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갈에서 두바이로 오는 길에 만났던 특별한 손님
연일 남북, 북미 간의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 가운데, 오늘은 북한이 고위급회담 중지를 통보했다는 뉴스로 떠들썩하다. 최근의 흐름 속에 나는 비행하며 마주쳤던 열두 여 명의 북한 손님들을 떠올린다. 그분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비행을 시작하고 고작 4개월을 채워가던 2015년 어느 날이었다. 세네갈 다카르(DKR)에서 UAE 두바이(DXB)로 돌아오는 비행길.
"Hey, we have so many North Koreans on board today! Did u see them?"
한창 보딩을 하고 있는데 크루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복도를 내려와 토끼눈을 한 채 속삭이듯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What, seriously? Where, where??"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보다 더 토끼눈을 하고 되물었다. 다카르 공항(Léopold Sédar Senghor International Airport)에서 크루 체크인을 할 때, 카운터에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한 무더기의 동양 남자들이 서 있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어쩐지 튀어 보이는 행색이었지만 중국인이겠거니 하며 지나친 참이었다. 어쩐지 뒷골이 서늘한 것 같기도 하고, 아차 싶기도 하고 기분이 묘해졌다.
"But how do you know they are North Koreans?"
"Because you know, they have the.. the.. Kim Jong-il? Kim Jong-un??'s picture on their clothes."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초연함을 잃지 않으며 이륙 준비를 모두 마치고 점프시트에 앉았다. 캐빈 안에 위치한 점프시트였기에 마찬가지로 이륙 준비를 마친 손님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건 점프시트로부터 2줄 뒤, 가운데 4열짜리 좌석 배치에 앉아있는 세 명의 동양인 남성. 저 사람들이 정말 북한 사람들일까. 혹시 대화라도 나누면 한국말을 할 테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귀를 쫑긋 세웠다. 하필 바로 앞에 앉은 사람들이 불어로 크게 이야기를 하는 통에 들을 수가 없었다. 힐끔힐끔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쳐 배시시 웃어드렸지만 머릿속은 설마설마로 가득 찼다.
이륙 후, 바 서비스를 하면서 마침내 그 손님들 차례가 되어 앞에 섰다. 아, 정말 그분들 가슴팍에는 김정일과 김일성의 초상이 나란히 그려진 배지가 달려 있었다. 북한 사람들이 맞는 걸까. 일단은 영어로 "What would you like for drinks?"라고 질문을 했다. 그러자 "Whiskey, whiskey."라는 단답. 위스키를 건네며 세상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눈빛을 하고 물었다.
"Where are you from?"
손님은 조금 주저하시는가 싶더니 "Korea."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매우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Oh, really? South or North?"
그러자 그분이 약간 당황하신듯한 느낌으로, 에.. 에.... 하며 주저하셨다. 아니면 영어라 시간이 필요했던 건지는. 순간의 정적 후 답변이 돌아왔다.
"South!!!!"
생각하지 못한 전개라 이제 뭐라고 하지 싶었지만 여전히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Oh, I'm also from South Korea. See?"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크루들은 출신 국가의 국기 배지를 가슴팍에 달았었다. 나는 그 태극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그 손님을 비롯 옆에 계셨던 두 분 더.. 세 사람이 말 그대로 '읭?' 하는 표정이 되어 나를 바라본다.
그제야 그분이 아~ 하시더니 그저 허허 웃고 마셨다. 나는 곧장 그럼 한국말 하시는 거죠? 하며 한국말로 대화를 건넸다. 필요한 거 있으시면 뭐든 저한테 다 이야기하시라고. 그때부터 많지도 않은 동양인 손님들 중에서 북한분들은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꼭 그 배지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름이 어떻게 되냐 물어 이름도 말씀드렸는데, 그때부터 *** 아가씨, *** 동무하시면서 이런저런 요청을 해오시면 최대한 더 신경을 써드렸다.
"식사는 하셨습네까? 수고가 많으십니다."
"아이고, 이게 제 일인데요, 뭘. 하나도 안 힘드니 무엇이든 말씀 주세요."
그러고 돌아서니 왠지 이거 너무 훈훈한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날 것만 같았다.
비즈니스 클래스에 가지러 갈게 있어서 앞쪽 캐빈으로 올라간 김에 앞쪽에 있던 크루들에게도 외치듯 말했다.
"Guys!! So many North Koreans!!!!!!"
