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떠오르는 대로 솔직하게 적는다면
재직하던 항공사에서도 채용을 재개하고 7월에 한국을 찾는 모양이다. 아마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을 테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성공담에 귀 기울이고, 화려한 면모에 쉽게 매료된다. 게다가 무언가 동경의 대상이자 꿈 혹은 목표로 삼은 것이라면 아주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외항사 승무원은 살며 한 번쯤 해보면 좋을만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한다. 매우 매력적인 일임에 틀림이 없고 경험자로서도 누구에게나 추천할만한 직업이다. 반면에 근속이 상대적으로 길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왜일까? 불나방처럼 달릴 것이 아니라면 도전을 결심하기 전에 무엇을 고려하고 계획해야 할까. 도전해야/말아야 할 이유를 양면으로 풀어 보려고 한다.
1. 비교적 높은 초봉에서 시작하고 싶다
승무원 연봉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급여는 기본급+비행수당+체재비의 세 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찾아보면, 에미레이트 연봉을 말할 때, 이 세 부분 더하기 주택비 같은 혜택 부분을 더하기도 하는 것 같다. 두바이에서 미혼으로 입사를 하면 회사가 제공하는 아파트에 지낸다. 이외의 직접 주거를 얻길 원하면 비용을 지급받을 수는 있지만 두바이가 렌트가 싸지 않다. 직급 따라 주거비 규모도 다른데 이코노미 크루로서 받는 주거비는 오히려 손해 수준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이 부분을 연봉에 보태면 연봉이 부풀려진다. 또한 UAE는 택스프리 국가다. 올해 들어 부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은 떼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연봉은 세전 연봉을 언급한다. 때문에 두바이 베이스 승무원 실수령 급여를 국내 연봉 테이블에 넣어서 설명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면 연봉이 크게 보이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승무원 급여는 일반적으로 사회 초년생이 받는 평균을 상회한다. 비행시간은 보통 휴가가 없다면 90시간 안팎 정도이고, 이 경우 실수령 300만원 전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 수준 이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부러 비행을 더 하려고 하면 100시간을 넘기게 되기도 하는데 그럼 더 많이 받을 수도 있다. 또한 어떤 항공사들은 체제비가 급여에 포함되어 나온다는데 에미레이트의 경우에는 호텔에서 현지 화폐로 직접 수령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금액은 어느 지역에 레이오버를 가느냐에 따라 다른데, 이를 급여에 추가하면 더 늘어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높은 초봉을 받고자 하면 나쁜 선택이 아니다. 바짝 일하고 바짝 모은다고 생각해도 좋고, 일하면서 충분히 여행하고 즐기고 싶다고 생각해도 아주 좋은 기회다.
특히 이런저런 혜택이 돈을 모으려고 생각하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 따로 주거비 부담이나 각종 공과금 낼 일이 없고, 크루 버스가 숙소와 헤드쿼터 사이를 다 연결하고 있어서 교통비도 들지 않는다. 먹는 것에 예민해서 직접 꼭 싸들고 다녀야만 하는게 아니면 비행하면서 크루밀이나 서비스 후에 이것저것 식사 해결하기도 어려운 편이 아니다. 게다가 호텔 룸서비스나 식사 같은 것들은 보통 30-50% 할인되기 때문에 부담되지 않는다. 유니폼도 헤드쿼터에서 무료로 세탁을 맡기고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관리도 어렵지 않다. 아, 그리고 면세품 판매를 했을 때 수익에서 10% 커미션을 받을 수 있는데, 이 때문에 면세 판매 맡기를 좋아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일부러 면세 판매가 많은 구간을 주로 비행하려고 하면서 면세를 자원하는 이 전문적(?)인 크루들은 본봉보다 커미션이 더 많기도 하다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근속에 따르는 연봉 인상률과 퇴직금 제도가 조금 애매하긴 하다. 해마다 기본급 조절이 일부 있을 수는 있지만 미미한 수준이고 기본급 자체는 전체 급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비행수당인데 이 조정도 큰 차이가 있다기보다, 승진을 해야 비행수당이 그나마 팍 오르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비즈니스로 가니 대략 월급으로 30만원은 더 나오는 것 같았다. 물론 부사무장이나 사무장이 되면 훨씬 상승폭이 크다. 퇴직금의 경우, 국내를 생각해 보면 30일치 평균임금을 퇴직금 명목으로 적립하는데, UAE(EOSB;End of Service Benefit)에서는 이를 최초 5년까지는 21일치의 평균임금을 적립시킨다. 문제는 승무원의 기본급이 적다는 점이다. 보너스도 기본급에서 주기 때문에 8주치를 준다고 해도 기본급에서 계산해 보면 금액이 그리 크지 않다. 이 EOSB도 받으려면 3년을 채운 뒤에야 수령이 가능한데 이게 3년 정도에 대략 300여만 원 밖에 안 된다. 참, 3년의 계약기간을 채울 시 계약 달성금으로 별도 180여만 원을 추가로 받기는 한다. 돈 받은 것을 생각해 보며 적어보니 급여 측면에서는 알려진 만큼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좋은 수준이다 싶다.
