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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쥬 Nov 12. 2018

[외신] 우리가 아는 우울증은 틀린걸까?

Everything know about depression wrong?

 한때는 우울증 치료제, 항우울제로 인해 혜택을 받았지만 현재는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짝꿍을 보며, 기존 학계에서 접근하고 있는 치료 방식이 과연 옳다고 봐야 하는 것인지 많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아마 Johann Hari의 주장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더욱 있을 것이다. 이것을 번역해 실어 보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Dean Burnett이 해당 기사에 대한 반박글을 게재하였다. 각기 주장에 대한 형평성을 위해 모두 싣기로 했다.


 의역 또는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아래 원문 링크를 참조하기 바란다.



https://www.theguardian.com/society/2018/jan/07/is-everything-you-think-you-know-about-depression-wrong-johann-hari-lost-connections


https://www.theguardian.com/science/brain-flapping/2018/jan/08/is-everything-johann-hari-knows-about-depression-wrong-lost-connections




[주장]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우울증이 실은 다 틀렸다면?

/작가, 저널리스트 Johann Hari (2018년 1월 7일)


13년 동안 항우울제를 복용한 Johann Hari는 저서를 통해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하고 있다.


 1970년대에 우울증에 관한 진실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우울증에 대한 미는 매우 불편하고, 아주 폭발적인 것이라 세상을 급격히 휩쓸 정도였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은 각기 다른 정신 질환의 모든 증상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책을 제작하였고, 이로 인해 미국 전역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질환을 확인하고 치료할 수 있었다. 이는 진단 및 통계 매뉴얼(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이라고 불렸다. 가장 최신판에서는 환자를 우울증으로 진단하기 위해 필요한 9가지 증상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기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거나, 저기압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가 해당된다. 의사가 우울증이라고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몇 주 동안 5가지의 증상이 나타나야 한다.


 이 매뉴얼은 미국 전역에 배포되었으며 환자들을 진단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저작물에 몇 가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지적 되면서 저자들에게 문의가 왔다. 만약 그들이 이 지침을 따른다면, 상을 당해 슬픔에 잠겨 자신들을 찾아온 모든 사람들을 우울증으로 진단하고 의학적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신이 누군가를 잃게 된다면, 이러한 증상들은 즉각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 의사들은 알고 싶었다. 미국에 있는 모든 유족들에게 약을 먹여야만 한다는 것인가?


 저자들은 협의를 거쳤고, 우울증 증상 목록에 특수 조항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지난 해에 잃어야만 했다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런 모든 증상들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질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예외적 비통함'이라 부르며 문제가 마치 해결되는 듯 보였다.


 그런 다음, 수년 그리고 수십년이 흐르는 동안, 최전선에 있는 의사들은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의사들은 우울증이 뇌의 자연적 화학 불균형의 결과라고 환자들에게 이야기하게끔 장려되어 왔다. 이는 낮은 세로토닌 수치, 혹은 다른 어떤 화학 물질이 자연적으로 결핍되어 발생한다. 그러니 당신의 삶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고장난 뇌가 그 원인인 것이다. 일부 의사들은 어떻게 이것이 예외적 비통함에 적용될 수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우울증의 증상이 삶의 한 측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든지- 에 대한 논리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다른 특정 상황에 있어서는 이해할 만한 반응이 아닐  있을까? 직장을 잃으면 어떨까? 향후 40년간 당신이 싫어하는 직업에 억지로 해야 한다면 어떨까? 당신이 혼자고 친구도 전혀 없다면 어떨까?


