 전하면 그게 새아빠의 폭력으로 돌아온다니, 그리고 나는 그로 인해 고자질쟁이가 되어야 한다니. 엄마에게 말을 가려서 해야 하는 이런 상황, 나는 지금도 그 점이 너무 아쉽다.


언니오빠들은 이런 일을 겪으면 엄마가 새아빠와 자기들 사이를 이간질한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엄마에게 "그냥" 말한 것처럼 엄마도 자기 단짝에게 "그냥" 말했을 확률이 더 높다고 본다. 그런데 잘못한 사람(바람피운 사람)이 죄책감에 제 발 저려 아내와 아이들이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폭력으로 누른 거라 생각한다. 설령 엄마가 이간질하려 말했다 치더라도, 새아빠는 자기 아이들을 그렇게 때려서는 안 됐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자기 부모를 이해하려 들기에, 언니오빠들은 그저 모든 것을 우리 엄마 탓으로 돌려야만 했을 것이다.


오빠는 집안에서 나의 베프였다. 부모님은 말수가 적은 오빠가 답답하다고 늘 질타하셨는데, 내가 볼 때 그건 생각이 많아서였다. 오빠는 늘 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손 귀한 집의 막내아들로 태어나서 누나들과 조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살았지만, 아빠가 갑자기 엄마를 집에서 쫓아내고 다른 여자(+ 여동생 둘)를 데리고 들어왔을 때 그 마음이 어땠겠는가. 새아빠는 본인의 마음이 어떠했든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가 다섯이라면 개인의 마음만을 중시하며 살아서는 안 됐다.


마음이 안 좋아진 내가 엄마에게 새아빠랑 언니오빠 친모는 왜 헤어진 거냐 여쭤보면, 엄마는 본인이 전해 들은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언니오빠들의 친모가 지저분하게 살아서 그랬다고 했다. 어릴 때야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지만, 그게 아이를 여럿 낳아준 아내를 버려도 되는 이유가 되나? 또 원래부터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한 결혼이었다고도 하셨는데,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어도 오랜 세월 같이 살고 아이까지 여럿 낳았으면 책임을 지는 게 맞지 않나? 그것도 사랑 아닌가? 어린 내가 듣기에도 혼란 투성이 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건 그냥 새아빠 잘못이다.



첫째 오빠(넷째)는 우리가 가장 먼저 알게 된 가족이고 우리에게 친하게 대해주려 노력하는 편이었으나, 항상 편을 가르려 드는 게 문제였다. 자꾸만 다른 언니오빠들 흉을 보면서 자기편이 되라고 강요했고, 지우개를 사주겠다고 꼬드겨 놓고 안 사주는 등 공수표를 남발했다. 한 번은 학교 부회장 선거에 나간 우리 언니를 질투하였는지 '언니가 부회장이 되면 엄마의 사랑이 언니에게만 향하지 않겠냐, 언니가 부회장이 안 되어야 너한테 좋은 거다'라는 취지로 내게 이간질을 시도한 적도 있다. 나는 그때 이미 마음속으로 큰 오빠를 손절했다. (가족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둘째 언니는 우리가 집에 갔을 때 중학생이었고, 사춘기를 지나는 동안이라 우리와 교류할 일이 별로 없었다. 미술을 전공한 언니는 방에 틀어박혀 있거나 밖에 나가있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엄마와 새아빠가 싸우고 이혼하겠다고 하셔서 우리가 짐을 챙기고 있을 때, 신이 난 내가 둘째 언니에게 아끼던 볼펜을 선물로 주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드디어 그 집에서 나가는 게 너무 행복했고, 남겨지는 언니오빠가 안타까워 아끼던 물건을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결국 두 분이 다시 합치셨을 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인생에서 가장 아쉬워하던 순간이다. 그 후로 나는 무언가 기대하기를 멈추었던 것 같다.


언니는 볼펜을 돌려주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갑자기 떠난다며 기뻐하는 의붓동생을 보면서 상처받지 않았을까. 어린 나는 이제 언니오빠들이 친엄마랑 살 수 있겠다 생각하며 잘 됐다 여겼지만 말이다. 대학생이 된 둘째 언니는 우리와의 접점이 많아졌지만, 그때는 내가 중고등학생일 때라 형제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나는 둘째 언니가 좋다.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 진중한 면이 있고, 똑똑하고 냉정해 보이지만 은근 허당이다. 같이 뭔가를 해본 적은 없지만, 취향도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건 결국엔 타이밍이라,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남기고 흘러갈 뿐이다.



