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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쥬 May 27. 2018

새롭게 정의된 것들

비행을 업으로 삼으며 달라진

 #1. 공항


 여행을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 관문인 공항. 나에게 공항은 언제나 설렘의 공간이었다. 특히 인천국제공항은 여정의 시작과 끝에 항상 마주치는 곳이라 그 상징성이 남달랐다. 공항으로 들어서 체크인을 하고 부칠 짐을 부치면 마침내 보딩패스를 받아 들고 보안구역을 지난다. 별천지 같은 면세점을 휘젓다 보면 내가 탈 비행기가 준비된 게이트에 도착한다.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의 이동을 준비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얼굴은 다소 상기되어 있다. 그 열기는 공항의 공기를 묘하게 달군다.

 처음 휴가를 받아 달콤한 열흘여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고 다시 두바이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더 이상 공항의 그 들뜬 공기가 내 마음을 데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사를 확정받고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갔던 그곳에서 나는 또다시 고국에 안녕을 고하고 있었다. 늘 설레기만 했던 공항이 이제는 이별의 장소가 된 것이었다. 돌아옴이 언제나 약속되지만은 않는 떠남. 나는 언제쯤 이 인천국제공항을 떠나며 다시 웃을 수 있을까 묻고 있었다. 상황은 때때로 바뀌어 마침내 서울 비행을 한 두 달에 한 번씩 할 수 있게 되면서 다행히 그 처절함을 조금은 씻을 수 있었다. 물론 다시 미국으로 떠나오며 어느 때보다 긴 안녕을 고해야 했지만.


 #2. 비행기


 어렸을 적 나의 아버지는 공군 하사관이셨다. 미취학 때의 기억이라고는 몇몇 장면들만 남아있다. 동체를 따라 가로로 설치된 빨간 좌석에 앉아 귀마개를 착용하고 파란 창공을 바라보던 순간이 그중 하나다. 나중에 부모님께 여쭤보니 수송기를 타고 서울 비행장에서 대구 비행장으로 이동했을 때를 아마 기억하는 것 같다고 하신다. 관사에서 지냈던 어린 시절이 있어서인지 나는 비행기에 무한한 동경이 있었고 한동안은 공사에 진학하고도 싶어 했다.

 트레이닝을 모두 마치고, 처음 수습 비행을 할 때, 조종석 뒤편에 앉아 이착륙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복잡한 조종석의 콘솔을 눈으로 꼼꼼히 뜯어보며, 관제탑과의 교신을 헤드셋으로 들으며, 창공을 가르고 마침내 떠오르면, 두바이의 황홀한 마천루가 널따란 창을 통해 막힘 없이 내려다 보였다. 굉장히 벅찬 순간이었다. 그런 황홀함도 잠깐, 즉시 캐빈으로 내려가 직접 정신없는 서비스 과정을 눈으로 보고 실제로 돕기도 했는데 문득 모든 것에 현실감이 없었다. 트레이닝 과정에서 실제 비행기 내부와 똑같은 시뮬레이터에서 실습을 하는데 아직도 그 시뮬레이터 안에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수없이 비행을 거듭해도 매번 하늘에 떠있음이 실감 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가끔 창밖의 장관이 새삼스러워 하늘에 떠있음을 깨닫곤 했다. 혹은 이륙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내가 탄 비행기도 땅에서 보면 저렇겠구나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행기는 장엄한 이미지보다도 일터의 이미지로 강하게 각인되어 갔다. 비행기를 떠올리면 캐빈 풍경이 눈앞에 먼저 그려지기 시작한달까. 비행기는 일터가 되었다. 타이쿤 게임이 매번 다이내믹하게 펼쳐지는 나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터.


 #3. 잠


 평소 잠을 아무리 많이 자도 9시간 정도가 최대였다. 그 이상 자려고 해도 어차피 깨곤 했다. 잠은 어쩐지 게으름이랑 연결되는 것 같아 죄악시 해왔었다. 그다지 수면이라는 행위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이유도 없었던 것 같다.

 가끔 미서부처럼 두바이로부터 12시간 시차가 나는 극단적인 곳으로 비행을 다녀오면, 긴 비행시간과 시차 등으로 좀비 상태가 되어 숙소로 돌아오곤 했다. 너무 피곤하면 잠이 오히려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그런 비행 후 한 번 잠들었다 하면 그야말로 기절 수준의 잠을 자게 된다. 일어나 시계를 보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잘 수 있을까 싶어 깜짝 놀랄 때도 많았다. 하루 중 최소 12시간 이상을 잠으로 삭제하고 오밤 중에 눈을 뜨면 일종의 허무함 같은 감정이 몰려올 때도 있었다. 만약에 배가 고프지 않거나, 화장실을 갈 이유조차 없다면 하루 잘  있을  같았다.

 새벽 비행이 유난히 많은 에미레이트에서 일하며 비행 전에는 정상적으로 잠을 자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예컨대, 새벽 3시 40분 출발 경우, 출발시간 2시간 전인 1:40am까지 헤드쿼터에 도착해야 하고, 돌발 상황이 생기더라도 여유롭게 도착하기 위해 보통 그보다 1시간 전에 집을 나서곤 했다. 즉, 12:40 am 즈음 셔틀버스를 탄다. 출근 준비에는 1시간 정도가 걸리므로 늦어도 11:40pm에는 일어나야 한다. 두바이에서 해를 따라 지내다가 그런 비행에 맞춰서 자고 나오려면 엉뚱하게 저녁 8시쯤 이불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눈을 질끈 감고 양을 수백수천 마리를 세다가 그냥 알람을 맞이할 때도 많았다. 단 한숨도 자지 못한 뒤엔 잠을 못 잤다는 사실에 괜히 전전긍긍했다. 몇 번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또 못 자고 나가면 어떡하지 싶은 불안감에 오히려 잠을 더 자지 못하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어느 순간, 출근 전에 꼭 잠을 잘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으로 이틀 정도는 잠을 자지 못해도 죽지는 않는데, 못 자면 그만이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대신 전날 잠을 늦게 자서 최대한 늦은 한낮에 일어나는 것을 차선으로 선택하기도 했다.

 밤낮이 뒤바뀌고, 시차가 뒤집히기 때문에 잠을 운용하는 것이 생각보다 전략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그렇게 너무 많이 자도 문제, 잘 수 없어도 문제로 계륵과도 같았던, 그 시절 나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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