 이 '예외적 비통함'은 우울증의 원인이 당신의 두개골 안에 봉인되어 있다는 주장에 큰 구멍을 뚫어놓는 것과 같았다. 그러니 그 바깥에, 결국 이 세상에, 어떤 원인들이 있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그 원인들은 조사되고 해결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주류 정신의학(일부를 제외하고)에서 다루고 싶어하지 않는 논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예외적 비통함'을 걷어내 버림으로써 아주 간단하게 대응했다.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딱지가 붙지 않을, 그 슬픔이 허용된 기간은 매뉴얼이 새롭게 발간될 때마다 줄어들어갔다. 단지 몇 개월 정도로 줄어들었다가 결국에는 아예 없어져 버렸다. 그러니 지금은, 만약 당신의 아기가 오전 10시에 사망하면, 의사는 당신을 오전 10시 01분에 정신 질환으로 진단하고, 그 즉시 약물 처방을 시작할 수 있단 소리다.


 애리조나 주립대의 Joanne Cacciatore 박사는 출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아기인 Cheyenne을 잃고난 후 '예외적 비통함'에 있어 선도적인 전문가가 되었다. 그녀는 수많은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 단지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 것으로 정신 질환자 취급을 받는 것을 보아왔다. 그녀는 이 논쟁이 우리가 우울증, 불안 및 다른 형태의 고통에 관해 이야기 하는 방법에 대한 핵심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상황을 고려하세요." 라고 말했다. 우리는 마치 인간의 고통이 삶과는 완전히 분리되고 뇌 질환 딱지를 붙이기 위한 체크리스트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평가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Joanne은 우울증과 불안을 치료할 때 사람들의 실질적인 삶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면, "전체 시스템 점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극심한 인간적 고통을 가진 사람이 있을 때, 증상만을 치료하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이 증상들은 더 깊은 문제의 메신저입니다. 더 깊은 문제에 직면할 때입니다."




 처음으로 항우울제를 삼킨 것은 십대 때였다. 런던의 한 쇼핑 센터에 위치한 약국 바깥에서, 영국의 약한 햇살 속에 서 있었다. 그 알약은 하얗고 작았고, 그것을 삼켰을 때 마치 화학적 키스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날 아침 의사를 만나러 갔다. 웅크리고 당황한 채로 말했다. 마치 아주 나쁜 냄새가 풍기는 것처럼, 고통이 통제할 수 없이 나로부터 새어 나오고 있으며, 수년 동안 이런 느낌을 겪어왔다고. 이에 대한 답으로 그는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세로토닌이라는 화학 물질이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이것들이 뇌에 부족한 상태라고 말이다. 내가 분명히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 고맙게도 정상적인 사람의 세로토닌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신약이 있으니 복용해 보라고, 그러면 좋아질 거라고 했다. 마침내,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났으며, 왜 그런지 이해하게 됐다.


 그러나, 몇 개월 간 약물을 복용했을 즈음,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고통이 다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처음에 좋지 않았던 것만큼 나빠졌음을 느꼈다. 다시 의사를 보러 갔고, 의사는 확실하게 복용량이 너무 낮은 탓이라 말했다. 그래서 20mg은 30mg이 되었다. 하얀 알약은 파란색이 되어 있었다. 몇 개월 간은 기분이 나아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고통이 한 번 더 되돌아왔다. 복용량은 꾸준히 올라가 80mg에 달했다. 아주 짧았던 중단 기간을 제외하고는 수년 간 유지했던 복용량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고통은 뚫고 돌아왔다.


 저서, '잃어버린 연결 : 우울증의 진정한 원인을 밝히기 -와 예기치 못한 해결책'(Lost Connections: Uncovering The Real Causes of Depression – and the Unexpected Solutions)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두 가지 미스테리로 인해 매우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하라고 한 모든 일을 했는데도 왜 대체 아직도 우울한 걸까? 세로토닌 수치를 높이고 있는데 아직도 여전히 끔찍함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도 더 알쏭달쏭한 미스테리가 있다. 왜 서방 세계의 다른 많은 사람들 역시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 걸까? 미국 성인 5명 중에 1명은 정신과적 문제로 인해 최소 한 종류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항우울제 처방이 십 년만에 두 배가 되었다. 지금 우리들(영국) 11명 중 1명은 이러한 감정을 다루기 위해 스스로 약을 먹고 있다. 무엇이 우울증 그리고 그 쌍둥이 격인 불안을 유발하는 걸까, 이런 나선형처럼 꼬인 모양으로 말이다.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로 우리 각자의 분리된 머릿속에서, 우리 모두가 그렇게 동시에 자발적으로 오작동하는 뇌 화학물질을 가지고 있다는 걸까?


