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첫 일정이 있는 동네에 숙소를 잡았더니 아침이 여유롭다. 애들 주라며 친구가 챙겨준 시리얼을 아침으로 먹이고, 어른용으로 커피와 밀크티를 하나씩 사서 출발한다. 10시 반까지 가야 하는데 아주 천천히 준비해도 시간이 남는다. 좋다.
오늘 가는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RAIM)'은 이번이 4번째 방문인데, 지난번까지는 없던 주차장이 드디어 생겼다. 온 김에 전부 하고 가려고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체험을 예약했지만,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고(한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미션 수행 가능) 무엇보다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각각 독립된 체험이 아니라, 방식만 조금씩 다를 뿐 모두 상설전시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때문에 오전체험 2가지만 하고, 오후체험은 다른 아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취소했다. 그래도 업데이트된 기획전시와 로봇•AI정원도 보고 알차게 잘 구경하고 왔다. 3시간 넘게 있었더니 다자녀 할인을 받아도 주차비가 7,200원이었다. 주차장은 '서울시립사진미술관'과 함께 쓰고 있었는데, 언젠가 나를 위해 방문하고 싶은 공간이다.
예정보다 일찍 나온 만큼 다른 곳에 방문할 시간이 생겼다. 가고 싶은 곳은 많지만 지난번에 못 본 티니핑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롯데월드로 방향을 잡았다. 금요일에 롯데월드라니, 게다가 방학기간까지 겹치는데, 좋지 않은 생각이라는 건 나도 알지만 티니핑 퍼레이드는 이번 주까지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토요일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오랜 기간 나와있다 보니 사 먹는 것도 일이다. 고민하기 싫을 때 마침 회전초밥집이 눈에 보여 그리로 갔다. 과한 양념 없이 맛있고, 무엇보다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엄마는 연어 위주로 4 접시, 아이들은 계란초밥과 유부초밥으로 셋이 9 접시를 먹었다(아빠는 안 먹는단다). 유부초밥을 주문했더니 하나씩 슬쩍 더 얹어주셔서 감사했다. 아이 셋을 데리고 다니면 받게 되는 이런 작은 호의들이 무척 따뜻하게 느껴진다.
롯데월드에 갔더니 금요일도 주말이라 인기시설은 죄다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당연히 예약은 진작에 마감되었다. 2시간 뒤에 시작하는 퍼레이드나 보기로 마음먹고, 적당한 자리를 잡아 기다린다. 모두가 기다릴 필요는 없으니, 아빠랑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하나 타러 가고 엄마만 혼자 남아 신경전을 벌이며 자리를 사수했다. 신경전이라 표현한 이유는, 휴대폰으로 글을 쓰고 앉아있으면 자꾸만 내 앞에 다른 사람들이 와서 슬그머니 섰기 때문이다. 이게 뭐라고. 몇 시간씩 자리 맡으며 기싸움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한심하고 불쌍한 동시에 숭고하다. 놀이공원에 가면 늘 부모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면서 또 뿌듯해져서 좋다.
정보를 수집하며 잘 버틴 덕분에 제일 앞자리에서 보긴 했지만, 아쉽게도 공연이 너무 짧았다. 퍼레이드 행렬도 퍼레이드 시간도 길이가 다 짧았다. 게다가 티니핑 퍼레이드가 일반 퍼레이드와는 다른 코스로 움직이는 것을 몰라 애매한 위치에 자리를 잡아 버렸다. 사이드라 잘 보이지도 않고 자리도 여러 번 옮겨야 해서 정말 별로였다. 알아보지 않고 다른 퍼레이드와 같을 거라 안일하게 생각한 엄마의 잘못이다. 미안해. 그래도 본 것에 의의를 두자꾸나. 엄마 아빠가 진정으로 노력했다는 걸 알아주렴. 사랑한다.
나오는 길에 놀이기구를 하나 더 타자는 둘째의 말에 한 군데에 더 들렀다. 이번에도 110cm가 안 되는 막내는 거절당할 것 같아, 기분을 달래기 위해 엄마와의 데이트를 제안한다.
"우리 딸은 엄마랑 서점 가서 에그박사 11권 사 올까?"
거절할 리가 없다. 교보문고까지 손을 잡고 걸어가서 에그박사와 국기백과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는 언니 찬스를 써서 백화점 라운지에 들러 음료를 받았다.
숙소까지 이동하는 길에 아이들은 피곤한지 깊이 잠들었다. 저녁을 먹여야 하니 깨워 근처 백화점 식당가로 가서 옛 단골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그곳뿐 아니라 주변 식당이 모두 7시 50분에 이미 다 마감이었다. 라스트오더는 8시라고 되어 있었지만, 한두 팀 더 받자고 1시간 시급을 더 줄 수는 없어서인 걸까. 어쩔 수 없이 식사가 된다는 곳에 들어가서 주문 가능한 메뉴를 먹고 숙소로 왔다. 롯데월드에서 시달려 몹시 피곤하지만, 오늘 숙소는 포근한 곳이라 위안이 된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글쓰기 과제도 마무리했다.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