2.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물론 있기도 하겠지만. 나 역시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외항사 승무원은 좋은 직업이다. 돈 벌면서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장애가 되는 것은 두 가지, 짧은 체류시간과 잠과 체력의 영향이다. 보통 에미레이트의 레이오버 비행의 체류시간은 만으로 하루 수준이다. 이는 매일 취항하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일 수 있다. 그만큼 순환이 빠른거라. 네트워크가 어마어마하게 넓어서 전세계 다 가는게 장점이긴 한 대신 매우 바쁜 항공사라 스테이가 짧다. 물론 미주 지역이나 일부 여러 도시를 거치는 비행은 이틀 정도 머물기도 하고, 계절적으로 운 좋게 2, 3일 이상 머무는 편명을 운항하기도 하는데 그런 비행은 다들 받고 싶어하기 때문에 경쟁이 있다.
이렇게 대부분 24-30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씻고 자고 먹고 놀고 여유 시간이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처음 1-2년까지는 문제가 거의 없다. 좀 덜 자도 체력이 부치지 않고 아직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어딜 가나 방방 뜨고 신난다.
나의 경우, 그렇게 1년 반 정도가 지나자 여행지들이 그룹별로 묶이기 시작했고, 가고 싶은 하고 싶은 리스트를 달성해 가자 조금씩 흥미를 잃어갔다. 여행지마다 비슷한 액티비티는 걸러가게 됐다. 자주 갔던 도시는 그냥 산책 정도 하며 분위기를 느끼다가 마트에 가서 장 보고 오곤 했다. 출장으로 해외 가면 그것도 일이라고 하는 것처럼, 비행은 비행이지 여행이 아닌 것.
나에게 있어 여행은 계획하며 기대하는 설렘과 현장에서 그것들을 확인하며 느끼는 즐거움,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그 시간을 공유하며 주변 사람들과 쌓는 추억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뒤로 뭐든 재미가 없었다. 스케줄 따라 흘러 다닐 뿐 점차 무뎌짐이 서글펐다. 좋아한다던 여행이 더 이상 과거의 의미를 갖지 못하자 이 직업을 계속할 큰 동기 하나가 사라진 것 같았다. 물론 새로 취항하는 곳이나 그동안 내가 가보지 않은 도시들을 가보는 일은 여전히 설레는 일이다. 주변에는 여전히 오프가 길 때 이곳저곳 스스로 못 가본 곳에 계획을 짜 여유를 갖고 여행을 다니고 아직 흥미를 갖고 활발히 여행을 다니는 친구들, 동료들도 많다. 나의 경우에는 여행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질문을 많이 던지게 되었고, 모두에게 소비되는 여행이 아니라 나의 여행을 정의해 가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사실 어딜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어딜 갔다는 것도 부러움이나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어디서 누구와 함께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러니 내가 여행의 어떤 면을 좋아하는지 꼭 묻길 바란다.
참, 그리고 모든 비행이 레이오버 비행인 것은 아니다. 도착지까지 비행시간이 4시간 이하면 승객들 싣고 가서 내려주고 새 승객 받아 돌아오는 턴어라운드 비행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스케줄 받기에 따라 다르지만 그래도 턴어라운드가 월에 보통 2, 3개 정도였지 않나 싶다.
3. 향수병(홈앀, Homesick)에 무디다
국내 유수의 항공사와 달리 외국 항공사에서 일한다는 가장 큰 단점은 아마 베이스가 집이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점이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나이대에 진입하면 누구나 정착에 대한 욕구가 생기고, 어느 순간부터 나도 중요하지만 가족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많은 한국인 외항사 승무원들이 그리 생각한다. 아, 정말 다 좋은데 베이스만 한국이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집에 자주 갈 수 있는 환경이나마 조성되면 좀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두바이에 정착할 수 있을지 아니라면 얼마나 머물러야 할 지를 결심해야 하는 때가 반드시 온다.
향수병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나름 타지 생활을 해봤다고 여겼는데 그때는 그다지 집을 그리워해 본 적이 없어서 무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두바이에서 극심한 향수병에 시달렸다. 특히, 집에 가지 못했던 첫 10개월 동안 정말 심적으로 힘들었었다. 아마 집에 가는 친구들도 많은데 왜 나는 못 가는 걸까? 게다가 여기저기 다 가는데 집만 못 간다는 아이러니함 때문이었을까. 아예 못 간다고 생각하면 나았을 텐데.
'집'에 대해서는 초반에 좀 운이 나쁜 편이었다. 이렇게 내가 처하게 될 조건은 아무도 모르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면 여기 놀러온 것이 아니라 일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회사를 통해 주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지 바꾸거나 제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어쩌다 보니 휴가도 늦게서야 집에 갈 수 있었고 비행으로 집에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회사에 이코노미 크루들 중에 한국 승무원들이 많아서 서울 비행 가는 것이 매우 경쟁적이었다. 그나마 비즈니스에는 한국 승무원들이 적은 편이라, 승진한 뒤 마지막 1년 정도는 매달,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은 비행으로 집에 갔던 것 같다. 그때부터 이렇게 집에 자주 갈 수만 있으면 계속 여기서 지낼 수 있겠다 싶었다.