 답변을 찾기 위해, 전 세계 4만 마일을 여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질문들을 조사한 선도적인 사회 과학자들 그리고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우울증을 극복해 온 사람들(인디애나의 아미쉬 마을에서부터 광고를 금지한 브라질의 도시, 그리고 놀라운 실험 물결을 수행하기 위한 볼티모어의 실험실)과 대화를 나눴다. 이 사람들로부터 우울증과 불안을 실제로 일으키는 최고의 과학적 증거를 배웠다. 그들은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이 틀렸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 안의 7가지 특정 요소들이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이 힘과 결합하여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두 가지 실질적 생물학적 요인(유전자와 같은)도 있다.


 일단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나의, 그리고 우리의 우울증에 대한 매우 다른 해결책이 보였고, 그렇게 나를 기다리고 있음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다른 사고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이야기를 먼저 조사해야만 했다. 처음에 내게 큰 안도감을 주었던 것들이다. 하버드 대학의 Irving Kirsch 교수는 화학적 항우울제에 관해서라면 셜록 홈즈와 같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밀접하게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들에게 약을 처방하는 증거를 조사한 사람이다. 1990년대의 그는 환자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화학적 항우울제를 처방했다. 발표된 과학적 증거를 알고 있었고, 그 내용은 확실했다.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70%가 상당히 좋아졌음이 나타났다. 그는 이것을 더 깊이 조사하기 시작했고, 제약 회사가 사적으로 수집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정보 요청을 했다. 그는 모든 종류의 다른 긍정적인 효과를 발견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 그때 그는 뭔가 독특한 것에 부딪혔다.


