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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드로잉 Sep 17. 2020

미대생은 다 그림 잘그리나요?

잘 그린다는 것의 의미


미대를 나오고 사람들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정말 미대생들은 그림을 잘 그리는지에 관한 호기심 어린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참 난감하다. 미술대학을 올 정도면 일반 사람들에 비해 당연히 그림을 잘 그렸으니 그것을 전공으로 해서 대학에 간 것을 모르지 않았을텐데 질문을 하는 것 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잠시 말성이게 된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 ‘당연하죠’ 라는 짧은 대답만으로는 그들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대신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오히려 내가 질문하는 것으로 나의 긴 대답은 시작된다.




문 열고 들어가는 사람 있으면 문 닫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미대라고 다를 것이 없다. 같은 미대생이어도 과제를 한꺼번에 공개하는 순간 ‘우와~’ 하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드로잉 실력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저런 실력으로 미대에 들어왔지 싶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미대생이 그림을 못 그린다는 것이 엄청나게 큰 결점인 걸까?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은 미대에 오면 안 되는 건가?


아마도 중세의 화가였다면 그것은 화가로써의 성공은 물 건너 갔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지금 현대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의 의미에는 여러 해석이 존재하기에 과거의 잣대로 판단하기에는 다소 무리다. 과거에서라면 ‘화가’의 실력을 평가하는 잣대는 당연히 ‘사실적 재현’이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눈앞의 사물이나 사람을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해 내는 능력. 어쩌면 실제 보는 것보다 더 멋지고 더 웅장하게 그려내는 능력이 화가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19세기 후반에 몰아친 ‘인상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네, 1873, Impression
파블로 피카소, 1937, Portrait of Dora Maar




인상주의 미술은 기존의 모든 전통적인 회화기법에 반기를 들며 색채, 색조, 질감 자체를 표현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화가들의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고, 색채나 색조의 순간적 효과를 이용하여 눈에 보이는 세계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려 하였다. 우리에게 알려진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로는 모네, 마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고갱, 고흐 등을 들 수 있다. (두산백과 참고) 초기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은 대중에게 환영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다 만 그림’ 혹은 ‘미완성을 완성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란 오명을 그들은 격렬히 거부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인상주의에서 뻗어 나와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화가들의 명작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상주의가 없었다면 피카소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 시대에서 ‘잘 그린다’는 의미는 ‘잘 표현한다’ 혹은 ‘잘 담아냈다’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중세라면 가장 사실적인 사과를 그린 화가에게 박수를 보냈다면 지금은 사과같지 않은 형태에 사과의 의미를 부여해 직접적인 사과를 그려내지 않더라도 보는 이로 하여금 ‘사과’를 떠올리게 하는 화가들이 더 주목받고 있다. 사과를 사과 같지 않게 표현해야 한다니.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통합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현재 미대 입시 요강을 살펴보면 아예 실기를 보지 않는 대학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은 꽤 오래전부터 다. 일반인들은 '미대에 입학하는데 미술 실기를 보지 않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이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현 시대가 화가에게 요구하는 재능의 기준이 달라진 '작금'을 가장 먼저 체감하고 반영하는 곳은 바로 학교다. 그 결과 대학은 학생들에게 사과를 사과 같지 않게 그리지만 사과임을 전달해야 하는 엄청난 사고 체계를 교육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주고 있다.




그 때 그 시절, 사실적인 그림 잘 그리기로 유명한 선배의 그림 앞에서 그의 묘사력에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곤 했다는 기억은 난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신 어설픈 그림이었을지라도 자신만의 해석을 들려주며 함께 그림의 주제에 대해서 토론 하면서 모두와 의견을 나누게 만들었던 그림만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바로 ‘문 닫고’ 들어왔다고 사람들이 수근대던 어떤이의 그림이었다.



대문이미지 출처 : http://www.madelinehutchinsonart.com/#/new-galler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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