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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쥬 Jul 24. 2018

빨간 모자 승무원의 하루(?)

DXB-ICN EK322/323

모월 모일
두바이발 인천행(DXB-ICN) 가는 날
03:40 출발 예정인 EK322 항공편


매월 18일 즈음이면 다음 달 로스터(roster, 비행 스케줄)를 받는다. 서울(인천) 비행이 보이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언제 들어간다고 미리 연락해둔다. 로스터가 나오면 바로 크루 앱과 사내 웹을 통해서 각 비행에 배정된 플라잇 크루들과 캐빈 크루들을 볼 수 있다. 출발일 이틀 전부터는 해당 비행의 로드(load, 예약 승객수)도 확인할 수 있다. 출발일 보통 하루 전에는 해당 비행의 퍼서(사무장)가 어디서 일하는지를 정해 메일을 보내준다. 가는 길/오는 길 둘 다 정해 주기도 하고, 퍼서에 따라오는 길은 시니어리티나 주니어리티(?) 기준으로 선택의 자유를 주기도 한다.




13:00, 14:00 즈음 기상



전날 최대한 늦게 잠들어서 최대한 늦게 일어나기를 애초부터 목표로 한다. 어차피 11:30pm부터 출근 준비를 해야 되는데 애매하게 초저녁에 잠드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괜히 잠으로 스트레스 받느니, 언젠가부터 정오를 넘겨 일어나는 것을 선택하고 비행 직전 잠은 포기(?)하는 것으로.


18:00 뒹굴뒹굴


그래도 늘 잠이 아쉬워서 이 시간쯤 되면 일단 침대에 기어 들어간다. 핸드폰도 보다가 눈도 감아봤다가 명상도 해봤다가. 잠들면 자고 아님 말고.


23:30 출근 준비 (이륙 4시간 10분 전)


알람이 울린다. 가볍게 샤워를 한다.


제일 먼저 머리를 한다. 일명 소라머리라고 불리는 프렌치 트위스트(French twist)를 한다. 이 머리는 유니폼에는 찰떡인데 일상생활에서는 좀. 일할 때 말고는 잘 하지 않는다. 소라머리를 하는 이유는 순전히 하기 쉽고, 풀기 쉽고, 백콤이나 스프레이 같은 별다른 처리 없이 자연스럽게 위쪽 볼륨이 살아서다. 이 머리 하는 데 채 2분도 걸리지 않는다. U자핀이나 실핀만을 이용해서도 가볍게 해내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나의 경우 반드시 빗 모양으로 된 전용 헤어핀을 사용해야만 금방이다.


소라머리의 예


입사 후 초반에는 흔히 전형적인 '승무원 머리'로 알려진 올림머리를 했다. 헤어망을 씌워서 한 방향으로 빙빙 돌려서 말아 올린 뒤, 두피에 착 고정하기 위해 U자핀을 사방으로 돌려 꽂았다. 게다가 볼륨까지 살려 연출하려면 더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간단히 해도 최소 10분은 걸렸었다. 게다가 견인성 탈모도 걱정되는 마당에, 매번 백콤이나 스프레이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서 찜찜했었다. 그러다 이 소라머리를 하는 법동료가 보여주는데 너무 쉽게 휘리릭 해내는 신세계를 발견했다. 당장 나도 그 헤어핀을 사다 해봤더니 세상 편해서 그 뒤로 소라머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가장 보편적인 헤어스타일


이제 메이크업을 한다. 그래도 한국 가는 비행이니까 사람들이 한국 사람인 줄 알 수 있게 인상을 좀 죽여본다. 눈썹도 좀 더 도톰한 일자로, 눈화장도 부드럽게. 물론 이렇게 해봤자 여전히 한국인 같진 않은가 보다. 입사해서 비행 때마다 제일 많이 들었던 소리가 You don't look Korean!


유니폼을 착용한다. 마지막으로 네일이 어디 벗겨진 데는 없는지 한 번 더 본다. 손톱은 일하다 보면 자주 깨지고 망가져서 귀찮은 마음에 그냥 베이스코트에 탑코트만 발라서 투명으로 끝낸다. 젤네일 등을 받아 레드나 프렌치 화이트, 스킨톤을 유지하는 크루들도 많지만 나는 그냥 이 정도로 끝.