 당신이 셀카를 찍는다면, 30장 정도를 찍고, 눈이 흐리게 나왔거나 턱이 접혀 나왔거나 한 29장은 버리고, 가장 잘 나온 것을 골라 Tinder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거의 모든 약제에 대한 연구에 자금 지원을 하는 제약 회사들 역시, 화학적 항우울제 연구에 있어 이러한 접근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들은 엄청난 수의 연구들에 자금 지원을 하고, 약물에 매우 제한된 효과가 있다고 제시하는 것들은 모두 버리고, 성공을 입증한 것만 공개할 것이다. 한 예를 들면 : 한 임상 시험에서 약은 245명의 환자에게 투여되었지만 제약 회사는 27명의 환자에 대한 결과만 발표했다. 그 27명의 환자에게는 약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Kirsch 교수는 그 70% 수치가 옳지 않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사람들 중 65-80%가 1년 내에 다시 우울증을 앓는다. 이 약을 먹는 동안에도 우울증 상태에 빠져있는 내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사실, Kirsch 교수가 매사추세츠에서 설명한 바로는, 나는 아주 전형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약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그러나 명백하게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주요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도 아직 우울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울한 사람들에게는 단 하나의 옵션만이 있는 메뉴가 제공되고 있다. 나는 분명히 메뉴를 벗어난 어떤 것도 원하지 않지만,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메뉴를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로 인해 Kirsch 교수는 더 기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고, 그 중 이 질문의 경우, 그 자신조차 놀라게 했다. 우울증이 세로토닌이 낮은 것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그가 이에 대해 파고 들기 시작했을 때, 그 증거라는 것이 현저히 흔들리는 것이라는 게 밝혀졌다. 프린스턴 대학 Andrew Scull 교수는 란셋(Lancet)에 이렇게 기고했다. 우울증이 자연적으로 낮은 세로토닌에 기여한다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크고 비과학적"이라는 설명이다. David Healy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절대, 그 어떤 기초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마케팅 문구일 뿐이었습니다."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 번 당신의 고통에 대해 이해할 만한 이야기에 정착하게 되면, 그 이야기를 거스르기가 꺼려진다. 그건 마치 나의 고통을 어떤 식의 통제 하에 놓기 위해 멘 가죽 끈과 같았다. 만약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의지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망쳐 버리게 되면, 고통이 마치 고삐 풀린 동물처럼 날뛰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과학적 증거가 나에게 명확한 것을 보여 주었고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상파울루에서 시드니, 로스앤젤레스에서 런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사회 과학자들을 인터뷰 할 때, 예기치 못한 그림의 출현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인 식량, 물, 숙소, 깨끗한 공기와 같은 육체적 필요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같은 방식으로, 모든 인간은 특정한 기본적인 심리적 필요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우리는 소속감을 느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소중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것에 능하다는 느낌도 필요하다. 우리에게 안전한 미래가 있다고 느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 문화 안에서 많은(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의 심리적 요구가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나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정말로 필요한 것들로부터 연결이 끊어져 가고 있음을 계속해서 알아채고 있다. 이 깊은 단절은 전염적인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러한 원인들 중 하나와 그 해결책 중 하나를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이것들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지 보도록 하자. 인간은 자신의 삶이 의미있는 것(어떤 목적을 가지고 무엇을 함으로써 차이를 만드는)으로 느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심리적 욕구다. 그러나 2011년과 2012년 사이에 여론조사회사 Gallup은, 깨어있는 삶의 대부분을 유급 노동에 사용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여지껏 중 가장 상세한 연구를 수행했다. 13%의 사람들은 자신의 업무에 대해 "몰입 engaged" 되어 있으며 일이 뜻 깊고 기대된다고 했다. 63%는 "몰입되지 않은 not engaged" 상태라 말하며 일하는 날은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보내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24%는 "적극적으로 단절 actively disengaged", 즉 증오할 정도다.


 내가 아는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일을 좋아하지 않는 87%의 사람들임을 깨달았다. 이것이 우울증과 관계가 있다는 증거가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1970년대 호주의 과학자인 Michael Marmot이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원인을 조사하고 싶었고 답을 발견할 수 있는 완벽한 실험실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 화이트 홀에 있는 영국 공무원(British civil service). 이 작은 군대와 같은 관료 조직은 19명의 다른 계층으로 나뉘어 지는데, 상급 사무 총장(Permanent secretary at the top)부터 타자원(typists)까지다. 처음, 그가 알고 싶었던 것은 스트레스와 관련된 심장 발작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 큰 사람이었다. 가장 높은 사장일까 아니면 그 아래의 누군가일까?


 모두가 그에게 시간 낭비라고 말했다. 분명히 사장이 더 많은 책임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Marmot이 결과를 발표했을 때, 사실은 정반대라고 밝혀 냈다. 계층 구조에서 순위가 낮은 직원일수록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지고 심장 발작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제 그는 알고 싶었다 : 왜?


 그리고 그때, 이 공무원 집단을 연구하는데 2년이 더 걸린 후에야 그는 가장 큰 요인을 발견했다. 당신이 일을 통제할 수 없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은 훨씬 더 크며, 결정적으로 우울해진다. 인간에게는 우리가 매일매일 하고 있는 무엇이 의미 있어야만 하는 타고난 욕구가 있다. 통제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당신은 일에서 의미를 창조할 수 없다.