어떤 친구들은 월에 5일 연속 오프가 있으면 무리해서라도 집에 다녀오곤 한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했다. 3년간 저축을 어느 정도 하고자 했기 때문에, 집에 가게 되면 비용이 아무리 적다 해도 무시 못할 수준이 든다. 90% 할인 티켓이어도 왕복에 어쨌든 20만 원은 써야 되고, 가서 어쩌고 하다 보면 돈이 훅 빠져나간다. 그래서 우리들끼린 집에 자주 가면 돈 모으는 것은 글렀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오래 커리어를 가져갈 계획이라면 이렇게 집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외로움이나 주변인들과의 주기적인 관계도 무척이나 그리웠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에 늘 내가 없을 때가 많다 보니 처음에는 미안하다가 나중에는 스스로가 서글퍼졌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잃어가는 것 같으니 마음이 극심하게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가족, 친구들, 소속 집단, 모임 등등 관계라는 부분이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직업이 주는 공허함이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약속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아니라 직장을 삼아 기약 없이 타국으로 떠나온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다. 실제로 많은 한국인 크루들이 그런 부분들을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다. 이 부분은 겪지 않고는 어떻게 말하기 힘든 부분인 것 같다.
4. 체력이 좋고 잠과 관련 예민하지 않다
승무원을 오랫동안 하면 건강하던 사람들도 골골대는 때가 온다고 한다. 자주 본 것은 평소에 없던 알레르기가 발생하는 경우였는데, 이런 면역 이상으로 발생하는 건강 문제를 한 번쯤은 겪는다. 흔한 고질병이 많은데 나열해 보자면, 일단 역류성 식도염/후두염. 이 질환은 불규칙적인 식사와 먹고 바로 잠드는 습관 등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한다. 나 역시도 역류성 후두염이 갑작스럽게 찾아와 꽤 고생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만두고 규칙적으로 지내기 시작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나아졌다. 그리고 부비동염? Sinus infection, 기압 차에 따라 생기는 염증 질환이 잦다. 언젠가 한 번 아주 미미한 감기가 있었는데 모르고 비행을 했다가 착륙할 때 귀 안이 압축되며 쪼그라드는 그 느낌 때문에 귀가 터지는줄 알고 공포에 휩싸였었다. 또 무거운 오버헤드 라커를 닫을 때, 비즈니스에서는 도자 재질의 식기가 무거워 손목이 나가기 십상이다. 외항사는 손님 짐을 들어주다가 다치면 나만 손해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짐 들어줄 의무가 없다고 하지만, 무거운 컨테이너들을 옮기거나 하다가 허리 다치기도 쉽다. 길고 힘든 비행 끝에 숙소에 와서 잠을 청하면 손목 발목이 저리는 느낌 때문에 잠들기 힘든 적도 있었다. 물론 다행히 나는 크게 아픈 적은 없었다. 3년간 허리가 한 번 나가서 11일 정도 Sick을 딱 한 번 낸게 전부였으니. 워낙 강철체력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일하면서 오히려 다른 때보다 더 건강했던 것도 같다.
면역 이상을 왜 겪을까? 건강한 사람도 축나는 게 승무원 생활이다. 아마 생체리듬이 깨진다는 것이 굉장히 클 것이다. 불규칙적인 잠, 식사 등의 생활 환경. 이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그다지 큰 관심사도 아닌 듯하다. 북극 항로에서 노출되는 방사선량에 대한 위험 수준도 명확히 고지되지 않는다. 최근에 이 부분이 기사화되는 것을 보았는데 재직했던 곳에서도 딱히 이런 부분을 알려주진 않았다. 트레이닝 때 일부 온라인 코스로 설명되는 정도, 그리고 권고 노출량. 다행히 중동발 비행은 미주 지역으로 가는 게 아니면 딱히 직접적으로 북극 항로를 가지는 않기 때문에 안심하긴 했지만 고도에 따라 높아지는 것이 우주방사선량이기 때문에 막론하고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공항의 수많은 X-ray 보안 장비들도 이쯤되면 눈에 들어온다. 건강관리/체력관리가 정말 중요하다.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하고, 영양제도 여러 종류 챙겨 먹고.
잠의 경우 머리만 대면 잘 정도로 잠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본 적이 거의 없던 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정이 넘어 출근해야 되는 비행에 맞춰 초저녁에 눈을 붙이려 했는데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하고 비행을 가게 된 적이 있었다. 잠을 자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괜히 예민했다. 그날 이후 한동안 잠을 자려고 하면 그때 생각이 나 도리어 잠들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런데 곱씹어보니 잠을 못 잤다기엔 평소에 자느라 시간이 다 갔었다. 보통 사람들이 1/3을 잠으로 보낸다고 하면 나는 거의 1/2 이상을 자다 보냈으니 사실 잠이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안 자고 비행 가도 큰일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랬던 것을 상기해 보자 그 뒤로 잠에서 다시 자유로워졌다. 여전히 평소에 엄청난 시간을 잠으로 보내기 때문이겠지만.