턴어라운드는 찍고 다시 돌아오는 비행이라 캐빈백만 들고 나서지만, 레이오버 비행에는 수트케이스까지 챙긴다. 사실 비행 관련 물품과 기본적인 여행 짐은 아예 풀 일이 없이 늘 싼 채로 유지되어 있기 때문에, 도착지 날씨를 점검하고 적합한 입을 옷과 신발 등을 새로 챙겨 넣는 수준이다.


크루 앱을 켜고, 비행 수첩에 비행 정보와 함께 비행할 사람들 이름을 쭉 적어 내리면서 얼굴과 이름 등등을 간략하게 스캔해 본다.


끝으로 구두를 신고, 빨간 모자와 똑같은 레드 립스틱을 바른다. 향수까지 휘리릭 두르면서 숙소를 나선다.


00:40 숙소 출발 (이륙 3시간 전)


출퇴근길이었던 Sheikh Zayed Road


크루 숙소는 두바이 전역에 흩어져 있다. 내가 사는 곳으로부터 헤드쿼터까지는 대략 25-30분 정도. 하지만 일부러 1시간 정도 일찍 나선다. 내가 타는 노선이 유난히 많은 크루들이 타는지라 비행이 많은 타이밍에 잘못 나서면 자리가 없어서 못 타는 불상사가 가끔 생겼다. (지금은 훨씬 큰 버스로 다니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더이상 없을듯!) 각 맞춰 계산하고 나오면 이런 돌발 상황에 대비가 안 되고, 간격이 보통 15분이라서 하나 놓치면 지각이 걱정될 때도 있으므로 그냥 넉넉히 잡고 나오는 셈. 어쩌다 러시아워에 출근해야 할 때는 그보다도 10여분 더 일찍 나오는 게 마음이 편하다.


크루 버스 안에서는 브리핑 중 있을 Safe talk(안전/보안/의료 지식 점검)에 대비해 문제은행을 쭉 읽어 내려간다. 문제은행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된다.


01:40 이륙 120분 전 크루 체크인


이륙 120분 전, 즉 2시간(+5분) 전부터 e-gate에 ID 체크를 하고 지문 스캔을 하면 보안구역 입장이 가능해진다. 그 전에는 입장이 불가하다. e-gate가 '열렸다(open)' 고 표현한다. 이륙 100분 전까지 체크인을 하지 않으면 지각 또는 결석이 된다. 몇 분 정도는 봐주기도 하지만 보통은 대기 인원이 대신 비행에 투입된다. 지각은 프로파일에 기록된다. 하지만 일단 쇼업한 상태라면 운이 좋을 시 다른 비행에 불려 갈 수도 있다. 그럼 지각이 매니저에게 알려지긴 해도 기록상으로는 남지 않는다. 아예 출근이 어려우면 결석. 매니저에게 연락이 오겠지, 왜 그랬냐고.


만약 병가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최소 예정 출발시각 4시간 전에는 병가 리포트(Call sick)를 해야 한다. 4시간 이내 혹은 리포트를 하지 못하면 아픈 사실과 관계없이 무단결근이 될 수 있다. 전화로 리포트한 후에는 반드시 사내 클리닉에 내방하여 병증을 판단받고 적합한 병가 기간을 부여받는다. 병가도 누적이 많으면 매니저로부터 미팅 요청이 있을 수도 있고, 때에 따라 경고를 받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무사히 당도하여 e-gate를 통과했다면 늘어선 키오스크에 ID를 댄다. 비행 정보가 스크린에 뜬다. 확인 후, 비행 필수 문서를 챙겼는지 묻는데 재차 확인을 누르면, 브리핑룸 번호가 안내되고, 짐 태그가 자동으로 출력된다. 태그를 수트케이스에 부착하고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 크루 짐을 부친다.


보안구역은 공항과 똑같은 정부 인력이 파견되어 있다. 일반 승객들처럼 보안 장치를 통과해야 하고, 이때 소리가 여러 번 나면 따로 몸수색을 받아야 하기도 한다.


02:00 이륙 100분 전 브리핑



보안구역을 통과하면 종종 그루밍(Grooming)을 확인하는 직원(?)이 서있기도 한다. 이제 브리핑룸을 찾아간다. 보통 시니어(퍼서와 CSV;부사무장)들이 먼저 와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 자기가 일하는 캐빈 구역에 가서 앉고, 담당 부사무장에게 문서 체크를 받는다. 여권, 비행 관련 자격증, 백신 증명서 같은 것들. 하나라도 빠지면 당연히 비행에 갈 수 없다.