 갑자기,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나의 많은 친구들, 심지어 굉장한 직업을 가졌더라도 대부분의 깨어있는 시간을 통제 받고 인정 받지 못하는 느낌으로 보내는 그들이, 더이상 두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발견한 바로는 많은 우울증의 원인이 이런 식이다. 그러나, 나의 이 여정이 단순히 왜 우리가 이렇게 나쁜 기분을 느끼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는 것만은 아니다. 핵심은 우리가 어떻게 좀더 나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는 것이다. 어떻게 우리가, 그동안 단일 메뉴로 제공되어 온 알약 더미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효과가 있을, 진정하고 지속적인 항우울제를 발견할 수 있는지다. 나는 계속해서 Cacciatore 박사가 가르쳐 준 것을 생각했다. -우리는 이 모든 고통을 야기하는 더 깊은 문제들을 다뤄야만 한다.


 나는 볼티모어에서 이 전염병과도 같은 '일의 무의미함'을 타개할 해답의 시작점을 찾았다. Meredith Mitchell은 그녀의 불안 장애로 인해 심장이 마구 뛰는 증상으로 매일 아침 눈을 뜨곤 했다. 그녀는 자신의 사무직 직장에 가기를 두려워 했다. 그래서 그녀는 대담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녀의 남편, Josh,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은 자전거 가게에서 수년간, 명령 받으며 계속해서 불안정한 느낌을 받으며 일해왔다. 그들 대부분이 우울했다. 어느 날, 그들은 자신들의 자전거 가게를 열기로 결정했으나, 다르게 운영하기를 원했다. 꼭대기에 있는 한 사람이 명령하는 대신에, 민주적인 협동 조합 방식으로 운영하기로 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집단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고, 업무에 있어 최고와 최악인 부분들을 다같이 공유할 것이고, 모두 함께 사장이 된다는 것이다. 아마 바쁜 민주주의 부족과 같은 모습일 것이다. 내가 그들의 가게, 'Baltimore Bicycle Works'에 갔을 때, 직원들은 이러한 다른 환경에서 그간 지속됐던 우울증과 불안 장애로부터 크게 벗어나게 됐음을 설명해 주었다.


 그들의 개별 업무가 많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전에 자전거를 수리했고, 지금도 자전거를 수리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치 방식과 자신의 일의 통제권을 쥐게 됨으로써 그간 그들을 기분 나쁘게 했던 충족되지 않은 심리적 욕구를 처리했다. Josh는 스스로에게서 본 우울증은 아주 자주, 그의 표현을 빌면, "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반응이지, 어떤 생물학적 붕괴가 아닙니다." 그는 사업을 구식의 굴욕적이고 우울한 방식으로 운영할 필요가 없다며,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사업장에 대한 통제권을 쥐게 하는 문화를 통해 우리는 함께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울증과 불안장애의 9 가지 원인 각각에 대해, 놀랄만한 사실들과 논쟁들을 계속해서 발견해 왔고 이는 내가 이전과 다르게 생각하도록 이끌었다. 시카고 대학의 John Cacioppo 교수는 극심하게 외롭다는 것은 마치 낯선 사람으로부터 안면에 가격을 당하는 정도의 스트레스이며, 우울증의 위험이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샌디에고의 Vincent Felitti 박사는 어릴 적 심각한 외상(트라우마)를 겪은 경우에 성인이 되어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3,100 %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밴쿠버의 Michael Chandler 교수는 커뮤니티에 영향을 미치는 커다란 결정들을 통제 할 수 없다고 느끼면 자살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새로운 증거는 절망의 위기에 대해 지금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해결책을 찾도록 촉구한다. 특히 한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21 세기 초, 남아프리카의 정신과 의사 Derek Summerfeld는 항우울제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캄보디아로 갔다. 그는 의사들을 만나 이 개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참을성 있게 들은 뒤, 그들은 이미 효과를 발휘하는 항우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항우울제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종의 약초 치료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가정했다.


