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도 성숙할 수 있다.
"문득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 누워 떠들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철없이 웃을 수 있던 그때에도 어린 날의 나는 또 나름의 고민으로 밤새 앓고 있었겠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인생의 도돌이표 속에서 아주 잠깐 잉여로 살고 싶다. 아주 잠시라도 괜찮으니까"
수첩을 뒤적거리다 우연히 과거의 생각과 마주했다. 삶에는 예상할 수 없는 변수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 몰랐던 때. 그래서 원했던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을 갑자기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던, 그때의 생각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불안했고 두려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에 좌절했고, 스스로의 나약함을 탓했다.
쉴 새 없이 하루를 돌리는 세상 속의 사람들을 보며 "내가 잘못된 거야", "빨리 그들과 같아져야 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과 비슷했던 과거의 '나'가 바랬던 잠깐의 여유. 사실 그들도 속으로는 지금의 '나'를 바라고 있지 않을까.
"가난한 사람은 돈이 행복이라 말하고, 건강을 잃은 사람은 건강이 행복이라 말한다. 우리는 늘 결핍에 의한 행복을 추구하는 오류를 범한다." -매슬로우
결핍에도 시차가 있다. 과거의 결핍이 오늘의 결핍이 되진 않는다. '잠깐의 여유'를 바랐던 내가 지금은 '바쁜 일상'을 바라고, 가난했던 누군가 가난에서 벗어나거든 과거의 소소한 행복을 바랄 수도 있다.
다만 하나 명확한 것은 인간은 지금의 결핍에 눈이 멀어 내일의 결핍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핍이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랄 때, 또는 가지고 있었던 것을 다 써서 없어진 상태를 뜻한다.
그러니까 결핍은 사실 과거의 내가 당연하게 소유하고 있었던 어떤 것. 그것이 생각지도 못한 새에 사라져 버렸을 때 느끼는 감정인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결핍을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결핍과 마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결핍을 대처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인생에서 무언가를 '모르는 상태'를 추구하는 편이다. 그래야 더 용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알아간다는 것의 두려움이 늘 스스로를 작게 만들었다. 그래서 시작도 하기 전에 겁을 잔뜩 먹어 일을 그르치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를 때 사람은 가장 용감할 수 있다. 작은 생채기도 큰 아픔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다음에 만나게 되는 작은 상처는 더 이상 작은 것이 아니다.
인생에는 여러 길이 있다. 꿈으로 가는 직행열차를 타는 것만이 '선'은 아니다. 때로는 목적지로 향할 수 없는 다양한 사정에 부딪혀, 갈 곳을 잃고 헤매다 우연히 찾은 그곳이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의 결핍은 잠깐 쉬고 지나쳐가면 그만일 뿐이다.
생각은 늘 숙성한다. 고작 오늘 밤에서 내일까지 묻어둔 것뿐인데 딱 그만큼 발효한다.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결핍에 너무 많이 아파하지는 말자. 결핍도 결국 생각의 일부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만큼 성숙하게 될 테니까. 그저 언젠가 지나가겠지 하며 잠시 방관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Best Regards,
H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