서울 비행이니까 미리 사진을 보고 얼굴을 익혀둔 한국인 선배님들을 찾아 인사를 드린다. 가끔 외국인 크루들이 이걸 따라 흉내내기도 한다. This kind of acts only done by Korean and Japanese, right? 그러게. 중국 크루들은 이렇게 비행 전에 안녕하십니까! 인사하고 비행 후에 수고하셨습니다~, 이런 각 잡힌 인사는 하는걸 딱히 못 본 것 같은데.


모든 크루들이 들어서고 나면, 안전/보안/의료 지식을 점검하기 위해 각자 질문을 하나씩 받고 대답을 한다. 틀릴 경우, 다른 질문이 재차 주어지고, 또 틀리면 그날 비행에서는 보조 포지션으로 강등되며 개인 프로파일에 기록된다. 그러면 역시 매니저로부터 호출이 올지도.


캐빈 별로 브리핑이 시작된다. 각자의 기대치를 공유하고 특별한 지시사항이나 알아둬야 할 것들을 함께 나눈다. 그리고 그날 손님 중에 중요한 손님들이 있는지 같이 확인한다. 특별히 비즈니스 클래스 같은 경우는, 주문을 모바일(서비스 용도로 별도로 지급되는 휴대폰)로 받고 있기 때문에, 승객 정보를 기기에 다운로드한다.


각 캐빈 별 브리핑이 끝났다 싶으면 그날 퍼서가 이제 비행 전체적인 관점에서 알아야 할 것들을 포함, 도착지에 대한 정보를 나눈다. 퍼서가 중요한 토픽을 선정해 논의도 한다.


잠시 뒤, 플라잇덱 크루들도 연결된 방에서 본인들의 브리핑을 마치고 넘어와 인사를 하고, 캐빈 크루들에게 그날 비행 정보를 공유한다. 비행고도, 비행시간, 기상 상황 등등. 시니어들이 문서 작업까지 모두 마치면 브리핑 끝, 비행기로 이동한다.


02:20 이륙 80분 전 비행기로 이동 및 비행 준비


브리핑룸을 다 같이 나와 비행기로 이동시켜줄 셔틀에 다 함께 탑승한다. 비행기에 도착하면 각자 짐을 보관하고, 즉시 담당 구역의 안전장비가 알맞게 배치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잘못된 것이 일으면 곧장 리포트한다. 기내 청결 상태도 함께 살핀다. 이후 기내 안에 별도 인력들이 모두 나가고 난 뒤, PA(안내방송; Public Announcement)로 보안점검을 시작하라고 하면 담당 구역을 샅샅이 뒤져 보안점검을 한다. 이상이 있으면 당연히 상황이 클리어 될 때까지 비행은 지연된다.


보안점검까지 모두 마치면 전체 인터폰 All call을 통해 문제가 없음을 서로 구두로 확인한다. 그럼 퍼서는 이 취합된 결과를 전달하고 보딩이 가능함을 지상직에게 알려준다.


재밌는 사실 하나는 승객 탑승 전에 꼭 누구 하나는 Crew cart라고 해서 크루밀과 간식 등이 실려있는 카트를 열어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열어서 거기 있는 샌드위치나 과일 같은 것들을 갤리 위에 내놓기도 한다. 혹시 비행 전에 배가 고프면 바나나 하나를 집어 먹곤 했다.


02:55 이륙 45분 전 보딩



Hats on, lipsticks on, smiles on, guys, let's start boarding!


손님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시니어들이 PA를 통해 보통 저렇게 미리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거울 한 번 보고,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손님맞이 시작! 어느 캐빈이든 공통적으로 캐빈 크루들은 통로에 서서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자리를 안내하고, 중간에 막힘이 없이 손님들이 신속히 탑승해서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회사에서는 트레이닝 때부터 절대로 손님 짐을 혼자 들어 올리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다. 만약 손님이 도와달라고 하면 '함께' 들자고 한 뒤, 최대한 나의 힘은 들이지 않고 응대라고 한다. 혼자서 감당하려다 문제라도 생기면 회사에서 커버해 주지 않는다. 대다수 손님들은 아니지만 몇몇 손님들은 어떻게 그 정도 무게의 짐을 들고 탔는지 신기할 정도로 무겁고 많은 짐을 들고 타신다. 그리고 혼자 올릴 수 없어서 크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회사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특별히 유의할 것을 권한다. 너의 허리는 오직 하나뿐임을 명심하라고. 올리다 짐이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산업재해에도 해당하지 않고 그냥 무조건 내 책임이기 때문에 조심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여린 마음에 사실 번쩍번쩍 올려주곤 했는데, 아마 내가 그렇게 해서 다른 크루들도 같은 기대를 받는 피해를 봤을 수도 있겠다 싶다.