 그는 설명을 원했고, 그들은 왼쪽 다리를 지뢰로 인해 상실한 쌀 농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농부는 의족을 맞추게 되었지만,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불안해 하고 절망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의사들은 그와 마주 앉아 그가 가진 문제점들을 살펴갔다. 농부는 의족을 착용하게 되었지만 논에서 일하는 기존 직업이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며 육체적 고통에 빠지게 한 것이었다. 이는 농부로 하여금 그냥 삶을 놓아 버리고 싶게끔 몰아갔다. 묘안이 있었다. 만약 농부가 낙농가가 된다면 다르게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농부에게 소를 마련해 주었다. 그 후 몇 개월, 수 년에 걸쳐 농부의 삶은 바뀌었다. 깊은 우울증은 사라졌다. "보시오, Summerfeld 의사." 캄보디아의 의사들은, 바로 그 소가 "항우울제 "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항우울제를 찾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뇌 화학물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맨 처음 우울증을 야기했던 문제를 푸는 방법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해결책들 중 일부는 사생활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시민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해야만 가능한 보다 큰 사회적 변화를 요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우울증과 불안 장애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변화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이는 급진적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내가 발견한 것은 독창적인 입장이다. 2017년 세계 보건의 날 공식 성명서에서 UN(the United Nations)은 최선의 증거들을 검토하고 "우울증에 대한 지배적인 생물의학적 서사"는 "연구 결과의 편파적이고 선택적인 사용"에 근거한다고 결론 지었다. 우리는 "화학적 불균형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힘의 불균형"에 더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게 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 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힘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십대의 나 자신에게, 향후 수 년 동안 나를 잘못된 방향으로 보내 버린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바로 그 날로 돌아가 이야기하고 싶었다. "네가 느끼는 이 고통은 병리학적인 것이 아니야. 미친 것도 아니고. 그건 그저 자연스러운 심리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신호야. 너 자신에 대한, 그리고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 사회에 대한 슬픔의 한 형태인 거지. 그게 얼마나 너를 단절시키는지 알고 있어. 하지만 그 신호에 귀 기울여야만 해. 우리 모두는 이러한 신호를 보내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뭐가 잘못되가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는 거야. 네가 더 깊고, 울림이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 거야. 아직 그렇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어."


 우울하고 불안하다고 해서, 당신이 오작동하는 기계인 것은 아니다.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있는 인간이다. 우리 모두가 이 전염병과도 같은 절망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하고, 진정한 방법은 다함께,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바로 그 욕구, 즉 긴밀하게 연결된 느낌을 충족시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반론] Johann Hari가 안다고 생각하는 우울증이 실은 다 틀렸다면?

/ 신경과학과 의사 Dean Burnett (2018년 1월 8일)


The Observer(옵저버)는 우리가 우울증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에 도전하는 Johann Hari의 새로운 책에서 발췌한 내용을 게재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논쟁은 필적할 만한 수준인가?


 개인적으로 Johann Hari를 알지 못한다. 그간 살며 마주친 적도 없고, 내가 아는 한 그가 내게 뭔가 잘못을 한 것도 없으며, 그 혹은 그의 작업에 대해 날 세울 도끼도 없다. 그러니, 공정한 관점에서, 정신 건강과 그것이 어떻게 치료 되어야 하고, 인지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에는 항상 위험이 따름을 말하려 한다. 이는 상당히 중대하고 종종 거대한 인구가 직면하고 있는 쇠약한 문제인데다, 불쾌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낙인까지 달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흐름이 아마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조짐들이 보였다. 물론 아직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만약 책에서 발췌한 내용들을 논란이 일만한 "당신이 아는 우울증이 실은 다 틀렸다면?"이라는 제목을 달고 주류 미디어에 눈에 띄는 기사로 발행하려 한다면, 주장을 뒷받침하는 완벽한 자격과 표준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럼 방 안의 코끼리를 짚어보도록 하자. Johann Hari의 평판은 완벽하지 못하다. 그는 표절 논란을 비롯, 이와 복합적으로 비평가들을 향한 품위 없는 행동 이후 수년간 주목 받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인정하듯이, 그는 그 이후로 사건 전반에 걸쳐 자책감과 뉘우침을 보여 주었지만, 대충 온라인만 훑어봐도 그가 보편적인 용서를 받기까진 갈 길이 먼 것을 알 수 있다. 논리적으로는, 정신 건강처럼 매우 예민한 주제에 대해 주목을 받고, 논란의 여지가 있고, 포괄적인 주장을 펼치는 시도를 누군가 해야 한다면, 무엇보다 거짓 주장으로 명성을 얻은 사람은 무조건 후순위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그 일이 일어났다.

