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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쥬 Jun 27. 2018

에미레이트 항공'식' 영어?

EK에서 접한 영어의 특징

 에미레이트 항공과 두바이에서는 영어가 통용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인 사실에 덧붙여 몇 가지 부분에서는 "에미레이트 항공식 영어"라고 부를만한 것들이 있어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다양한 억양


 에미레이트에 승무원만 2만 5천여 명, 그 국적은 당연히 100여 국가를 훌쩍 넘는다. 때문에 에미레이트 영어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다양한 억양에 있다. 우리야 손쉽게 영국식, 미국식, 조금 더 나가면 호주식 영어로 나누지만 실제 에미레이트에서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다양한 억양을 접하게 된다.


 한국 사람들만 해도 특유의 억양이 있는 경우에는 한국 사람임을 알 법한 경우가 많다. 처음 입사해서 트레이닝을 받을 때, 태국 출신 트레이너 영어에 태국 억양이 굉장히 강했다. 그 끝을 늘어뜨리는 나긋나긋한 느낌이 어찌나 재밌게 들리던지. 이탈리안 배치 메이트(batch mate)의 영어에도 특유의 리드미컬한 억양이 녹아 있었다. 그중 가장 끝판왕은 스코티쉬 친구. 귀를 아무리 쫑긋 세워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 혼란스럽기만 했다. 플랫 메이트(flatmate)는 아이리쉬였는데, 스코티쉬처럼 강한 억양으로 유명하다. 하도 살 부대끼고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대화를 하다 보면 묘하게 따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트레이닝을 넘어 실제 현장에서 비행하며 동료들과 손님들이 구사하는 현란한 억양들을 접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억양만 들어도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있다거나, 웬만한 억양은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과거 IR 관련 일을 하면서 프랑스계 애널리스트와 컨퍼런스콜을 한 적이 있었는데 프랑스 억양이 너무너무 심해서 알아듣지 못해 곤욕을 치렀던 적이 있었다. 만약 지금 다시 돌아가 다시 컨퍼런스콜을 한다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자신이 있다. 꽤 큰 자산이지 않을까.


 2. 영국식 영어?


 두바이는 역사적으로 영국과 꽤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고 한다. (참고: https://en.m.wikipedia.org/wiki/United_Arab_Emirates–United_Kingdom_relations) 때문에 UAE에서는 영국식 영어가 공식적으로 쓰이는 게 눈에 보인다. color를 colour로 쓰거나 center를 centre로 쓰는 것에서부터 알 수 있다. 에미레이트 항공의 경우, 영국 출신 CEO가 자리를 꽤 오래 지켜오고 있는 터라 매니지먼트 전반에 영국인 비중도 꽤 높았고, 전체적인 회사의 문화도 영국 영향을 많이 받은 것처럼 보였다.


 호주(영연방 국가) 어느 도시로 가는 비행에서, 식사 서비스 도중 콜벨이 울렸다.

 "Would you mind bring another serviette for her?"

 그 당시 serviette가 뭔지 전혀 몰랐다. 나는 재차 요청하는 게 무엇인지 물었지만 여전히 모르겠어서, I am sorry.. serviette?라고 했고, 그녀는 자신의 냅킨을 들어 흔들며 napkin을 가져다 달라고 재차 말한다. 이걸 serviette라고도 하는구나 싶어, 육성으로 아~ 소리를 냈다.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다. 감자칩도 미국식 영어에는 chips라고 부르는데 영국식 영어에서는 crisps라고 하고(영국식 영어에서 chips=french fries), 기저귀인 diapers는 nappies. 우리가 대일밴드로 알고 있는 band aid도 plaster라고 한다. lemonade를 찾길래 미안한데 없다고 했더니 7up/sprite 같은 탄산 레몬향 음료를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니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거주지로 제공되는 apartment도 flat으로 부르고 크루들끼리 너 어디 국적 누구랑 사는지 묻는 스몰토크를 할 때 일반적으로 roommate(=housemate, apartmentmate)보다 flatmate로 대부분 통용하여 사용한다. 아, 또 화장실도 미국에서는 washroom, restroom이나 bathroom 등으로 부르고 오히려 toilet이라는 표현을 좀 직접적이라 여기는데 영국식 영어에는 loo라고 하거나 일반적으로 toilet으로 쓰이는 경향이 있어 보였다.


 한국인들은 주로 미국식 영어에 익숙하기 때문에 아마 나처럼 혼란스러운 경험을 한 번쯤은 하게 될 것 같다. 뭐 영국식 영어뿐만인가, 때로는 영어가 외국어인 그 많은 사람들로부터 정형화되지 않은 창의적인 표현들도 듣게 마련이니 유연성이 쭉쭉 늘어날 것이다. 물론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내 영어의 정체성이 점차로 모호해져서 국적 모를 것들을 모두 섞어 쓰게 된다는 것과, 타인에게 알아듣기 쉽게 말하느라 어떤 면에서는 영어가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3. Gash? Flush??