보딩으로부터 이륙 전까지 마무리되어야 하는 캐빈 별 서비스는 조금씩 다르다. 이코노미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으니 가급적 원활한 보딩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첫 번째 목표이지 않을까. 보딩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면 메뉴와 해당 시 킷백, 랜딩 카드 등을 나눠준다. 아이들에게는 특별히 장난감 등을 제공한다. 비즈니스는 보다 섬세하고 개인화된 서비스다. 승객 한 분 한 분께 인사드리고 자기소개를 한 뒤, 에미레이트 비즈니스만의 특징적인 부분들을 언급하고(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하다 말다 했..), 웰컴 드링크(오렌지/사과주스 또는 샴페인), 따뜻한 타월까지.


거기까지 하면 마지막 도어(door; 문)가 닫힌다. 탑승을 위한 파이널콜은 예정된 이륙 시간 20분 전이다. 즉, 03:20이면 게이트가 닫히고, 이후 비행기의 물리적 도어도 닫히는 것이다. 이쯤 보통 안전 비디오가 재생된다. 비디오가 재생될 동안에는 자기 담당 구역에 가서 서있는다. 영상이 끝나면 캐빈을 돌면서 안전점검을 한다. 좌석이 정자세인지, 안전벨트는 다 맸는지, 창문 커버가 완전히 열려있는지, 비상시 탈출을 방해하는 짐들이 바닥에 있진 않은지 등등을 꼼꼼히 확인한다.


이 안전점검의 목적은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유사시 90초 내에 모든 승객을 탈출시키기 위한 준비작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니, 도대체 왜 귀찮게 이런 것을 시키는 거지? 궁금하다면 만약 엔진에 급작스럽게 불이라도 나서 비상탈출을 해야 하는데 창문이 닫혀 있어서 밖이 어떤지 알 수 없고, 앞사람 좌석이 뒤로 젖혀져 있어서 나가는데 불편하고, 바닥에 널브러진 짐에 걸려 넘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왜 캐빈 크루들이 단호하게 요구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손님들은 대체로 우리가 서비스하는 모습을 위주로 보고, 서비스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캐빈 크루 트레이닝 코스만 봐도 거의 대부분이 안전과 보안 그리고 의료에 관련된 비중이 훨씬 더 크다.


03:40 예정된 이륙 시간


보통 예정된 시각에 이륙을 정.확.하.게 하지는 못한다. 표에 기재된 출발-도착 시간은 조금 넉넉하게 책정된 경우가 많다. 특히, 두바이에서 이 시간대에 출발하는 비편이 많기 때문에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다. 어쨌든 기체가 런웨이로 이동하기 시작하면, 안전점검을 완벽히 하고 크루 자신도 빨리 점프시트에 앉은 뒤, 캐빈 안전 상태를 각 캐빈 CSV, 그리고 퍼서에게 전달한다. 퍼서가 전체 캐빈 안전 상태를 플라잇덱에 전달하면 그때부터 Alert라고 해서 크루들은 비상시 행동강령과 안전장비 위치를 복기하도록 교육받는다.


참, 분명 나는 이륙 시간보다 훨씬 일찍 출근했지만, 그 시간들은 그냥 기본 급여에서 커버될 뿐, 비행기 바퀴가 공중으로 떠야만, 즉, 이륙을 해야만 비행시간에 따른 급여 카운트가 드디어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바퀴가 지면에 닿을 때까지만. 오직 하늘에 떠 있을 때만 .


~운항 중~



비행은 운항 시간에 따라 카테고리가 달리 분류되고 그에 따라 제공되는 서비스 횟수와 성격이 달라진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초단)/단거리/중거리/장거리라고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서울 비행은 8시간 후반에서 9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시간이므로 중거리(?) 정도로 분류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두 번의 메인 밀 서비스가 제공된다. 이륙해서 한 번, 착륙 전에 한 번.


