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쥬 Jun 03. 2018

안비즐비: 안전하고 즐거운 비행

그 함의가 확 와 닿을 때

 비행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살며 대부분 비행에서 공포의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비행이라는 행위는 새롭고 짜릿한 긍정적인 감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다만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들려올 때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안전하지 않으려면 한이 없음을 되새기곤 했다. 그래도 금방 잊힌다. 거의 대부분의 비행은 안전하게 마무리 되고, 그냥 보통 사람들이 회사를 가는 것처럼 비행기로 출퇴근을 하고 매번 반복되는 이착륙이 그냥 일상이기 때문이다.


 이따금 비행공포증으로 힘들어하는 승객들을 보게 된다. 4명 중 1명이 비행공포증이라는 통계를 보고 놀란적이 있다. 굳이 언급하지 않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비행이 누군가에게는 식은땀이 흐르는 긴장감과 연결된다는 점을 되새겨본다. 그 정도는 정말 다양하다. 심한 경우 극도의 불안으로 신체적 증상까지 겪는다. 이런 경우에는 손님이 먼저 신경안정제 등을 복용하고 비행기에 탑승하기도 한다. 크루들은 정보공유를 하고 예의주시 한다. 돌아가며 손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 날 갑자기


 어느 날, 싱가포르에서 두바이로 돌아오던 비행에서였다. 한 손님이 매우 불안한 표정을 하고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 비행공포증이라 했다. 점차 불안해지는 얼굴의 손님 옆에서 우리는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화제를 전환하고, 손을 잡아주며 안심을 시켜주려고 노력했다. 그날은 유난히 터뷸런스(난기류)가 잦다 느꼈는데 손님도 언급을 한다. 인도나 동남아 상공에서 다소 빈번하기에, 어디쯤 날고 있나 보려고 모니터에 뜬 루트맵을 주시했다. 문득 비행기가 평소 가는 길로 가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예상 비행시간도 브리핑 때 안내됐던 것과 꽤 차이가 났다. 그때까지는 그저 순수한 궁금증에 부사무장이 플라잇덱(칵핏)에 전화를 했는데 대답이 영 시원찮았다. 낮은 고도로 날고 있는 중이라 그런 것이고 자신들이 지금 문제를 해결 중이니 일단 전화를 끊으라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피드백을 전달받자마자 크루들 사이에 일종의 동요 비슷한 것이 있었다. A380은 일반적으로 38,000-40,000ft의 고도에서 난다. 비행기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그보다 낮은 고도에서 날게 될 경우, 공기 저항을 더 많이 받게 되어 터뷸런스도 더 잦고 심해지며,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고 연료의 소모도 많게 된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낮게 날고 있는 것일까? 갖은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묘한 긴장이 흘렀다. 비행공포증 손님이 갤리 쪽을 들여다보며 별일 없는 거냐고 물을 정도였다. 우리는 다시 얼굴에 미소를 띠며 괜찮다고 손님을 안심시켰다.


 그 인터폰 이후 시간이 억겁처럼 흘렀다. 마침내 사무장이 각 캐빈을 돌며 현 고도로는 연료가 부족해 자칫하면 근처 다른 공항으로 회항을 했다가 가야 될지도 모르니 그리 알고 있으라 간략히 브리핑을 한다. 추가로 향후 대략 20분 정도 터뷸런스가 예상되니 캐빈을 시큐어(secure) 하고 크루들도 자기 자리로 가 안전벨트를 매고 착석하라는 지시였다. 아무도 최악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긴장감이 괜스레 최고조에 달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담당 캐빈을 점검하고 안전벨트를 매도록 손님들에게 안내를 한 후, 점프시트에 와 앉았다. 밤 비행이라 켜져 있는 안전벨트 사인이 시리게 느껴질 만큼 실내가 캄캄했다. 초조하게 앉아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나와 달리, 좌석을 침대로 뉘이고 단잠에 빠져있는 승객이 바라다 보였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야 할 일이 있으니 허둥대면 안 되지 싶어 유사시 행동 요령과 응급 장비들의 위치를 되새겨 보다가도, 문득 내가 여기서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최근에 가족들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언제 했던가. 무슨 일이 난다면 아무 준비도 없이 이렇게 나겠지 싶자 생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문득 내가 숙소를 어떻게 하고 나왔는가를 떠올렸다. 혹시 너무 엉망이면 나를 수습하러 온 가족들이 괜히 더 슬프지 않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들까지. 마침내 정적을 깨고 인터폰이 울렸다. 일단 터뷸런스 상황은 다소 호전되었으니, 서비스를 평소대로 진행하고 향후 회항을 해야 할 경우 재차 지시를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모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서비스를 했다. 서비스 막바지 즈음 회항 없이 그대로 두바이 착륙 예정임을 전달받았다. 착륙 준비를 마치고 크루들도 모두 자리에 앉았다. 드디어 두바이 공항이었다. 착륙 자세를 취한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랜딩 기어가 내리고 활주로에 바퀴가 닿고난 후에야 안심이 되었다.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모든 손님들이 내리고 우리들도 짐을 챙기는데, 옆에서 차분히 본인 소지품을 정리하던 한 동료가 말했다.