매우 우울한 이야기지만, 사실 승무원들 중에 일시적 우울감이나 우울증에 걸리는 비중도 상당하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살도 많고. 매우 화려한 라이프스타일과 그 후에 오는 혼자만의 공허함, 간극 같은 것들 때문이 아닐까. 내 경우에는 조금 그랬다. 혼자라는 그 기분과 의미가 없어지는 일상 때문에 눈을 뜨고 있어도 별로 할 것이 없으니 깨어있을 필요를 못 느낀 적도 있었다. 그래서 잠을 더욱 자려고 했던 시기가 있을 정도였다. 온보드에서 이야기 해보면, 국적 막론, 두 부류다. 두바이를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5. 플랜비를 가지고 있거나 그와 무관할 자신이 있다
누군가 말했다.
"재밌지 않아? 헬조선 현실에 밀려서 외국 항공사의 문을 간절히 두드리다가, 몇 년여 재직 후 결국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그 사람들 중 일부가 학원이나 과외 시장으로 흘러가 다시 외항사를 꿈꾸는 지망생들을 가르치고. 아이러니한 것 같아."
끄덕끄덕 하며 듣긴 했지만 매우 뼈 아픈 이야기였다. 퇴직 시기를 대강 가늠했을 때, 비슷한 시기 입사한 사람들 역시 3년을 기점으로 나처럼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 더 남을 것이냐, 돌아갈 것이냐. 돌아간다는 사람들에게 많이 듣는 것은 영어나 승무원 관련 과외나 학원이었다. 적어도 징검다리 정도는 되어주지 않겠나 하는 마음은 누구나 비슷한 것인가 보다. 혹은 일반 회사로의 이직을 시도하거나/드물게 이미 이직 회사가 정해졌거나, 다른 항공사(국내로의 이직은 최소 4년 이상이 필요하다는데 현재로서는 이 길도 매우 좁다고 알고 있음)를 가게 됐거나/지원해 볼 참이거나(한국이 베이스인 유럽계 또는 국내), 개인 사업을 준비하거나, 더 공부할(CS 계열로 진출, 영어 등등) 결심이거나, 결혼하게 됐거나, 쉴 계획이거나. 대개 이 중에 선택지가 있다.
나이가 대학 졸업 직후인 경우, 입사해서 3년 바짝 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여전히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다고 본다. 나 역시 한국에서 첫 직장을 26살에 얻었으니. 실제 외항사에서 1, 2년 정도만 일하고 26-28살에 돌아가서 일반 회사로 입사를 한 분도 봤다. 외국계 기업에 외항사 경력을 인정받고 취업했다는 분 이야기도 건너 들은 바가 있다. 다만 에미레이트 안에 있으면, 여전히 승무원으로 남기를 결정한 사람들만을 보게 된다. 이미 떠난 사람들의 모습은 전해 듣는 정도에 그친다. 어떤 분들은 돌아가기를 결정했으나 한국에 가서 오히려 비행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말도 들었었다.
이상하게 입사한 직후, 내가 만났던 많은 한국인 선배들은 나에게 계속 꿈이 있으면 빨리 돌아가라곤 하셨다. 중간이 없다고. 떠나려면 빨리 떠나고, 있으려면 오래 있을 결심을 미리부터 하는 게 좋다고. 애매한 나이에 접어들어서 한국에 돌아갈래도 돌아갈 수 없게 된다고. 또 어느 날은 27년 여를 비행했다는 레바니즈 부사무장이, 이제 갓 비행 시작한 나에게, 한중일 이쪽 나라 친구들은 특수한 경우 아니면 여기서 정착하는 것 쉽지 않은 것 잘 알고 있다면서, 꼭 저축해서, 금액 목표 달성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고. 나중에 돌아가고 싶은데 모은 돈 없어서 못 간다고 하는 애들 많이 봤다고 조언한 적도 있었다.
나는 일단 3년만 하자는 결심을 오기 전부터 했던 상태였다. 30살 극후 시점에 에미레이트를 떠나는 나에게는 많은 선택지가 없었다. 다음은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것으로 하자고 막연히 마음 먹었던 참이라 조금은 무식하게 달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에 와서 재취업을 하든 뭘 하든 현상유지를 못하리라는 것이 불안요소였는데 만약 또다시 엉뚱한 도전을 한다면 상황이 조금 어그러지더라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서랄까. 아닌게 아니라 이쯤 되면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가서 어쩔지 몰라서, 어쨌든 현재의 달콤함을 내려놓을 용기를 못 내는게 보편의 두려움이다.
일하면서 오랫동안 일한 한국인 선배님들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특히 부사무장, 사무장의 자리까지 오르신 분들의 경우는 더더욱. 그만큼 그곳에서 노력하고 스스로를 잘 다듬어서 승무원으로서 최고의 자리, 다른 승무원들을 통솔하는 리더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저런 모습일 수 있다면 오랫동안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했던 한국인 사무장님은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하지만 두바이에 남아 오랜 기간을 결심하려면 어느 정도 기반이 있어야 하는 것도 무시 못할 사실이다. 나에게 두바이는 집이 될 수 없었다. 근속이 긴 국적을 보면 아무래도 중동계, 인도계 혹은 필리핀과 같은 동남아 국가가 많다. 비슷한 문화권이거나 집이 가깝거나 등등. 아니면 고국으로 돌아가도 이만한 급여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경우들.