 

 어쨌든 모든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 Hari가 100% 좋은 의도로 기사를 작성했다고 가정 해보자. 그의 논쟁과 주장은 합리적인가?


 Hari는 그를 수비할 몇 가지 유효한 포인트를 만들었다. 우울증이 순수하게 세로토닌 수치가 낮아 나타나는 결과라는 주장에 도전할 수 있고 도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항우울제 사용은 모든 사람에게 효과적이지는 않다. 복용하는 경우에도 해결될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가 종종 돌아 오거나 결국에는 악화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삶의 외적 요인은, 주요한 부분이 아닐지라도, 우울증 진단에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Hari의 저작이 수많은 사실들을 밝혀 냈다고 제안을 펼치지만, 그가 "밝혀 냈다는" 거의 대부분은 이미 잘 알려진 것들이다.


 바로 이 부분들이다 :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이 뇌의 자연적 화학 불균형의 결과라고 환자들에게 이야기하게끔 장려되어 왔다. 이는 낮은 세로토닌 수치, 혹은 다른 어떤 화학 물질이 자연적으로 결핍되어 발생한다. 그러니 당신의 삶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고장난 뇌가 그 원인인 것이다.

 몇 가지 중요하다고 널리 여겨지는 몇 가지 요소들이 이미 있기 때문에, 우울증이 단 하나의 원인만이 받아 들여진다는 이 아이디어는 다소 이상하게 여겨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전문 용어로 쓰여져 잘 알려지지 않은 의학적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다. 실은 우울증에 대한 위키피디아 페이지의 설명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 안의 7가지 특정 요소들이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이 힘과 결합하여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두 가지 실질적 생물학적 요인(유전자와 같은)도 있다.

 개인적으로,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중요성이 광범위하게 받아 들여지고 있다고 늘 생각해 왔으며, 수십 년간 그렇게 지속되어 왔다. 정신의학 / 약학 / 심리학에서는 이것이 종종 Biopsychosocial(단지 생물학적 측면만이 아닌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측면을 포괄한 접근법) 모델로 알려져 있으며, 어느 정도 전문가라면 누구나 이를 잘 알고 있다. Hari가 지금 밝혔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70년대에 이미 논란이 되었으며, 적어도 지난 20년간 표준 교습의 일부가 되었다.


 현재, 우울한 사람들에게는 단 하나의 옵션만이 있는 메뉴가 제공되고 있다.

 우울증에 대한 여러 가지 가능한 치료법이 웹사이트에 소개되어 있는 NHS(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는 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Ben Goldacre 의사는 10년 전에 SSRI와 세로토닌 모델과 관련하여 항우울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Hari는 많은 요소들과 항우울제의 변수를 아주 축소하여, Guardian 지에 불과 얼마 전에 소개했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한 요소도 있다 :


 그러니 지금은, 만약 당신의 아기가 오전 10시에 사망하면, 의사는 당신을 오전 10시 01분에 정신 질환으로 진단하고, 그 즉시 약물 처방을 시작할 수 있단 소리다.


