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서 꾸는 꿈과 희망이 지켜지기를
유난히 새벽 비행이 많은 에미레이트에서는 별을 보며 출근하거나, 새벽의 공기를 가르며 퇴근하는 일이 흔했다. 그럴 때면 뭔가 기분이 복잡 미묘하곤 했다. 그럼에도 버스에 올라타 창밖을 바라보는 그 시간을 나는 참 많이 애정 했다. 시원하게 뚫린 셰이크 자예드 대로(Sheikh Zayed Road)를 달리는 크루 버스에 몸을 실은 채 무심하게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화려하게 펼쳐진 마천루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가장 질적으로 높은 시간이라 스스로 평하곤 했다.
닭장 버스를 탄 건설 노동자들
그러던 어느 날, 아직 차량 통행량이 그다지 많지 않은 이른 새벽, 창 밖에 머문 시선에 큰 버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가 달려있고 창문은 있는지 없는지 모를 그 닭장 같은 하얀 철제 버스에는 빼곡히 사람들이 차 있었다. 일부러 연출이라도 한 듯 하나 같이 앞좌석에 기대 잠들어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기이했다. 비슷비슷한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 대부분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등등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깨끗하고 에어컨 시설도 잘 갖춰진 크루 버스에 말끔하게 다려진 유니폼을 차려입은 내 모습과 대조적인 그들의 모습. 이런저런 생각이 스친다.
그 버스에 탄 사람들이야말로 두바이의 화려한 면면을 이루는 데에 꽤 큰 공헌을 했을 텐데 마치 일부러 지워낸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중동의 이글거리는 태양을 견디며 중노동을 하는 인부들이 또렷하게 세상 밖으로 드러나 보였던 순간이었다. 저들이 그 인력시장을 채우기 전에, 우리 아버지 세대들도 척박한 이국 땅에서 힘겹게 오일머니를 벌어들였을 것이다. 이제 그 일은 또 다른 개발도상국 노동자에게 희망이 되었나 보다. 이 대목에서 과연 웃어야 하는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은 것은, 값싼 노동력이 계속해서 자발적으로 또 경쟁적으로 유입되는 동안 결국 그들의 복지 등등은 언제나 뒷전 같아 보여서일까. 현재 유입되는 국가 사람들이 성장하여 나가면 또 어느 나라의 사람들이 이 자리를 채우게 될까?
두바이의 화려함, 그 이면
가끔 나는 두바이에 몰려든 저임금 노동자들이 사라진다면 이 나라는 과연 정상적으로 돌아갈까 상상해 보곤 했다. 막말로 비행을 하다 보면 내니를 동행한 아랍 가족들을 수없이 보게 되는데, 이상하게 아랍 키즈들은 다른 나라 아이들에 비해 버릇이 없고, 심하게 떼를 쓰거나 소리를 지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더 문제는 부모도 그 아이들을 일단 통제할 생각이 없고, 통제하려고 해도 통제하는 방법을 몰라 서툴어 보이는 경우가 많다. 내니는 엄하게 굴 수도 없는 노릇일 테니. 저들이 다 빠져나가면 이 나라 아이들은 누가 키우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밖을 나서면 동남아 메이드나 내니를 고용한 아랍 가족들은 수없이 많고, 나 역시도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메이드를 정기적으로 불러 청소를 맡겼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심하게는 외식을 하면서 내니를 식당 밖에 세워둔다는 둥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푸드코트에 가서 음식을 먹으면 직접 트레이를 치워야 하지만 두바이에서는 그냥 자리에 두고 가면 되는 청소 인력도 있다. 나는 어쩐지 불편하여 직접 치우는 것을 선호했지만. 심지어 직접 치우면 그분들이 막 고마워하기도 했다. 어떤 뚜렷한 계급이랄까, 혹은 일등 시민, 이등 시민 이런 느낌이랄까.
그나마 두바이가 있는 UAE나 카타르 등은 다른 국가들보다 나은 사정이라 한다. 주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에서 동남아나 아프리카 메이드들을 감금, 학대했다는 뉴스가 매우 흔하게 들려오곤 했다. 카타르가 2022년 월드컵 개최를 위해 건물들을 쌓아 올리며 죽어간 외국인 노동자가 1천 명을 넘고 4천 여명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2014년 보고서도 존재한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쪽 비행을 하다 보면, 일부 손님들은 승무원을 일종의 노예처럼 부리려고도 했다. 한 번은, 말도 섞지 않고 자리에 앉아 손가락질만으로 바닥에 놓인 짐을 한 번, 오버헤드라커를 한 번 가리킨다. 직접 올리라는 것이었다. 매뉴얼을 벗어난 서비스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모든 아랍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품격이 느껴질 정도로 매너 있는 분들도 많다.