플랜비가 중요하다. 이래저래 어그러졌을 때 어떻게 할지. 승무원을 얼마나 오랫동안 할지, 하고 난 다음 나는 무엇을 할지. 그 뒤까지 보지 않으면 필시 헤맬 수밖에 없다. 헤매는 순간, 꿈 같았던 나의 승무원 생활이 갑자기 지옥 같은 현실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갔는데 쭈그러져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왕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어야지 않을까. 방향을 잘 잡고 가자.
6. 서비스직이 천직이다
캐나다에서 서버로 8개월간 일하면서 서비스직이 꽤 재미있고 나와 잘 맞기도 하는 부분이 있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여행을 한다는 것보다 여러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비행하는 자체가 좋았고 승객들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존재의 의미를 찾았다.
어떤 친구들은 일하다가 보면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되는건가 하는 현타를 겪기도 한다고 한다. 흔히 승무원이 감정노동이라고 하지만, 내 기준, 특히 일했던 항공사에서는 딱히 감정노동이라 부를만한 어려움은 없었다. 물론 주변에 저 친구는 왜 저렇게 운이 없나 싶을 정도로 이상한 동료, 승객만 만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이 부분은 스스로 이런 계통의 스트레스를 얼만큼 극복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본다. 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감상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처럼.
그리고 사실 인종차별은 나쁜 것이지만, 아무래도 일하다 보면 인종들이 특성별로 묶이고 그에 따르는 선입견을 갖게 되는 단점이 있다. 서비스업이 천직이라는 것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과도 관계가 있지 않은가. 뭔가 전세계 사람들과 친구 되어 즐겁고 신나게 일하다 보면 편견이 다 사라지고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상상했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인 때도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 행동 패턴이 아무래도 다 비슷하기 때문에, 그 손님은 나에게 처음 하는 요청인데 앞에서 여러번 비슷하게 반복되었다 보면 짜증으로 적립되서 괜히 별거 아닌데도 엉뚱한 사람한테 과민반응하게 되기도 한다.
내 기준이겠지만, 어떤 동료들은 서비스직이랑 안 맞아 보이는 경우도 많다. extra miles 하려는 그런 태도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은데 어떻게든 일을 안 해보려고 꼼수 부리거나, 승객들한테 진심으로 대하지 않거나 그런걸 보면 사실 안타깝다. 충분히 가능한데도 거절하고 괜히 못되게 구는 동료들도 많이 봤다. 한 번은 꼬마 손님이 비즈니스 전자 구동 좌석 사이로 플레잉카드 일부를 떨어뜨려서 콜벨을 울렸다. 동료 하나가 갔다 왔는데 콜벨이 또 울렸다. 나는 가서 의자를 이리 눕혔다 저리 세웠다 하며 카드를 다 꺼내려고 발버둥을 쳤다. 팔을 그대로 좌석 사이에 밀어넣었다 뺐다 하니 그 벨크로에 좌라락 긁혀 상처가 나기도 했다. 먼저 다녀온 동료가 나중에 묻는다. 자기는 사실 못한다고 했다고. 만약 꺼내주려고 했어도 한 두어 장 꺼내주고 이제 더이상 못 한다 하고 말았을거라고. 뭐하려고 그렇게까지 하냐고. 특히 그 아이 버릇 없기 짝이 없었는데. 뭐 고맙다는 말이나 제대로 들었냐고.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고맙단 말 들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일단 내가 할 만큼 했으니 내 만족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늘 그리 혹자의 표현으론 멍청(?)하게, 하지만 적어도 나는 진심을 다해 일했다.
물론 일하다 보면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전체 흐름을 위해 어떤 부분은 포기해야 되기도 한다. 특히 적절한 시간 안에 무언가를 수행해야 하고, 때로는 안전과 연결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다루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마냥 친절한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금도 비행기에 올라 승객들과 마주하던 순간이 언제나 그립다. 그 어느 멋진 도시를 가는 것보다도 비행 그 자체가 늘 재밌고 뿌듯하고 뜻깊었다. 혼자 있을 때 우울하다가도 비행 가서 동료들과 승객들과 어울리며 웃고, 내 작은 행동으로 만족을 가져가는 승객들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누군가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그 사람들로부터 감사함을 표현 받을 때, 오히려 내가 더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7. 일은 일일 뿐이다
돌아봤을 때, 비행하는 일 자체가 돌아다니는 것보다 좋았던 것은 일 자체에 대한 사명감과 의미부여가 큰 성향 탓이라 생각한다. 일을 통한 자아실현이 굉장히 중요하고, 어떤 일을 할 때 스스로의 역할 효능감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다. 이 일을 하며 이 부분이 사실은 많이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그러한 부분이 언제나 빛나지만은 않는다. 게다가 좋은 결말은 비행이 무사히 잘 마무리 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물에 형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가끔 compliment letter(칭찬 레터)를 받을 때면 보상 받는 기분이 들긴 했다.