레이오버 중에 북한 체제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 나눴던 터키 크루가 마침 있었다. 우리나라가 지금은 한류 등의 영향으로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아시아계가 아니라면 원탑 주제는 남북한 프레임이 꽤 강하다. 북한 사람들은 이동의 자유가 제한적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친구였기 때문에 더욱 놀란 듯했다. 그 사람들이랑 말이 통하기는 하냐고, 그럼 왜 여기까지 온 건지는 물어봤냐기에, 사실 용기가 없어서 차마 못 물어보겠다고, 기회를 봐서 물어볼 참이라고 하고 서로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기에 이르렀다.
그때 옆에 있던 세네갈 출신 크루가 말을 꺼냈다. 북한이 세네갈에 동상을 세웠다고, 그게 평생 워런티로 보수해주는 계약도 되어 있고, 주절주절. 그런 사연도 있구나 하여 집에 와서 찾아보니 사실이었다. 규모마저 엄청난 높이 50m의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상'. 세네갈의 독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북한 간의 연결고리가 꽤 있다고 막연히 알고만 있었는데 재밌는 발견이었다.
어떻게 대화를 더 이어갈 수 있을까 기회만 노리고 있던 참이었다. 뒷 갤리에서 첫 식사 서비스를 마치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그중 한 손님이 내려와 여유 공간에 서 계셨다. 살짝 눈인사를 했다.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물 한 잔을 더 건네 드리며, 용기를 내어 입을 떼었다.
"저 그런데, 세네갈에는 무슨 일로 왔다 가시는 거세요?"
알고 보니 말하자면 배의 선장님이시고 그 이하 크루들을 대동한 셈으로 총 12명이 비행기에 탑승해 계시다 하였다. 세네갈에 있는 대만 업체로부터 건조된 배를 넘겨받으려 온 것인데 수가 틀린 것인지, 신뢰할 수가 없어서 깨버리고 도로 북으로 돌아가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아니, 근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습니까?"라고 물으신다. 약간 당황도 되고, 웃기기도 했다. 왜 자기 나라 놔두고 밖에 나와 이러고 있느냐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에미레이트 항공에 한국인 승무원이 지금 400명도 넘게 있다고, 오히려 국내에서 일하는 것보다 처우가 좋아 많은 한국인 승무원이 이렇게 나와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아, 그러니 외국말을 좀 하니까 와서 이렇게 하고.."
그러다 다른 크루들이 이것 좀 해달라 하는 참에 대화가 흐트러지고 말았다. 선장님은 혹시 가능하면 위스키 미니어처를 6개 정도 챙겨줄 수 있느냐 물으셨다. 안 그래도 바 서비스하면서 와인이나 위스키, 맥주 등등 많이 드시는 걸 본 참이다.
"비행기 위에서는 훨씬 더 빨리 금방 취하니까, 천천히들 드셔요."
술도 달큰하게 다들 많이들 드셔서 이렇게 중간에 한 번 말리기도 했었다. 원칙상 규정 위반이지만, 뭐라도 너무 챙겨드리고 싶었다. 아직 비행한 지 얼마 안 되어 간이 콩알만 하던 때라 몰래몰래 눈치를 잔뜩 보고 있었다. 선장님은 내가 재차 지나갈 때 내 팔을 붙드시고 "되겠습니까?" 하시기에, 당장은 어렵고 틈을 봐서 꼭 챙겨드리겠다고 약속 아닌 약속을 남겼다.
우리가 아는 북한
9시간 조금 더 넘어가는 긴 비행이었다. 지루하셨는지 다시 선장 아저씨가 갤리로 오셨다. 나는 슬슬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금 그러면 어디로 가시는 거세요?"
"아, 베이징을 거쳐서 북으로 들어갑니다. 바로 갈 수는 없으니."
"근데 저 진짜 정말 이렇게 뵙게 돼서 반가운 거 아세요? 제가 지금은 졸업했지만 학교 다닐 때에, 대북 관련 시민단체(NGO)에서 잠깐 일했던 적 있었는데 그때 탈북자 분들도 두 분 계셨어요. 같이 일도 하고 술자리도 하고 그랬는데.."
"아, 그랬습니까? 그 사람들 만나봤다는 겁니까?"
