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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쥬 Jun 13. 2018

하늘 속 따뜻한 세상

비행 중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 에피소드들

 #1. 크리스마스 선물


 때는 설 전야였다. 입사 후 처음 맞이한 민족대명절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최대 명절이지만 중동에서나 서양에서는 그냥 여느 날일 뿐인 설날. 집이 어찌나 가고 싶던지. 떡국, 떡국 노래를 부르다 파키스탄 시알콧(SKT)으로 턴어라운드를 가게 되었다. 심지어 시알콧으로 가는 아웃바운드 비행이 정말 힘이 들었다. 손님들마다 계속 다그치고 짜증내고. 맡은 구역을 순서대로 하고 있는데 못 기다리고 '음료 빨리 내놔라', '당장 밀트레이 걷어가라' 하는 손님이 차고 넘쳤다.


 그런데 이코노미 끝 즈음에 자리한 아저씨 한 분은 태도가 남달랐다. 나긋나긋하게 부르시고 꼭 'I'm very sorry to ask'로 말을 시작하셨다. 'When you have time'까지 붙이며 인자한 미소로 마무리. 그런 손님을 만나면 아무리 서비스 시퀀스를 따르느라 정신이 없어도 어떻게든 요구를 들어 드리고 싶어 진다. 최대한 전체 흐름에 영향이 없는 선에서 시간을 쪼개 요청하신 위스키&아이스를 손님께 가져다 드렸다. 연신 감사해하던 그 모습에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 후로 두 번 정도를 더 요청하셨는데 열일 제쳐두고 재빠르게 필요를 채워 드렸다. 그때마다 매번 고마움을 격하게 표현하시던 그분, 오히려 내가 감사했다.


 착륙 준비가 한창일 때, 지나는 나를 붙들더니 손에 쥔 무언가를 슬쩍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무엇인고 하니 초콜릿이었다. 포장지가 어딘가 꼬깃해 보이는 게 괜히 더 찡했다. 고마움을 표하려 무언가를 찾으셨을 마음이 와 닿았다. 괜찮으니 본인 드시라고 거절하는데도 한사코 받아달라는 통에 주머니에 고이 초콜릿을 담아왔다. 그분은 아실까. 초콜릿보다 그분 마음이 더 달콤했다는 것을. 덕분에 갑자기 힘들었던 비행이, 게다가 설날에 하는 암울했던 비행이 180도 달라졌다는 것을.


 #2. 어느 택시기사의 첫 비즈니스 클래스 여행


 동남아 어느 휴양지에서 두바이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날은 비즈니스 클래스 라운지를 맡고 있었다. 한 크루가 손님 한 명을 데리고 바(bar)에 왔다. 어쩐지 잔뜩 상기된 표정의 손님을 라운지 근처에 세우고 폴라로이드 사진도 찍어주고 손님 카메라로도 사진을 찍어드렸다. 그 손님을 데려온 크루는 이게 첫 비즈니스 여행라고 언질을 주고는 더 놀라운 사연이 있으니 꼭 들어봐야 한다고 손님을 부추긴다.


 인도계의 런던 택시 운전사라고 했다. 어느 날, 한 젊은 남자 손님을 태웠는데 내리면서 지갑을 차에 두고 갔다고 한다. 잘 보관하고 있다가 주인에게 그대로 돌려주었는데 과정이 꽤나 번잡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손님이 한 재력 있는 집안의 아들이었고 답례로 이 휴가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비즈니스 클래스로.


 꼭 무슨 동화 같은 이야기에 다들 어쩜 그런 사연이 있을 수 있냐며 감상에 젖었다. 아직 세상은 그리 팍팍하지 않다며 급 희망에 찬 모습들이 되었다. 오랜만의 여행도 좋았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손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굉장히 긍정적인 에너지가 도드라졌는데, 아마 그랬기에 그런 운도 따르지 않았을까 싶었다. 착한 사람들에게 더 행복한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3. 꼬마숙녀의 여행 저널


 서비스가 끝나고 다들 뒷 갤리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때 마침 비행을 지루해 하던 한 작은 꼬마 숙녀를 발견한 동료 크루가 아이를 뒷 갤리로 데려왔다. 뱅글뱅글 돌아갈 것만 같은 빨간 뿔테 안경을 낀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


 인사를 건네고 그 꼬마 친구에 대해 차츰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이곳저곳을 여행 중인 것으로 보였는데, 여행에 대해 재잘재잘 읊더니 그동안 스크랩북을 만든 것이 있다며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별다른 기대없이 들여다본 그 자그마한 수첩에는 상상이상의 것들이 펼쳐졌다. 사진과 직접 그린 그림이나 글들까지. 어른이 하려고 해도 어려울 것 같은 아주 멋진 기록물이었다. 모두의 눈이 동그래지는 것을 보고 뿌듯해하던 그 똘똘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그렇게 아름답게 남겨온 것을 보며 거꾸로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꼬마 숙녀에게 추억을 보태주기 위해 에미레이트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모자를 씌워주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찰칵. 어느 날 하늘 위에서 만난 우리들에 대한 기억도 그 수첩에 예쁘게 남겠지. 더 큰 꿈과 희망을 품어가는 데에 자양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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