입사 초반에는 비행에서 개인 평가 제도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이 제도가 단점과 잘못, 실수 등을 꼭 발견해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매우 부정적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게다가 시니어들은 이러한 잘못을 반드시 찾아 리포트 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러니 서로간에 신뢰가 쌓일 수 없었고 99를 잘했는데 1을 잘못하면 그것으로 모든 공과가 무너지기도 했다. 이 제도는 중단되었고, 긍정적인 행동을 보상하기 위한 제도로 개선되어 퇴사할 즈음 다시 재개되었었다.
매 비행은 별 탈이 없을 때, 그냥 별일 없이 지나간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매번 비행하는 동료가 다르기 때문에 누가 나의 평소 행실이나 퍼포먼스에 대해 증명해줄 경우도 보장받을 수 없다. 만약 운까지 나빠 그날 시니어가 딱히 나를 커버해줄 의사가 없다면 그냥 사지로 내몰리는 것이다. 늘 즐겁고 신나게 비행하던 친구가 비행 중 일어난 사소한 실수 때문에 어떤 처분을 받을지 몇 주를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순간 파리 목숨으로 전락하는 승무원의 위치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잘한 것은 발견되지 않고, 아주 작은 실수만 부각되어야만 하는 현실이. 어떨 때는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일은 내가 다 했는데, 실제 공과는 엉뚱한 사람이 받는 경우들도 본다. 그러면 동기부여 따위는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누가 나를 알아줘야 더 열심히 일하고 싶지 않겠는가. 애써봤자 그냥 평타 치는 수준이니까 그냥 대충하려는 동료들도 많아지는 것 같았다.
어떤 형태의 업무를 하든 그 성과를 지표화 하고, 제대로 하나의 인력을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회사가 갖고 있는 툴이 공정하다고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멀쩡한 리더가 적고 매너리즘에 빠진 시니어들을 볼 때면 더욱 실망스러웠다. 그런 시니어들을 볼 때면 여기 오래 있으면 저렇게 되는건가 싶어 롤모델도 없다고 느껴졌다.
또한 일을 할 때, 어떤 소속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한데, 매번 새로운 크루들과 비행하다보니 소속감이 다소 약할 수밖에 없다. 물론 모두가 처음 만나도 우린 다 같은 에미레이트 캐빈 크루이니 허물 없이 친하게 지내는 것이 최장점이지만, 한편으로 인간적 교류보다 피상적이라는 느낌을 완전하게 지울 수는 없다. 2만 여명이 넘으니 같은 사람과 여러 번 비행하면 그나마 인연이다.
물론 이런저런 것들을 포기하고 요리조리 꾀만 좀 부리고 지내면 하루하루 그냥 아주 순탄히 지나가는 무탈한 공간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그랬고. 자아실현이나 나의 역할 효능감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 소속감은 다른데서 찾고 그냥 일은 먹고사는 수단으로서 여겼다면 좀더 편했을까.
8. 여가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feat. 투잡)
여가시간이 정말 많다. 내 기준. 비행 사이사이 오프가 길다. 최대 5일 연속 오프도 받을 수 있다. 한 달에 최소 9일 이상은 오프로 주도록 정해져 있는데 보통 10, 11일은 완전한 데이오프였다. 비행은 한 달에 90시간(최근에는 크루 부족 현상으로 100시간을 기본으로 넘긴다고도 들었다.) 안팎인 경우가 보통인듯 하다. 만약 랜딩이 새벽 이르게 내리면 그날 하루도 거의 쉬는 날이나 진배 없다고 보면 된다. 이런 시간을 활용하려고 결심을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무슨 일을 해내도 해낼 수 있는 그런 여가시간이다. 실제로 투잡을 하는 친구들도 보았다. 레스토랑을 운영하거나 작가로 일한다든지. 아니면 소규모로 물건을 판다든지. 혹은 자기계발을 위해 시간을 활용하는 경우는 더욱 많았다. 승마를 배우거나 외국어를 배우거나 혹은 온라인 학위를 진행하는 것도 보았다. 물론 나는 의지가 박약한지 이것저것 건드려봤다가 끝까지 끝내지를 못했다. 계획도 많고 꿈도 많았는데 이상하게 많이 쳐져서 의욕이 많이 없어진 상태였다. 핑계일까. 그게 지금도 좀 후회가 된다. 만약 이런 것들을 잘 활용한다면 향후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승무원 직업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족한 점들을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9. 가족들에게 해외여행을 시켜주고 싶다