"네네, 그중에 한 분은 원해서 탈북하셨지만, 다른 한 분은 배고프고 너무 힘든 시절에 자기도 모르게 탈북하게 되셨다더라고요. 한 분은 젊은 사람들이 요즘은 통일이나 북한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서운해하시기도 하셨어요. 저희 같은 젊은 사람들은 이게 가슴에 크게 안 와 닿잖아요, 통일이나 이런 것들이. 참 마음 아프고 그런 것 같아요.."
마치 온통 내 경험담이었지만 그것이 우리의 이야기이고, 내가 얼마나 많은 질문을 담아내고 있는지 아마 모르지 않으셨을 것이다. 선장님은 끄덕끄덕 한참 내 이야기를 듣기만 하시다가 문득 입을 여셨다.
"뭐,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어디든지 간에 사람이 게으르고 그러면.. 어디에서 뭘 하든지 환영받지 못하는 겁니다."
그 정도가 선장님이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을 접할 기회가 훨씬 자유로운 점에서 뭔가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말해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도 싶었지만 아마 온전한 내 기대였을 것이다. 일단 현 체제 내에서 충분히 혜택을 누리는 분들일 것 같아 내가 일하며 알게 된 탈북자분들과는 다른 처지이실 테니. 선장님은 특히 사투리도 강하지 않으셨고, 일을 하시면서 남한 사람들과 어울릴 일도 더러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이 꽤 짙어서인지 오히려 그분들을 보며 신선한 충격이랄까,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너지는 경험. 더 많이 궁금하고 더 알고 싶은 게 많았지만 선을 넘을 수는 없었기에 적당한 선에서 끝.
항상 외국인 크루들이 Korean이라고 하면 North냐 South냐 물어올 때, 속으로 정말 멍청한 질문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꼬박꼬박 그 질문은 잘못된 것이라 지적까지 하며 북한 사람들을 밖에서 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해 온 나였다. 그때 그 경험 이후로 나는 그 질문을 받으면 South라고 먼저 답하기 시작했다. 왜냐, 그 비행에서 정말 북한 사람들을 봤으니까.
대학 재학 시절, NGO 인턴을 지원하고 대북 관련 단체에 배정되어 짧은 인턴을 하면서 꽤 충격에 휩싸였었다. 당시는 2008년에서 2009년으로 넘어가던 때였는데, 그동안 북한에 대해 듣고 접하던 것은 모두 정치적 편향에 치중된 것들이었나 하는 의문이었다. 탈북자 분들의 사연을 중심으로 내 머릿속에서 북한은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또 다른 정의를 덧입어 갔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새로운 면(?)을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정말 북한을 모르는구나 싶었는데 요즘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정말 몰랐다 싶다.
당시 약간 좌측 성향에 있던 학교 선배와 밥을 먹다가, 인턴을 하며 알게 된 북한 주민들의 실상 혹은 탈북자들의 처절한 사연을 한참 동안 읊어댔다. 잠자코 듣고 있던 그 선배가 던진 한 마디. 너 북한 가봤냐고, 거기서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100% 다 안다고 확신할 수 있냐고. 그때는 그 말을 듣고 아 이 사람 진짜 너무 왼쪽이라고, 말이 하나도 안 통한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그래, 그런 측면도 아주 간과해선 안 되겠다는 환기가 됐었다. 물론 나는 이렇게 늘 중앙선을 타는 게 좀 문제일지도?
다시 만나 뵐 수 있기를 기대하며
선장님 일동 북한 손님들이 내리시기 전에, 에미레이트 플레잉 카드 두 벌(드려도 되는 것)과 위스키 미니어처를 몰래몰래 바 카트 이쪽저쪽을 다 뒤져가며 최대한으로 모았다. 꽁꽁 싸맨 뒤 구비된 플라스틱 백에 넣어 건네드렸다. 기내의 주류를 서빙할 때 반드시 뚜껑을 따거나 비틀어 건네도록 되어 있는데 사실상 규정 위반이었다. 혹시라도 누가 알고 리포트하면 잘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열두 분들 고개 숙여 고맙습니다 인사하시며 떠나시는데 기분이 영 묘했다.
"조선 사람이 역시 최고입니다!"
엄지 척 올리며 떠나시던 그분들 뒷모습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다. 그 플라스틱 백에 나는 이렇게 작은 메모도 함께 남겼다.
높은 하늘에서 이렇게 특별한 분들 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다시 만나 뵐 수 있기를 기대하며.. 먼 길 조심히 가세요 :)
-에미레이트 항공 승무원 ***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