 일상적인 손님들과의 영어도 1, 2번에서 말했듯이 여러 갈래로 흩어지지만, 비행을 하다 보면 비행기에서 사용되는 은어들 또한 숙지하게 된다. 각 항공사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래도 여러 용어들을 일반적으로 다룬 기사가 있으니 항공 산업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봐도 좋겠다. (https://www.telegraph.co.uk/travel/news/Cabin-crew-jargon-explained/amp/) 항공 용어 전반을 보면 상당수 선박 용어에서 따온 것들이 많다고 한다. 공항인 air'port'라든지 갤리(galley) 같은 것들이 그 예다.


 위 아티클을 보면 overhead locker(=bin)로 불리는 머리 위 짐칸을 hat bin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에미레이트에서 우리끼리는 이것을 hat rack(s)으로 불렀다. 가끔 손님에게 hat rack이라고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이야 닫을 수 있게 설계되어 locker나 bin이라는 용어가 어울리지만 과거에는 선반 형태로 되어있어 그리 불렀다고 알고 있다.


 산업 용어 또는 은어야 외우면 그만이지만, 그중 나를 가장 아리송하게 만들었던 단어가 gash다. 두바이로 인바운드 하는 비행은 보통 크루들이 마감(?) 해야 하는 영역들이 더 많다. 그중 하나가 열었지만 다 사용하지 못한 주스를 모두 화장실로 흘려버려야 하는 것이다. 처음 시니어가 내게 이 주스 용기들을 담은 컨테이너를 건네며, Can you please gash this for me?라고 했을 때, 나는 Gash??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Yeah, just flush them down to the toilet bowl. 그때는 그냥 별생각 없이 아 그런 뜻이구나 하고 머릿속에 연결고리만 만든 뒤 나 역시도 gash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왜 gash라고 하는 건지, 나는 그저 개쉬라고 썼지 사실 스펠링이 뭔지도 잘 몰랐던 터라 같이 원어민인 동료에게 물었다. 그 친구도 I don't know. 란다. 그럼 이게 흔하게 쓰이는 일반적인 표현은 아니란 거지? 하니 자기도 왜 gash라고들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럼 스펠링이 G.A.S.H 이긴 해? 하니까 그런 것 같다고.


 집으로 돌아와 항공산업과 전혀 상관없는 미국인 친구에게 사연을 설명했더니 weird 하단다. 왜 weird 한 것인지는 특히 gash를 urban dictionary에서 찾아보면 알 수 있다. 그 뒤로 이건 그냥 비행기 안에서만 써야 하는 우리끼리 쓰는 은어 같은 거구나 하고 지레짐작하게 되었다. 왠지 누가 그냥 장난치려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 다들 입에 붙어버린 것 같다.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왜 계속해서 쓰이는지는 모르겠어서 나라도 flush 로 쓰곤 했지만 듣게 된다면 대충 그런 뜻이구나 하면 좋겠다.


4. Hey, babe! (sweetie, hun, honey or etc.)


 새로운 곳에서 새로이 사람들을 만났을 때,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우리는 B777과 A380을 메인 기종으로 운항하는데, 플라잇덱까지 합하면 보통 17~27,8명의 동료들과 그날의 비행을 위해 처음 만난다. 특히 이코노미 캐빈일수록 얼굴은 낯선 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캐빈 크루가 근속이 사실 그렇게 길지 않고 또 그 수가 많다 보니, 순환되어 버리는 인원이 상당하다. 물론 비즈니스 이상 캐빈에서는 전에 본 동료와 또 같이 비행하는 경우가 확률적으로 더 높은 편이다.


 비즈니스에 B777은 총 3명, A380은 8명이 함께 일하기 때문에 이름 외우기가 좀 나은 편이다. A380에서는 buddy 시스템으로 일하기 때문에 가끔 짝꿍 이름이 기억이 안 나면, buddy라고 그냥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코노미를 생각하면 그 수가 훨씬 많기 때문에 일하는 캐빈 동료들 이름만 외우는 데에도 힘이 찬다. 이름표도 달고 있지만 그게 확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더 많고, 결국 일하다 보면 건너편에 있는 동료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우물쭈물하게 될 때가 꼭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부른다. "Babe!!" 또는 sweetie, hun or honey 등등으로 부르는 친구들도 종종 있다.


 참, 빼놓을 수 없는 호칭은 사실, 영어는 아니지만, 아랍어에 '하비비(habibi)'이다. 애정을 담아 부르는 호칭이라고 생각하면 될듯 하다. 보통 남자에게 하비비, 여자에게 하빕티라고 한다고 하는데 그냥 뭔가 다 하비비라고 부른듯.. 오히려 아라빅은 얄라(yalla, 어서? 빨리빨리??), 할라스 (Khalas, 끝의 의미..), 슈크란 (suklan, 감사합니다) 정도만 주로 쓰고 babe라고 했다. 이상하게 하비비가 더 간지럽게 느껴져서.




 에미레이트 항공에서의 영어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입사 전에 할 수 있는 한 실력을 많이 끌어올리고 오는 것이 좋다. 영어로 소통하는데 조금이라도 어버버 하면 맥락을 읽지 못해 쉽게 실수할 수 있고, 아주 단순하게는 무시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해야 될까에 대한 답은 없다. 좋을수록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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