일하며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가족들과 다닌 해외여행이다. 항공사마다 이 가족티켓, 지인티켓 제도의 상세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재직했던 곳에서는 직계가족뿐만 아니라 형제자매까지 90% 할인 티켓 혜택을 줄 수 있다. 대신 두당 2장까지 가능하다. 그런데 이 1장 개념 안에 하나의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의 이동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ICN-DXB-FCO/BCN-DXB-ICN 이런 식으로 여러 구간을 넣을 수 있다. 아마 6 구간까지 가능하던가. 가족에게 50% 할인 티켓은 무제한이다. 아마 승무원 생활을 안했더라면 가족들을 이렇게 데리고 해외여행을 시켜드릴 수 있었을까 싶다. 사실 나의 부모님은 살며 일밖에 모르며 지내셔서 휴가 내는 것도 어색해 하셨다. 그래도 다행히 소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여기저기 모시고 다녔는데 요즘 같이 여행이 흔한 시대에 이게 두분께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별게 아닌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효도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덧붙여, 90% 할인 티켓은 본인은 무제한이다. 그런데 이게 무조건 대기 티켓이다. 해당 편명에 정상 손님과 50% 할인 티켓을 다 태운 뒤에, 여분 좌석이 있어야 탑승이 가능하단 소리다. 오버북이거나 피크 시즌에는 아무리 쉬는 날이고 휴가여도, 서울 가는 비행기에 절대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단 소리다. 실제로 한국인 승무원이 900여 명에, 서울 비행에는 스태프 티켓 탑승이 다른 편명에 비해 매번 높은 편이니 집 가는 것도 경쟁이다. 자리가 부족하면 입사순으로 좌석을 가져간다. 우리의 소원은 부디 취항을 더 해줬으면 하는 것이었다. 제발제발 집에 좀 가게. 이 티켓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것이 어마무시했다. 나 역시 탑승에 실패해 일단 홍콩으로 가서, 타 항공사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간 적도 있었다. 타 항공사 티켓도 협약에 따라 승무원들은 스태프 티켓을 이용할 수 있다.
참, 본인은 ALT(Annual Leave Ticket)이라고 해서 해마다 1장, 3년까지는 지정한 국적 국가로, 이후는 어디든 갈 수 있는 티켓 종류가 있다. 이 티켓은 무료이고, 그냥 무조건 탈 수 있는 확약 티켓이다. 집에 1년에 1번은 꼭 갈 수 있게 해주는 나름의 배려다.
또한, 3년 계약을 달성할 때마다 세금만 내는 티켓(SRC)이 또 1장씩 나오는데, 이 티켓은 직계가족 누구든 사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좀더 높다. 게다가 퇴사시 여분이 있을 경우 퇴사한 후에도 사용이 가능하다. 물론 확약이 아닌 대기지만 이 티켓을 사용하면 한국에서 유럽을 왕복한다고 해도 채 10만원이 안 나온다.
지인티켓은 연초에 리스트를 20명까지 걸고, 50% 할인 티켓을 해마다 10장까지 쓸 수 있다. 자, 그런데 이 50% 할인 티켓은 자리가 확약이긴 하나, 첫째, 여분 좌석이 반드시 있을 때 예약해야만 확약이고 아니면 대기, 둘째, 가격이 그리 싸지 않다. 이미 뉴스를 통해 알려졌지만 중동 항공사들 전략이 오일 머니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특정 노선에 취항하여 매우 매력적인 가격으로 마케팅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50% 할인 티켓이 오히려 더 비쌀 때가 많다. 지인분이 유럽을 성수기에 가길 원하셔서 알아봤더니 저 두 조건이 다 걸렸다. 일단 좌석이 없을뿐더러, 가격도 비쌌다. 이 경우에는 그냥 직접 끊고 가고 마일리지 적립하는게 훨씬 이득이지 않겠는가. 다만 누가 '두바이'만 왔다 가겠다고 하면 이게 더 싸다. 두바이만 오는 노선은 에미레이트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굳이 할인할 이유가 없으므로 기본 판매 가격이 비싸다. 또 비수기일 때 여행한다면. 근데 내 주변은 다 직장인들인데 어디 그러기가 쉬운가. 그래서 나는 3년간 이 지인티켓을 쓸 일이 없었다.
10. 다국적 동료들과 승객들과의 교감
나와 함께 입사한 친구들은, 호주, 스코틀랜드, 대만, 중국, 이집트, 스웨덴, 인도, 독일, 터키, 태국, 체코, 이탈리아 등등 다양한 나라에서 왔다. 이 중 대만, 독일, 체코, 이탈리아 친구와는 지금도 종종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곤 한다. 특히 대만 친구는 나에게 마음을 많이 나눠준 소중한 친구다.
비행을 하면서도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편견을 깨기도 하고 물론 쌓게도 되지만. 그 자체가 굉장히 값진 경험이다. 특히 라운지에서 있다 보면 정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자주는 아니지만 때로 깊고 심각한 대화를 나누게 될 때도 있다. 오래 가져갈만한 의미 있는 조언을 해준 영국인 사업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유쾌하고 즐겁고 친근하고 그렇게 처음 만나서 누구나 금세 친구가 되는 그 열린 분위기는 참 이상적이다. 이건 아무래도 시니어리티가 없기 때문도 한 몫 하지 싶다. 정말 장점이다. 물론 업무의 전달 체계나 명령 체계는 존재하지만 일단 모든 관계는 평등하다. 하고싶은 말 의견 피력 다 할 수 있다. 파일럿도 그냥 이름으로 부른다. 레이오버 때도 그냥 체크인 하고 나면 각자 자유로운 시간이다.