이코노미는 문제없이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모든 승객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일 것이고, 비즈니스는 도자 그릇과 실버웨어에 코스로 밀이 제공되기 때문에 충분히 손님들이 원하는 식사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이코노미 때나 비즈니스 때나 먹고 싶은 것 제대로 못 먹어서 불쾌해하는 분들은 생길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야 사실 선택지를 보다 넉넉히 실어주므로 이런 문제가 거의 없지만 이코노미에서는 매일매일 사과하고 다니는 게 일이다. 게다가 요즘은 비용 절감 때문에 숫자를 거의 맞춰서 싣는 탓에 크루들의 어려움이 더 증가하는 것 같다.


대충 비행시간이 편도로 4시간 이하면 턴어라운드 비행이 되고, 4시간 이상인 경우에는 도착지에서 레이오버를 하게 된다. 비행시간이 9시간이 넘어가면 비행 도중에 크루들이 돌아가면서 휴식 시간을 갖는다. 1시간 이상 되는 휴식은 기내에 크루들만 접근할 수 있는 구역에 개인 벙커가 있어 그곳에서 보낸다. 서울 비행은 30분-1시간 사이로 휴식인지라 그냥 캐빈 내에 커튼으로 구분한 좌석에서 보낸다. 워낙 불편하고 그다지 쉰다는 의미가 있진 않다.


서비스 사이사이에는 음료를 트레이에 준비해서 통로를 지나며 목마른 승객들에게 제공하고, 요청한 별도의 음료를 내 가기도 하고,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나 이어폰 고장 시 교환 등을 도와드려야 하고, 담요나 안대를 요구하는 손님들이 있으면 가져다 드리기도 하고, 캐빈이나 화장실 등 청결도를 챙기기도 해야 한다. 생각보다 응급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 기내 안이기도 하므로 공황, 소화장애, 쓰러지는 손님들을 돌봐야 하기도 한다. 그밖에 추가적으로 일어나는 돌발 상황들도 굉장히 많은데 지면에 다 담기 힘든 특수한 것들도 많다. 캐빈 크루는 기내 안에서, 안전요원, 보안요원, 소방관, 간호사, 보육 담당 등등 별게 다 되어야 한다.


그밖에는 동료들과의 대화, 승객들과의 대화로 채워진다. 동료들과는 대개 두바이 생활, 가십거리 등등 주로 가벼운 주제로 서로를 알아간다. 도착지에서 무슨 일을 할지 계획을 나누기도 한다. 승객들과는 이코노미에서는 몇몇 분들이 갤리 근처에 머물면서 대화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비즈니스에서는 대개 A380 바 근처에서 대화의 장이 열린다. 이 와중에 재밌는 사연들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시간이 금방 간다. 뻔하고 지루하게 흘러가면 도대체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지 다들 시간 죽이기에 돌입한다.


비행 내내 물을 엄청 마시곤 했다. 졸릴 때는 에스프레소나 라떼도 만들어 마시고. 기내가 추울 때가 많아서 꼭 가디건까지 든든히 걸치고 따뜻한 차를 무한 마시곤 했다. 승객으로 갈 때는 사실 화장실 가기가 번거로워 물을 잘 안 마신다. Duty로 비행할 때는 계속 깨어있고 돌아다닐 수 있어서 화장실 가기도 용이하니까 별 걱정이 없다.


16:55 예정된 착륙 시간


착륙 또한 예정된 시간에 딱 맞춰지지 않는다. 보통은 넉넉하게 예정을 잡는지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예정 착륙보다는 이르게 도착한다. 작년 어느 시점부터 서울 비행이 평소보다 착륙이 많이 늦어 이유를 물으니, 중국 쪽에서 항로를 다소 우회하도록 배정하고 있어서라고 들었는데 현재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또한 제트 기류(Jet stream)로 인해 비행시간에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착륙이 가까워지면 비행기는 이제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Top of descent라고 해서 TOD, T/D 또는 그냥 Top이라고 부른다. 착륙을 위한 접근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보통 착륙하기 30분 전에 캡틴이 방송을 하고, 캐빈의 불이 환하게 들어오는 때다. 미리 사람들이 화장실에 다녀와 주면 좋으련만, 매번 이 방송을 뒤로 사람들이 화장실을 가려고 줄을 늘어선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다음에는 모니터에 착륙 시간이 45분 안팎으로 떨어지면 그때 미리 화장실을 다녀오시라. 안내방송이 나온 뒤엔 줄을 서야 할 가능성이 높다.


