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
오늘은 엄마 혼자 서울 나들이 가는 날이다. 대학교 친구들과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조금 일찍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고 아이들 등원 가방을 챙겼다.
유치원 대신 엄마랑 가겠다고 아침 내내 떼를 쓰던 둘째는 결국 등원버스 탑승을 거부했다. 등원버스는 떠났고, 고속버스는 5분 뒤에 출발한다. 길에 놔두고 갈 수는 없으니 아이 손을 잡고 고속버스로 향한다. 미취학 아동은 요금이 무료이지만 자리에 앉으려면 유료로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해 둔 자리는 1자리뿐이라 2시간 반 동안 안고 가야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옆자리가 딱 비어있다. 데리고 가라는 신의 배려인가 보다.
아이가 함께 가주면 나는 좋다.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는 건 큰 행복이다. 다만 이동동선, 보폭, 방문지 선정 등에 많은 제약이 발생한다. 어쩔 수 없다. 그 정도 불편쯤이야 감내하고도 남을 행복을 선사하니까 참아야지. (그런데 오늘은 어른 일정이라 너는 좀 심심할걸?)
버스가 출발한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아이가 불편함을 호소한다. 자기에게도 휴대폰을 달라는 신호인 것 같지만 모르는 척한다. "거봐, 괜히 왔지?" 물었더니 그건 아니란다. 뭔가를 먹고 싶다는데 아이와 같이 올 예정이 아니었던지라 간식과 놀거리를 준비하지 못했다. 유치원 가방을 그대로 메고 온 덕분에 물통은 있는 게 다행이다. 혼자 다닐 때는 휴게소에 잘 내리지 않지만, 아이랑 함께 왔으니 내린다. 화장실도 들르고 델리만쥬도 하나 사 먹었다.
금요일이라 차가 막힐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10분만 늦었다. 점심메뉴는 오는 길에 톡방 대화로 선택했으니 바로 백화점 식당가로 이동해 웨이팅 등록을 한다. 하나 둘 모여들어 오늘의 멤버가 완전체를 이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입장할 시간이 되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난 후에는 아래층 카페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 카페 건너편에 장난감 가게와 레고스토어가 위치해 있어 꼬마 일행의 지루함을 덜 수 있다.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바로 옆에 위치한 팝업스토어에서 네컷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언니집으로 이동하려 하는데 같이 있던 친구 중 하나가 가는 길에 태워다 주겠다고 한다. 친구네 집까지는 북쪽으로 34분, 언니네 집은 동쪽으로 42분이 찍힌다. 친구가 우리를 데려다주고 가면 42분 후에 또 40분가량을 더 가야 한다. 요즘은 유가도 비싸고 친구는 1시간 반 뒤에 아이를 픽업하러 가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아서 괜찮다고 거절하고, 그래도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으니까 중간까지만 타고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한강을 건너기 직전 친구가 다시 제안을 한다. 아이가 졸려하니 태워다 주고 가겠다고 한다. 애기엄마라 아이를 배려하는 마음이 크다. 아니, 사실 이 친구는 내가 알아온 23년을 한결같이 상냥했다. 친구의 호의를 고맙게 받기로 하고 언니집까지 편안하게 잘 왔다. 우리 때문에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너무 미안한 동시에 고마웠다.
언니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아이를 그곳에 둔 채 다시 집 앞으로 나왔다. 다른 친구와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같이 가면 아이가 너무 힘들어할 것 같아 사촌들과 놀고 있으라고 두고 나왔다. 엄마 껌딱지이지만 사촌들과 놀 때는 엄마 생각이 덜 나는지 따라가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이 친구와는 미리 약속하지 않고 왔다. 오늘 올지 안 올지, 온다면 몇 명이 와서 몇 시에 떠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약속을 잡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연락해 보니 친구도 마침 퇴근 후 일정이 없었다. 요즘 우리의 벙개는 성사율이 높다. 아마도 새 학기가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 않아서겠지. 한 주만 지나도 야근이 많아져 실패율이 높을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저녁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 행진을 이어가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3시간이 지났다. 더 있고 싶지만 아이가 엄마를 찾을 것 같아 자리를 접고 일어선다.
언니네 집은 대단지 아파트 단지 끝에 있어 단지 전체를 관통해서 가야 한다. 가족들이 함께 할 것 같은 불 켜진 집들 사이를 지나며 어둡고 차가운 거리를 걷고 있자니 외롭다. 혼자 왔더라면 오늘 저녁에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둘째가 함께 왔으니 더 있다 가기로 했다. 오늘 바로 돌아가는 건 아이에게 너무 무리한 스케줄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시간을 보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가족(신랑과 아이 둘)이 멀리 있으니 쓸쓸하다. 얼른 들어가서 둘째를 안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