11. 승진이 빨랐으면 좋겠다
외항사는 승진이 빠르다고 하는데 6개월만에 비즈니스로 갔다는 경우도 들어보고, 나의 경우도 입사 1년 2개월 뒤부터는 비즈니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물론 퍼스트나 부사무장, 사무장 진급은 훨씬 까다로운 기준과 시험 등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비즈니스는 적당히 경고 없이 레코드 관리를 하면 승진 공고가 났을 때 지원해서 붙을 수 있게 된다. 시간이 밀어 올려주고, 기존 크루들이 빠져 나가고 & 신입 크루들이 들어오면서 밀어 올려지는 구조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입사 시기에 따라 내가 패스트트랙을 밟을지, 아니면 내가 아무리 잘해도 승진 못하고 있게될지 복불복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가더라도 새 인력 수급이 없거나 하면 나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셈이니.
처음 입사 때, 회사는 기종을 좀 다르게 운영하고 있었는데, 같은 캐빈크루들이지만 한 그룹은 A330,340/B777을 타고, 다른 그룹은 B777/A380을 탔다. 나는 전자의 작은 기종 쪽에 배정되었는데 기존 그 그룹에 속한 크루들을 보니 3년째 이코노미에서 일할 동안, 큰 기종을 타는 입사 동기들은 비즈니스에, 심지어는 부사무장으로 빨리 승진해 있어 큰 박탈감과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슨 능력에 따라 나눈 것도 아니었고, 가장 작은 기종인 A330,340을 처분하고자 했던 회사의 사정이 있었고, 결국 이에 따라 다르게 운용될 수밖에 없던 두 그룹의 어쩔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었다. 그 사이 3년을 이코노미에 있으며 지친 많은 수의 크루들이 물밀듯 퇴사 행진을 했고, 그걸 보는 나 역시, 나도 승진은 못하고 3년 내내 이코노미에 있겠구나 하는 운명을 감지했다. 그런데, 그렇게 수가 빠져나갔는데, 회사는 첫 계획처럼 빨리 작은 기종을 밀어내지 못했다. 크루 수는 점진적으로 줄어드는데 보유 기간은 더 늘어나게 생겼으니 해당 기종을 계속해서 타야 하는 크루들이 필요해져 버린 것이다. 없앨줄 알고 한동안 신입 배정도 안 했던 터라, 그 승진 기회가 근속이 1년 정도 된 우리한테 바로 오게 된 것이다. 갑자기 두 그룹의 처지가 뒤바뀐 것이다. 내가 그렇게 1년 2개월만에 비즈니스로 승진하는 동안(승진 교육을 함께 받은 친구 하나는 입사 1년만이었다), 큰 기종에 배정됐던 입사 동기들은 계속해서 이코노미에 머물렀고, 이코노미에서만 3년을 넘게 일한 뒤에야 비즈니스로 승진하게 되었다. 현재 3년이 넘어서도 승진 소식이 없는 이들이 부지기수일텐데 회사가 채용을 재개한 것이 이들에겐 무척이나 반가울 것이다.
내가 어떤 복불복에 놓일지, 회사의 사정이 어떠할지 물론 알고 시기를 정해 갈 수는 없다. 다만 같이 입사했는데 납득할만한 이유 없이 이렇게 다른 처우를 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처세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회사도 아마 인정하는 실수일게다. 이런 일은 아주 극단적이지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고,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외항사가 승진이 빠른 편이지만 때에 따라 걸리는 시간에 차이가 날 수 있음은 알아두자.
생각나는대로 번호를 매겨 두서 없이 이야기를 지나치게 길게 풀어냈다. 하고싶은 이야기를 다 적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한 이야기가 다 맞다고도 할 수 없다. 3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인데, 1년여를 이코노미, 2년여를 비즈니스에서 일하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최대한 장단점을 고루 살펴 풀어보고자 했다. 아무래도 장점들은 많이 알려진 상태이니 단점이나 애로사항을 더 적게 된 것도 같다. 지나간 추억을 돌아보면 많은 부분들이 미화되고 그때는 큰일 같았던 것도 별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때마다 느꼈던 점들을 최대한 생생하게 되짚어 보려고 했다. 아마 또 덧붙이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계속 수정해 볼 참이다.
외항사 승무원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특정 항공사 이름을 넣고 영어로 구글링을 해보면 아마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동 항공사들도 세 군데 다 운영이나 규모나 특징이 조금씩 다르다. 카더라만 듣지 말고 정보를 직접 수집해 보자. 여러 면면에 대해 가감없는 이야기도 접할 수 있고 덤으로 영어 공부도 쏠쏠하게 될 것이다. 환상만 가지고는 무언가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계획을 갖고 꿈꾸는 모두가 본인의 인생에 승무원으로서의 커리어를 멋지게 그려낼 수 있기를 바라며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