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순간이 아닌 행복한 삶을 찾아라
YOLO .
2011년 캐나다의 한 래퍼가 외쳤던 그 가사 하나는 지금까지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 You only Live once /
한번 사는 인생 마음껏 즐겨라.
이번에 다룰 이야기는 욜로가 가진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과연 어떤 자세로 욜로를 받아들여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필자의 삶에도 남들과같은 욜로의 조각들이 조금씩 박혀있다. 공대생이지만 광고를 지망하는 필자에게 You only live once라는 메시지는 달콤한 응원과도 같았다. 그 시대적 흐름이라는 탈을 쓴 네글자가 단순히 현실도피였을지, 아니면 나의 삶을 살아갈 새로운 자세였을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YOLO라는 시대적 흐름이 내게 긍정적이고 강력한 힘을 실어주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필자의 주변, 굳이 주변을 따질 필요도없다. 이 세상을 조금만 둘러보면 심심치않게 YOLO라는 명목하에 인생을 설계하고, 삶을 구축해나가고있는 이들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은 욜로가 새로운 것인 것 마냥 열광하고, 지금까지도 이 시대의 트렌드인 것처럼 반응하고 있다. 사실 욜로는 유럽에서 한 순간 정의내려진 삶의 방식의 메시지일뿐이다. 물론 한국이든 유럽이든 욜로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존재해왔다. 시대를 앞서 준비하고. 기존의 틀을 거부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왔던 그들은 분명 이세상을 변화시켜왔고, 이 시대를 이끌어온 그들은 욜로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에디슨은 정말 욜로였을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궁금해졌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과연 욜로를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고있는 것일까?
욜로라는 조금은 즉흥적이고 단발적일 수 있는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인생을 설계해나갈 이들에게 욜로는 정말 가치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욜로를 감성적인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지금의 삶에 집중하는 사고방식은 지극히 이성적인 사고방식이지 않을까 싶다. 욜로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않는 지극히 현실에 집중한 사고방식이기때문이다.
한국의 과잉경쟁구도와 경제구조는 미래를 설계해야하는 이들에게 욜로라는 삶의 자세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또한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사회의 부조리한 문화와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부의 계층사회구조 또한 , 새롭게 삶을 일구어나갈 이들에게 있어 욜로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생존해나가는 방법중에 하나였고, 그것만으로도 욜로는 충분히 가치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욜로는 어찌보면 이들의 선택이 아닌 그렇게밖에 살수없는 사회 속에 어쩔수 없이 행복을 짜내기 위한 대안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집중해야하는 부분은 욜로는 분명 해결책이 아닌 대안일뿐이라는 점이다. 현재의 삶에 집중하고 미래의 걱정은 잠시 접어둔채로 소비하고 인생을 구축하고 있는 이들에게, 욜로는 어찌보면 장기적으로 봤을때 위험한 도박과도 같다.
어찌보면 현대사회의 욜로의 끝이 어떨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현대사회의 제도적 틀과 의무적인 커리큘럼들은 그나마 보편적이고 평범한 로드맵으로서, 사회 구성원들을 이끈다. 하지만, 그 로드맵 상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냐에 있어 욜로를 적용하는데에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욜로에 대한 평가는 보통 두가지로 나뉘곤 한다.
1.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현실도피
2.세상의 잣대를 비트는 개성넘치는 현대인의 삶
이는 한사람에 대한 2가지 시선일까?
엄연히 이 둘의 삶은 다르다.
우리가 그동안 미디어에서 보아온 행복에 최대의 투자를 하고, 저축보다는 행복을 위한 소비를 하는 삶. 혹은 일방적인 회사생활 보다는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사는 삶 어찌보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인식되어있는 욜로의 삶은 젊은이들에게 너무나도 매력적인 삶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들은 욜로라는 단어만 없었을 뿐 어느 시대에든 존재해왔다. 욜로라는 단어가 이러한 이들을 우상화하고 젊은이들에게 현실의 시련에 대한 면역력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들이 이렇게 보일 수 있는것은 그들은 모두 세상의 잣대를 비틀지는 않았어도. 미래를 설계하고, 예측하고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구조적 틀 안에서 도전했으며, 피나는 노력과 함께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안정화시키기위해 애써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관철시키기 위해 기존의 경쟁보다도 더한 악조건에서 버텨왔다.
결국 이들은 욜로라는 시스템의 적용을 성공한 후, 혹은 경제적 사회적 자립 후에 선택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어찌보면, 지금의 3040세대가 욜로적 소비에 있어 독보적인 이유는 안정적인 경제력이 바탕되기까지의 노력이 있어왔기에 가능했고, 이들에게 최적화
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욜로의 삶의 우상화는 젊은이들의 삶에 욜로를 0순위로 자리잡게 만들었고, 젊은이들이 단순히 삶의 모토로 욜로를 무장하는 순간, 그들에게 욜로는 지금 삶부터 행복해야한다는 메시지로 들렸다.수많은 젊은이들이 이에 속아 미래를 설계함에 있어 쉽게 포기하고, 쉽게 대안을 찾고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기에, 사회가 부여한 기본적 로드맵조차 거부하고, 필수적인 노력과 열정은 배제된 채로, 환상을 쫓는 젊은이들이 발생하기도 했던 유럽에서는 욜로라는 트렌드의 위험을 미리 경고하고 제대로 인지시키는 사례도 적지않았다. 행복을 위한 소비, 행복을 위한 선택. 욜로는 그 행복을 위한 어떤것도 합리화하는 마법같지만. 결국 우리는 행복한 순간이 아닌 행복한 삶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삶은 길다. 만약 욜로의 삶을 꿈꾼다면, 그 이전의 노력과 남들과는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욜로족들은 자신의 행복한 삶이 아닌 단순히 행복한 순간만을 위해 달려가고있는 있다. 이는 결국 고갈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했을 때 대안없는 좌절만을 안길수도 있다.
욜로는 삶의 자세로서, 인생의 모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현실에 대입했을 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2차적인 선택이다.
우리는 단순히 행복한 순간이 아닌
행복한 삶을 찾아야한다
그 삶을 위한 노력과 함께.
Best Regards,
N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