내겐 두 얼굴 같았던
한 번은 두바이에서 친한 동기 언니와 만나 시간을 보내다, 막차를 타고 내릴 역을 지나쳐 종점까지 가버린 적이 있었다. 택시를 잡으려고 했지만 변두리에 도로가 뻥뻥 뚫린 곳이라 쉽지 않았다. 일단 걸어보기로 했는데, 옆에 아주 럭셔리한 차량 한 대가 서행하며 경적을 울린다. 창문을 내리고 묻는다.
"Do you want me to do you a favor?"
도대체 무슨 창조적인 표현인가, 잘못 들었나 싶어 "Sorry?" 하고 물으니 타라는 손짓을 한다. "No, no, thank you. We are okay." 그러자 재차 타라는 듯하여 조금은 강한 어조로 거부하자 F word를 쏟아놓고는 사라진다. 그때 그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 갔는데, 알고 보니, 변두리를 걷는 동양 여자애들이라 Hooker라고 생각했거나 쉬운 상대로 봤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무슬림 국가라 일반적으로 윤락 여성들이 길거리 호객을 한다고 해도 흔히 북미나 유럽에서 보듯 헐벗은 차림새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래도 아무나 붙들고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과연 정상인가.
이처럼 무슬림 율법에 따라 금지하고 제약을 두는 것이 많은데 실제로는 음주도 매춘도 심지어 더한 것도 암암리에 가능한 곳이라는 점에서 나는 늘 두바이가 두 얼굴처럼 느껴졌다. 신성한 달인 라마단의 정신에 대해 들으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물론 라마단을 존중하고 그 정신을 높게 산다. '이웃과의 나눔'과 같은 대목이 마음에 걸리지만 말이다. 주변 여러 국가에서 전쟁이 터지고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 반면에 이 나라는 이토록 부유하고 안정되어 있지 않은가. 어떤 이웃을 생각하고 베푼다는 것일까.
낯선 땅에서 꾸는 꿈과 희망이 지켜지기를
에미레이트는 그래도 캐빈크루는 정말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을 뽑고, 동등하게 대우 받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 있어 참 이상적이다. 그렇지만 회사의 경영진 구성을 보면 영국계 등이 많은 반면에 크루 버스 운전사나, 본사의 청소 인력들은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출신으로 확연히 갈렸다. 두바이는 80% 이상이 외국인인 도시이다. 이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 국적이나 피부 색깔에 따라 하는 일이 크게 분류될 수 있을 정도다. 영국인 메이드가 과연 있겠냐는 소리다. 이들의 운명이 늘 이렇게만 갈라져야 하는 걸까. 세상이 돌아가려면 분명히 험하고 어려운 일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자본주의 논리 아래 돌아가는 이 세계 단위에서 그런 일들이 결국 누구의 몫이 되는지가 뻔하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리고 그 노동에 대한 처우가 상당히 박하다는 것도.
방글라데시, 인도, 세네갈, 잠비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등 체류했던 도시들을 떠올려 보면 그 '격차'라는 것이 뼈가 시리도록 다가올 때가 많았다.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레이오버를 할 때, 호텔 앞에서 우리를 붙들고 구걸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신기하다는 듯 넋을 놓고 쳐다보는 그 얼굴들. 그럴 때면 감히 내 삶이 얼마나 감사한가를 떠올리곤 했다. 하루빨리 이 생각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오만하다고 여겨지는 때가 와야 할 텐데. 물론 발전 가능성을 바탕으로 희망과 변화가 꿈틀대고 있는 면면도 분명히 관찰되었다. 그런 꿈과 무지갯빛 내일을 바라보는 희망이 어쩌면 이미 중진국 또는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가 갖는 저성장의 그림자보다는 더 나은 것일까. 인프라가 갖춰지고 산업이 활성화되고, 무엇보다 교육이 잘 갖춰져 그 나라의 아이들이 더 크게 자라난다면 점점 더 나은 세상이 올 수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그렇게 피곤에 찌들어 버스에서 쪽잠을 자는 무리들 중 고개를 든 누군가의 하얀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에게도 꿈이 있을 텐데. 나에게도, 그에게도 타지인 두바이. 낯선 땅에서 그가 부디 더 높게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 낯선 땅에서 꾸는 그의 꿈과 희망이 지켜지기를. 그의 땀방울에 분명한 보상이 있기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거름이 되기를.
그리고 스스로 되뇌어 본다. 깨어 있기를, 변화를 만들기를, 희망을 바라보기를,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