첫째 언니는 엄마와 새아빠가 결혼하실 때 이미 고등학생이었다. 언니는 우리 엄마를 한 번도 엄마로 인정한 적이 없다. 그래서 동생들에게도 엄마와 새아빠를 "엄마아빠"가 아닌 "어른들"이라 부르라고 했다. 내가 "엄마아빠 어디 가셨어?" 물어도 "어른들 모임 가셨어"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엄마에게 못되게 대하는 큰 언니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무슨 마음인지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우리 엄마야말로 가장 큰 피해자인데 말이다.


우리가 살던 집은 이층 주택으로 크기가 작진 않았지만 식구가 워낙 많다 보니 방을 같이 써야 했다. 처음에는 큰언니-둘째, 셋째 언니-나머지가 방을 같이 쓰다가, 큰언니가 독립한 후에는 남자애들을 분리했다. 새아빠는 독재자였지만 고등학생 때 얻은 딸에게는 그나마 함부로 하지 않았기에, 큰언니는 항상 독방을 썼다. 언니 방은 항상 문이 닫혀있었지만 가끔 들어갈 기회가 생겼는데, 바깥세상과는 다른 공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명도 노란빛이었고 각종 소품이 가득 있었으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가 들렸다. 어른의 공간을 본 적이 없던 나는 그 방이 신기했다(향수 냄새가 너무 강했던 건 싫었다).


큰 언니는 가장 먼저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잘 살았는데, 동생들을 이끌어주는 장녀 역할을 톡톡이 해냈다. 언니와 엄마와의 관계 때문에 가깝게 지낼 수는 없었지만, 언니오빠들이 잘 큰 것은 팔 할이 큰 언니의 역할 덕분이라고 본다. 우리 언니와 나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고는 한다. 새아빠가 이혼한 전 부인(우리 엄마)에게 굳이 연락해서 알려온 소식에 의하면 큰 언니 아들이 서울대에 들어갔다고 한다. 정말 잘된 일이다. 언니오빠들이 얼마나 좋아했을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아서 기쁘다.



언니오빠들에게도 우리에게도 힘든 시절이었다. 속상함으로 가득한 유년시절이지만, "어른들"은 그 많은 상처를 남겨놓고 결국 그 대단한 사랑조차도 지켜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 시절에서 살아남았다. 니와 는 막내였던 탓에 약자였고 그래서 받은 고통이 크기는 하지만, 고맙고 소중한 기억도 많이 있다. 포로수용소에 함께 잡혀있던 동료 같은 느낌이랄까. 나와 언니가 그렇듯이, 그저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불행하던 그들의 유년시절이 안타깝고, 꽃 피우지 못한 재능이 아깝다. 이제는 모두가 가정을 꾸렸고 자기 뜻대로 살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니, 과거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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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새아빠와 엄마가 재기하여 부를 축적한 후에 생겨난 수많은 갈등의 대부분은 자식들의 이간질 때문이라 여기며 분노하셨다. 덩달아 나도 우리 엄마를 괴롭히는 언니오빠들이 미워졌다.


그런데 이혼 과정부터 지금까지 새아빠의 성정을 돌아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자식들이 아빠에게 그냥 할 수 있는 많은 말들을, '너희에게 상처가 많구나, 미안하다'라고 감싸주고 넘기면 될 일들을, "이게 다 새엄마 때문이다"라고 남 탓으로 돌렸을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완전무결한 자기는 잘못했을 리가 없으니까, 자식들이 아빠를 미워한다면 그건 "나쁜 여자가 잘못한 탓"이라고.


새아빠는 아이들이 다 독립하고 나자 엄마의 "쓰임새"가 다했다고 여겼고, 자기 멋대로(여자도 만나고 취미생활도 하고) 사는 데에 방해가 되는 엄마를 치우고 싶었던 것 아닐까. 진실은 간단하다. 새아빠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마음은 약해서 죄책감을 느끼니, 괜히 상황을 다른 사람 탓으로 치환하며 자기 정당화를 했던 것 같다.


사랑을 믿은 엄마만 혼자 '아이들의 이간질로 남편이 변했다'라고 믿은 것뿐, 새아빠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만약 정말로 자식들이 재산을 욕심내어 엄마를 쫓아내려 했던 거라고 해도(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거기에 휘둘려서 엄마를 괴롭힌 건 새아빠 아닌가.


첫 결혼은 부모 탓, 두 번째 결혼기간에는 자식 탓, 이혼은 늘 아내들 탓, 탓탓탓. 타산지석으로 삼고 늘 경계해야 할 삶의 태도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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