30여분 사이 우리는 착륙 준비를 한다. 담요를 걷고, 헤드셋을 걷고. 이륙 때처럼 캐빈을 정돈해서 착륙을 위한 안전점검 절차를 밟는 것이다. 창문, 좌석 모두 제자리로 돌려놓도록 하고 역시 안전벨트를 잘 맸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내 구역 점검이 완료되면 점프 시트에 앉고 시니어를 통해 확인 메시지를 보낸다. 랜딩 기어가 내려오면 역시 Alert 상태를 유지한다.



착륙 후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은 누군가 캐빈에서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기체가 아직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반드시 자리에 앉아 있도록 승객을 안내해야 하기 때문에, Sit down! 하고 무섭게 외친다. (가끔은 일부러 괜히 더 요란하게 소리 지르기도 했음을 밝혀보며) 마침내 비행기가 완전히 정차하게 되면, 우리의 임무는 제일 먼저, Aerobridge나 Stair truck이 알맞게 위치되었을 때, 안전하게 도어를 여는 것이다. 문이 열리고 적절한 때가 되면 안전벨트 사인이 꺼진다. 물론 대부분의 승객들은 비행기가 멈췄다 싶으면 우다다다 일어나서 짐칸을 열거나 정신없이 앞으로 가려고 하시지만. 어떤 곳들은 정말 아무도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기 전까지 일어나지 않는 매우 높은 시민정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럴 때면 꽤나 감명받곤 한다. 반대로 무질서의 끝을 보여주는 곳들도 있다.



승객들이 모두 내린 뒤 포스트 랜딩 듀티 (Post landing duties)


승객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크루들은 다시 한번 자기 구역의 보안 점검을 한다. 때에 따라 남겨진 헤드셋이나 담요를 걷어야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아웃 스테이션에서는 별다른 것 없이 짐 챙겨 빨리 나가는 게 청소하시는 분들이나 지상직 분들을 돕는 일이다.


각자 구역을 정리하고 담당 시니어에게 확인받은 뒤, 각자 짐을 챙겨 비행기를 빠져나간다. 보통 크루들은 다 같이 이동해 입국심사를 받고, 부쳤던 짐을 찾아 공항을 빠져나온다.



18:00-19:00 사이 호텔 도착


공항에 미리 대기하고 있는 셔틀을 다 같이 타고 호텔로 이동한다. 서울 비행에서는 특별히 집이 수도권인 한국인 크루들은 캡틴과 퍼서에게 허락을 받은 다음 곧바로 공항에서 집으로 가기도 한다. 그렇지 않고 호텔로 가기도 한다. 호텔 로비에 도착하면 사인을 하면서 룸키와 체재비(Allowance)를 수령한다.


~레이오버~


그야말로 자!유!시!간!


서울 레이오버에서는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다른 도시에서는 혼자 돌아다닐 때도 있고, 다른 마음 맞는 크루들과 함께 돌아다니기도 한다. 빼놓지 않는 것은 슈퍼 탐방. 꼭 장을 봐서 두바이로 돌아온다.


21:45(+1 day)  호텔 로비 집합 / 22:00(+1 day) 인천공항 도착


이튿날이 되면 꿀 같은 레이오버가 끝나고 이제 다시 두바이로 돌아가야 한다. 호텔 로비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다 같이 모인다. 레이오버 잘 보냈는지 서로 안부도 묻고. 시니어에게 비행 서류들을 잘 챙겼는지 확인도 받는다. 셔틀을 타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출발.


23:55(+1 day)  예정된 이륙 시간


EK323, 또다시 새로운 손님들을 모시고 두바이로 날아가야 할 시간. 굿바이, 한국. 또 금방 올게. 잘 있어!!




승무원의 하루를 읊어보았다. 이 비슷하게 무언가 반복된다고 이해해도 되겠지만, 사실 매 하루하루는 다 조금씩 다르게 흘러간다. 그날 그날 새로운 노선, 새로운 크루, 새로운 비행기, 새로운 손님들까지 다른 하루를 만드는 요소가 무한하다. 같은 하루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일 자체는 비슷하게 반복되더라도 이와 같이 Everyday new였기 때문에 결코 질리지 않는 것이 비행이었다. 특히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서비스하는 일에 애정이 있다면 이만큼 좋은 일이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일전에 알던 사무장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비행하러 갈 때마다 자기는 연극 하나 하러 무대에 오르는 기분이라고. 가장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자신을 단장하고, 손님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전달하면서, 최대한 드라마 없는 비행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꽤나 공감하는 비유다. 손님맞이 전에 우리끼리 흥을 돋우며 하던 말을 적어보며 맺는다.


Let's rock and 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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