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 ①
나는 기본적으로 제주에 산다. 한 달에 이십여 일쯤은 제주집 거실 책상이나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쓰고 나머지 열흘쯤은 육지에서 일한다. 주로 미팅이나 인터뷰, 사람 만나는 일들은 그때 몰아 한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을 때는 실감 나지 않던 ‘제주도민’이란 나의 또 다른 정체성은 비행기를 타고 섬 밖으로 나갔을 때 도리어 분명해진다.
“우와, 제주 살아요? 너무 좋겠다!”
열에 아홉, 인사를 주고받고 난 후의 반응이다. 네네, 제주 좋죠, 좋은 곳이에요. 이윽고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대개 비슷하다. 공기가 깨끗하다, 자연이 아름답다 등등. 파도 소리에 잠 깨고 새 소리를 들으며 글 쓰는 나를 상상하는 것 같아 가끔 어쩔 줄 모를 때가 있다. 정작 나는 네모난 아파트에서 네모난 창으로 건너편 네모난 건물을 보며 이 글도 쓰고 있는데.
물론, 조금만 나가면 파도 소리, 새 소리 들을 수 있다. 지난여름부터는 버스를 타고 제주를 한 바퀴 돌아보는 여행 가이드북을 쓰고 있어 이리저리 돌아다닐 일이 많다 보니 새삼 ‘내가 정말 예쁜 곳에 살고 있구나’ 수없이 깨닫기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온 섬이 공사 중이로구나. 파도 소리, 새 소리 만큼이나 화물차 소리, 포크레인 소리도 흔했다.
십여 년 전쯤인가 명동 신세계 백화점 본관이 리노베이션 공사에 들어갔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커다란 공사장이 세워진 것이다. 그런데 대학생이었던 나는 그 공사장이 좋았다. 약속이 있으면 그곳을 지나는 버스를 타고 둘러가기도 했다. 당시 건물 가림막으로 설치된 르네 마그리트의 <골콘드 Golconde, 겨울비> 때문이었다. 검은 양복에 중절모를 쓴 신사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그 그림이 공사 중인 건물을 통째로 감싸고 있었다. 정확한 전후 관계는 모르겠지만 그즈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르네 마그리트 전에도 쫓아갔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그의 몽환적인 그림들에 꽤나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백화점이 새로 문 연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는 그곳에서 겨울비를 볼 수 없단 사실에 아쉬워했을 정도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거다. 깨고 부수는 공사의 시간이 내 머릿속에서 감상적인 시간으로 둔갑해 있으니 말이다.
내게 ‘제주에 살아서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위협적인 덩치의 차들이 오가고 시끄러운 기계음이 온종일 울려 퍼지는 제주도를 아마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자연과 공사는 함께 떠올리기 힘든 단어니까. 하지만, 지금 제주는 가는 곳마다 공사 중이다. 파도가 철썩이는 해안도로, 새가 지저귀는 숲길을 막론하고, 하다못해 오름을 깎아서 공항을 짓네, 길을 내네 하는 얘기까지 들린다.
‘천혜’란 말은 하늘이 준 은혜라는 뜻인데, 천혜의 자연이라면서 하늘에게 허락도 안 받고 저렇게 몽땅 갈아엎나 싶어 어떨 때는 참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개발이라면 작은 집 하나를 짓더라도 제주라는 상징적인 이름에 걸맞게 그 이름을 좇아 온 사람들을 배려하면 좋겠다. 철골을 흉악하게 드러낸 채, 혹은 접근 금지를 뜻하는 ‘X’자가 시뻘겋게 쓰인 채 두는 것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굳이 공공미술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갖다 붙일 생각은 없다. 그저 제주를 사랑하는 그 마음들을 좀 더 ‘세심히’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제주 살아요? 너무 좋겠다!” 이 말을 오래오래 들으며 이 섬에 살고 싶다. 제주 사는 즐거움이란 게 달리 있을까. “난개발로 환경 훼손이 너무 심각하더라고요.”하고 끌끌 혀 차는 소리보다 “제주는 어쩜 공사장마저 예쁘던걸요.” 뭐, 이런 얘기 들으며 어깨 한 번 펴는 거지. 아, 엄연히 명분 있는 개발이란 조건 아래 말이다.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주도의회에 연재 중인 칼럼을 묶은 매거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