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LO

시대가 고안해낸 '안정'을 찾는 새로운 방법. 나는 욜로다

by 이헤이


쓸모있는 결함 @MUSEE


내가 미성년이었을 땐 안정된 삶에 안주하려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게 어른스러움은 그런 안정된 삶이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알게 되었다.

어쩌면 어른스러움이라는 게 그런 거일 수도 있겠다고.






인간은 필시 '안정'된 상태를 지향한다. 때문에 안정된 삶이 인간이 바라는 최상의 가치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안정이 기성세대가 이야기하는 안정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캄보디아 여행이 생각난다. 그곳에서는 '불안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크게 발전하진 않았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영위해나가고 있었다. 즉, '안정'과 '경제적 성공'은 등위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한 어른은 누군가의 삶을 규정지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미 내가 경험해봐서 그래. 이런 선택을 하는 게 더 행복할 거야."라고 그 길을 강요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기준이 곧 내 아이의 기준과 같을 거라는 성급한 일반화. 한번 살아봤다고, 다음번 인생을 더 잘 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할 것 같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말도 이젠 옛말임에 틀림없다. 5년이면, 아니 3년이면, 아니 어쩌면 1년 만에도 강산이 바뀌는 시대가 왔다. 10년 전을 주도하던 몇몇의 기업은 문을 닫았고, 오히려 과대망상 자라며 손가락질받던 이들이 지금을 주도한다.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시대는 이처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런데 한번 겪어봤다고, 조금 더 빨리 겪어봤다고 그런 구닥다리 대처방안을 강요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시대가 바뀌면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당연히 그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인간이 만약 그간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마 지금도 뗀석기를 사용해 밥을 짓고 씨족사회에 살고 있을 것이다.


유년시절 처음 접해본 컴퓨터는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뭉툭한 상자 속의 세계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넓고 똑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겐 전혀 자연스럽지 않던 것들이 2017년에 태어난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동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체득의 격차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YOU ONLY LIVE ONCE :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요시하는 태도


누군가는 YOLO를 무책임하고 허영심 가득한 멍청한 세대라며 비판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YOLO를 암울한 현실을 살고 있는 요즘 사람들이 고안해낸 고차원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비판하는 이들의 인생의 최대가치가 미래를 위해 돈을 버는 것이라면, 그의 생각에 손가락질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정형화된 잣대로 행복을 규정하고 그에 반하는 것을 그저 철없는 요즘 것들의 반항쯤으로 여기는 섣부른 판단은 따끔하게 지적하고 싶다.


기성세대에게 안정된 삶은 몸을 뉘일 수 있는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이 아마도 그들의 세계에서 최상의 가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열심히 일한 만큼의 정당한 보상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더구나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있는 집을 사는 것도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야말로 성취가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표현해야 할지, 차악의 선택이라고 해야 할지. 우리는 적어도 기성세대들이 꿈이라 부르던 것들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대신 우리의 꿈은 기성세대의 일상과 일생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더 이상 그들처럼 다른 대상을 위해 헌신하지 않는다. 헌신의 대가를 고스란히 받을 수 없는 지금, 헌신은 무의미한 것이다. 대신 스스로에게 헌신하기 시작했다.


기성세대들은 돈을 모으는 방법은 잘 알고 있지만 쓰는 법을 모른다.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혹시 더 필요한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왜 그들은 자꾸만 소비를 노년으로 미루는 것일까.

본디 소비는 필요에 의해 필요한 것만 사는 것이 아니다. 갖고 싶은 것, 원하는 것도 수요다.

저렴하지만 일반적인 기능의 욕구만 채워주는 상품을 사는 것보다 조금 더 값이 나가도 사용하는 순간순간, 그냥 바라만 봐도 묘한 행복감을 전해주는 상품. YOLO는 그 더해지는 행복에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시골에 가게를 차리는 젊은이들,

귀농으로 돌아간 젊은이들,

과열된 경쟁에 지쳐 차라리 아르바이트하는 삶을 택해버리는 젊은이들.


YOLO는 고질적인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서서히 바꿔나가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처방이고 곧 해결이다. 도시 인구가 증가하고 농촌인구가 서서히 줄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욜로적인 생각이 성장하지 못했다면 과연 누가 다시 도시에서 농촌으로 넘어가고 싶어했을까?


여행만 해도 그렇다. 필자가 스무 살 때 여행은 사실 지금보다 훨씬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저가항공도, 저렴한 호텔을 찾아주는 서비스도,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찾아볼 수 있는 커뮤니티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제주도도 2만 원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80세 노인도 혼자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여행이 쉬워졌다.


영양분이 다 빠져버려 어떤 예쁜 꽃을 가져다 놔도 금방 시들어버리던 황무지에 아주 조그마한 새싹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듯, 성취가 없는 불안정한 시대에 YOLO라는 작은 희망이 곧 황무지 전체를 풍요롭게 물들일 것이다. 겨울 뒤에 맞는 봄처럼.





Best regards,

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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