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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드로잉 Sep 09. 2020

관찰이 밥 먹여준다

관찰력은 모든 예술의 마중물이다

나는 어느 순간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다 보니 글을 쓸 때와 그림을 그릴 때 서로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는데 바로 이 두 분야 모두 관찰력이 뒷받침되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때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글을 쓸 때 책을 읽고 단상에서 소재를 끌어오거나 경험한 기억에서 소재를 끌어오는 것처럼 그림을 그릴 때도 평소 폰에 부지런히 저장한 사진을 보고 소재를 가지고 오는 점은 꼭 닮았다.


이는 책을 읽고 밑줄을 긋는 그 순간!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꺼낸 그 순간! 내게만 떠오른 어떤 생각을 기록하기 위한 습관인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반복해서 복기하지 않으면 결국 소멸하고 말기에 메모하거나 기록하는 습관은 사소한 것을 지나치지 않는 관찰력을 키우는데 아주 탁월한 효과가 있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무례한 사람을 마주쳤을 때다. 예전 같으면 복화술로 교묘하게 욕을 하며 옆 칸으로 이동하고 말았을 테지만 그 무례함을 꾹 참고 있는 건너편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다 보니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는지 은근히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인상을 팍 쓰고 대놓고 노려보는 사람, 곁눈질로 힐끔거리며 소심하게 투덜대는 사람, 아예 이어폰을 꺼내 자체 음소거를 시도하는 사람 등 같은 상황임에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화나고 열 받아하던 내 개인의 감정은 가라앉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지금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더불어 큰소리로 통화하던 아저씨는 결국 급하게 송금해야 되는 돈 때문에 몇 정거장 못가 급하게 내리게 되었다는 것도 적었으며, 허겁지겁 내리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며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면 하는 연민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는 점도 구체적으로 기록해 뒀다. 재미있는 점은 이 모든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는 나를 아무도 의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하철의 일상 풍경

이렇게 직접 경험한 사건을 기록해둔 메모는 우리네 일상의 한 장면을 그려야 하는 상황이 될 때 아주 좋은 소재가 된다. 세대를 가리지 않는 삶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퇴근길 그들의 모습은 내 손을 통해 다시 재현되고 그 상황을 떠올리는 나의 감정까지 더해져 더 깊이 있는 한 편의 일러스트는 그렇게 탄생된다.

   

또한 타인에게 공감을 했던 경험에 대한 글을 써야 하는 때도 이 기록은 전혀 다른 글로 발전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된다. 다른 이들은 큰소리로 매너 없이 통화하던 사람으로 기억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급하게 사업적으로 송금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놓였던 안타까운 사람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매너와 비매너의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이해해줘야 할까라는 전혀 다른 생각으로 사유하게 될 때도 있다. 그렇다 보면 도덕적 인간에 대한 책을 다시 찾아보게 되고 그와 관련된 책을 읽느라 독서의 시간에 흠뻑 빠지게 되는 즐거운 경험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전공은 그림이지만 취미가 글쓰기가 되면서 어느 순간 내가 뭘 더 좋아하는지 기분 좋은 혼란에 일상은 이렇듯 한층 더 풍요로워졌다. 진한 아메리카노에 갓 나온 따뜻한 베이글을 함께 하면 그 시간이 더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느낌이다. 몰랐던 과거가 살짝 억울하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알게 돼 언제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나의 오늘은 어제보다 더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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