 "I have been flying for more than six years, but I've never felt this scared before."


 6년도 넘게 비행했지만 이렇게 무서웠던 적 처음이라는 그녀의 말을 시작으로 봇물 터지듯 다들 무서워 혼났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별일 없어 다행이라며 다들 서로를 토닥토닥. 그중 유난히 발랄했던 친구가 깨춤을 추며 캐빈을 나서는 통에 다들 웃으며 비행기를 벗어났다.


 비행기로부터 헤드쿼터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캡틴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다들 오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것 잘 알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이륙할 때 제대로 된 고도를 못 받았고 이후 섹터 ATC(Air traffic control)마다 계속해서 고도를 높여줄 것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그래서 터뷸런스도 더 심했고 비행시간도 늘어났던 것이며, 종국에는 연료가 다소 부족한 상황이었으나 DXB와 긴밀한 협력 아래 두바이에 그대로 착륙하는 것으로 의사결정을 하였고, 아슬아슬했지만 별다른 돌발상황 없이 안전하게 착륙하게 되었다.


 자신들 실력이 이 정도라며 어깨를 으쓱하는 통에 우리들은 물론 노고에 박수를 쳐주었다. 그래도 한 편에서는 그럼 왜 당시에 이렇게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느냐 하니, 시시콜콜 설명해서 오히려 크루들을 동요하게 할까 봐 내린 결정이었고 우선 본인들도 문제해결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했다. 당시에는 본인들이 어떻게 설명해도 추측이나 불안감 등이 해소될 수 없었 거란 것이다. 동의할 수 없었다. 플라잇덱 말대로 몇몇 크루들은 아마 여전히 의구심을 제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체계에 따라 일하는 대부분의 크루들에게는 그 간단한 설명이었으면 그렇게까지 쓸데없는 공포감에 휩싸이지 않고 캡틴과 FO(First Officer)를 믿고 갔을 것이다. 이 비슷한 주제가 Recurrent training(매해 라이선스 리뉴얼을 위해 반복되는 테스트와 교육) 중 플라잇덱과 함께 하는 교육과정에서 논의됐던 적이 있기도 했다. 플라잇덱은 어느 정도의 구체적인 정보를 캐빈크루에게 노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캐빈크루는 사건사고 시 승객들과 접점에서 일종의 군중 관리(Crowd control)를 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안비즐비가 와 닿을 때


 그날 그 비행 끝에, 비행공포증인 손님이 오늘 자기 북돋아주어 고맙다고 크루들과 눈을 하나하나 다 마주치며 인사를 하고 나갔다. 비행의 일상적인 소음이나 기체의 변화 같은 것들이 극적으로 다가올 그녀에게는 매번 이 정도의 공포감이 존재하는 걸까. 숙소로 돌아오는 크루버스에서 제일 먼저 가족들에게 안부 인사를 했다. 뜬금없이 사랑한다는 말도 했다. 함께 비행하고 있는 친한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해, 오늘 있었던 일을 하소연하며 우리 부디 늘 무사하자고 했다. 그 뒤로 모든 비행이 무탈하게 끝날 때면 어찌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이전에 여러 건의 사건사고를 접했을 때, 나한테 저런 일이 일어나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계적인 고민을 해 본 적은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공포감을 수반할 수 있을지는 경험 밖의 일이었다. 엔진 배기 과정에서 일부 연기가 기내로 유입되어 혼란이었던 적, 메인 파워가 지상에서 두어 번 꺼진 통에 공포감을 느낀 승객들이 내려달라 소란을 피웠던 적도 있었지만 모두 지상에서 있었던 소동이라 크루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그리 크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배경이 하늘이라 우리의 통제력이 약하게 느껴져서 더 그랬는지, 어쩌면 무척이나 사소하게 느껴지지만 불안감은 꽤나 무거운 것이었다. 앞으로는 패닉에 빠지지 않고 냉정하게 현실 판단을 하고 상황을 유연하게 다룰 수 있어야겠다고 다짐 아닌 다짐을 해보았다. 그래도 이왕이면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나, 그리고 내 주변 모든 비행을 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안전한 비행만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안전하고 즐거운 비행되라는 말을 줄여서 '안비즐비'라고 한단다. 준비생 때 처음 이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실제 현직에서 쓰는 분들이 계신지는 모르겠다. 나의 경우에는 전혀 써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의 경험이 유독 그 안비즐비라는 말을 가슴에 와 닿게 했다. 지금까지도 비행을 하며 하늘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 지인들, 내가 사랑하는 그들이, 또 이 세상 모든 크루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들일 그 모든 크루들이 하늘에서 언제나 더 안전한 비행, 즐거운 비행, 그야말로 안비즐비만 하기를 소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롭게 정의된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