 이는 '비통함의 예외'가 없이 우울한 증상을 배제하는 데에 슬픈 반응이 사용되는 현대 사회에 대한 공격으로서 의미가 있지만,  기껏해야, 최악의 경우 서술을 뒷받침 하기 위해 그럴듯 하게 꾸며낸 엄청난 과장에 불과하다. 슬픔은 복잡한 것이고 의학계는 여전히 그것을 다루는 방법에 동의하지 않지만, 단 1분 동안 보여진 증상들로 정신 건강 문제를 진단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우스꽝스럽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어떤 진단을 받기 위해 몇 주 동안의 증상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을 시 의료 전문가로서의 판단력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아마 이러한 비판들(그리고 더 많은 것들이 있지만 딱 이만큼 공간을 가졌으니)이 불공평 할 수도 있겠다. 나는 훈련된 신경 과학자로 정신 의학 교육에 수 년 간 종사해 왔다. 내가 아는 것과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광범위 하게 다르다. 그리고 Hari의 주장을 다룬 기사는 거의 확실하게 후자의 사람들을 겨냥한다. 이 문제에 대한 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설명이라면 전체적인 사실들을 논할 수가 있고, 또한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의사소통 할 때 더 유용하다.


 그러나 나는 반대 주장을 펼치려 한다. 만약 우울증에 대한 전체적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을 목표로 삼는다면, 쉽게 풀어가기 위해 타협하지 않고 증거에 따라 올바르게 풀어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Hari의 저작은 반복적으로 잘 알려진(의료계 외부 사람들에게조차도) 개념과 아이디어를 마치 스스로의 노력으로 발견해 낸 부가적인 아이디어인 것마냥 제시하고 있다.


 보다 설명에 가까운 대안이 있을 수 있다.  항우울제에 대한 의존은 아마도 의료 전문가에 드는 시간, 돈 그리고 작업량의 상당한 압박감 때문일 수 있으며, 대안적인 치료 방법은 주당 몇 개의 캡슐을 삼키기 보다 오랜 시간 훈련된 전문가와 일대일로 상호작용 해야 하기 때문일까? 대다수의 의료계는 최근 다뤄야 했던 모든 비판들을 감안할 때 그 이상의 비판이 필요없이 대처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아니, Hari는 의학적 / 정신의학적 / 과학적 제도를 제약 산업의 노예 신세마냥, 기존의 확고부동한 행태에 도전할 새로운 접근법과 아이디어를 고려하지 않으려고 하는, 무슨 그림자 같은 단일 조직으로 묘사하고 있다.


 물론 그 중에서도 그의 위치를 지지 하는 경우를 제하고 말이다. 정신의학계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Hari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받는 Irving Kirsch 교수와 같이.


 Hari가 내가 우려하는 것 외에도 다른 많은 것들을 전체 책에서 다루고 있을 수 있다. 아직 전체를 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발췌된 내용을 다룬 기사를 읽은 수천명의 사람들도 책 전체는 읽지 못했기 때문에, 독립적인 기사만으로 언급 되고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나는 우울증에 대한 Hari의 개인적인 경험에 강하게 반대하려고는 꿈도 꾸지 않는다. 나는 그가 기분 장애를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은 그저 추측할 수밖에 없는 불편함과 고통을 겪어왔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우울증을 다르게 경험하고 다루게 된다. Hari가 우울증에서 삶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바로 그 주장은 실제로는 모두가 서로 다른 사건과 결과를 경험하고, 머릿속에서 각자만의 특수한 방식으로 우울증이 발현된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각각 개별적으로 다르게 다뤄져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항우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의 선물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효과가 없기도(심지어는 악화시키기도) 하다.


 두뇌는 당신의 것이고, 그 어떤 것도 비슷하지 않다. 대단한 열의를 가지고 이목을 끄는 방법으로 항우울제를 비난함으로써, Hari는 모든 정당한 이유로 그것들을 받아 들여야 하는 사람들에게 부과된 오명을 증가시키는 위험을 감수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은 아니다.


 Hari가 우울증과 같은 정신 건강 문제를 다루려고 할 때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별로 좋은 방법처럼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독창적인 전문가라 스스로를 주장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선별되어 의심스러운 증거들과 가장 최소한으로 과장되어야 할 주장들로 논지를 뒷받침 할 수 있을까? 수백만에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주제는 이것보다 더 철저하고, 사려 깊고,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흠, 내가 아는 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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