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자신감이 되어주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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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늘 묘한 설레임을, 끝은 늘 묘한 아쉬움을 동반한다.
그래서 시작과 끝 사이에 서있는 12월은 참 오묘한 달이다. 이별과 만남이 공존하는 오묘한 달이다.
스물여섯의 시작은 스물다섯의 시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하던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여전히 좋은 기회가 내게 왔다. 다만 다른 것은 스물다섯보다는 더 단단해진 나 자신이었다. 아무것도 몰라 지레 겁부터 먹고 시작했던 어린 마음과는 달리 평온과 여유가 넘쳤던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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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응모했던 이벤트에 당첨되거나 추첨으로 뜻하지 않게 선물을 받는 행운은 자주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종종 나는 참 '운'이 없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었다. 스무 살이 조금 넘어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나에게는 그런 소모적인 운보다 훨씬 더 좋은 행운이 늘 함께 했었다. 내 삶은 언제나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여줬다. 마법처럼. 간혹 이런 행운이 전생의 귀인이었던 내가 만들어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쉬고 싶다. 돈걱정 없는 백수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더니 정말로 갑자기 돈걱정 없는 백수가 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기도 했다. 나태하게 살아오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늘 내가 했던 노력들보다 배로 인식하고 있었다. 흘러 흘러 살아온 것뿐인데, 누군가는 내가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저 수많은 길들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마구 떨어져 있는 바닥만을 따라가며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누군가가 했을 심도 깊은 고민도, 누군가가 가졌을 열정도, 누군가가 공들였던 시간도 내게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했다. 불안이 나를 삼킬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원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착착 진행될 때면, 가슴속에서 어렴풋한 불안이 고개를 든다. 갑자기 이 행운이 내게서 사라지면 어떻게 될지.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이 없어질 때 더 불안한 법이니까. 그래서 겁쟁이가 돼버렸다. 시작도 하기 전에 겁에 질려 그때처럼 한참 쪼그라들어있었다. 사람마다 그만의 걱정과 고민이 있다는 걸 받아들일 여유가 없던 그 날의 나는 내 고민과 그의 고민의 크기를 비교해가며 순위를 메겨버렸다. 내가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서.
이상하게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눈물들을 쏟아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조금 다치면 금세 달려가 위로받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잊고 있었나 보다. 그 사람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올해는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 소중했던게 분명하다.
두렵고 무서울 때 한걸음에 달려가 내게 숨을 곳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언제나 나를 위해 그 곳에 위치해줄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스물다섯보다 더 단단할 수 있었다. 세상 억울했던 일도 한 사람만 알아준다면 괜찮아진다는 걸. 너라는 존재가 주는 무게가, 우리가 그간 쌓아왔던 시간의 무게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너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었고, 그런 존재였길 바란다. 우리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함께 이겨냈던 기억을 잡고 오래도록 함께할수 있도록. (일종의 전우애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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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주어졌던 것들은 행운이 아니라 남들보다 발달한 육감이었던 것 같다. 촉이 좋아서, 이유 없이 왠지 이게 맞을 것 같아서, 그냥 이길로 가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이 사람이면 괜찮을 것 같아서. 그런 육감적인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인생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다. 늘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고, 저질렀던 일을 수습하며 살아가는 삶이지만 누구보다 원하는 것에 솔직하고 스스로를 잘 알고 있으니까. 충동적이라고 해서 전혀 관심이 없던 일에 쓸데없이 소모하는 건 아니니까. 고민을 한다는 건 결국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고 있다는 걸 뜻하니까.
이제 막 스물여섯이 되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행운은 직접 만들어가는 거야."라고.
남들과 비교하며 지금의 나를 탓하기보다는 조금 더 내 몸과 마음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그런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순간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거라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기회가 쉽게 찾아올 수 있을 거라고.
이제 막 스물여섯을 끝내는 누군가에게도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너를 믿으라고.
Best regrads,
H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