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 ④
동생이 연차를 내고 놀러 왔다. 마침 제주 여행책의 추가 취재가 필요한 터라, 동생에게 여행(을 가장한 취재)을 제안했고 그녀는 미끼를 덥석 물었다. 흐흐. 방부터 잡아야지. 버스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이므로, 정류장에서 가깝고 가격이 적당하며 그럼에도 코지한 곳으로 일찌감치 찍어둔 곳이 있었다. 카드번호 열여섯 자리만 입력하면 되니 돈 쓰기 참 쉬운 세상이라 구시렁거리며 결제 버튼을 눌렀다.
드디어 디데이. 말리다 못해 태울 기세로 쪼아대는 햇볕에, 일정 절반만 소화하고는 일찌감치 숙소로 향했다. 모든 여행에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호텔 방 문을 열기 직전이 아닐까. 반짝반짝한 프론트에서 체크인을 하고 카펫 깔린 복도를 걸어 마침내 문고리를 돌릴 때의 설렘이란! 단순히 잠만 자는 일정일지라도 호텔 입장 때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흥분이 있다. 하루짜리지만 내 집 마련에 버금가는 쾌감이다.
이윽고 문을 밀고 들어섰다. 혼자 세 번은 구를 수 있을 만큼 넓은 침대, 잘 다려진 목욕 가운, 족히 내 방 크기는 될 만한 욕실과 향이 은은한 히노끼 욕조…같은 건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호텔스러운 것이라곤 브로슈어에도 강조돼 있는 유명 회사의 매트리스와 바스락거리는 백색의 거위 털 침구류 정도가 다였다. 뒹굴뒹굴 이불에 마구 주름 잡으며 채널을 돌려 볼 텔레비전이 없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애석했다.
대신 호텔 로비에 언제든 객실로 가져와 읽을 수 있는 책이 진열돼 있었고, 맛있다고 소문나 서울까지 진출했다는 카페가 있었다. 마스다 미리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박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최상희의 <사계절 전라도>를 빌려다가 길 건너 편의점에서 4캔에 만 원 주고 산 맥주를 벗 삼아 해 질 녘까지 방에서 읽었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즈음엔 다시 책들을 주섬주섬 챙겨 카페 테이블에 부려놓고 읽었다.
결혼은 이미 했고, 눈물조차 바짝 마를 만큼 덥고, 전라도 여행은 언감생심 제주도 여행(을 가장한 취재)을 더 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모처럼 흠뻑 젖어 들어 독서를 했다. ‘흠뻑 젖어 들었다’는 말은 자유롭다는 뜻이었다. 일 때문에(암요! 그렇고말고요!) 온 거였는데, 분명 나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 날 오전 11시면 신데렐라의 호박마차처럼 사라질 내 집에서 충만함과 홀가분함을 함께 누리고 있었다. 텔레비전이 없었던 건 그러니까 다행한 일이었음을.
그날의 경험을 잘 말해주는 단어가 있으니 ‘호캉스’다. 호텔과 바캉스의 합성어. 솔직히 말해서 처음엔 왜 뜨는지 몰랐다. 호캉스 할 거면 집캉스 하지, 뭣 하러 돈 주고 시간 죽이냐, 한 치 앞도 모를 소리를 했다, 내가. 그런데, 호캉스의 매력에 제대로 빠졌다. 알고 보니 프랑스어 바캉스(vacance)의 어원인 라틴어 ‘바 카티오’는 ‘텅 비어 있는 것,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죽었다 깨나도 ‘집캉스’란 성사될 수 없는 것이다.
라이프 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여행을 하는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여전히 해외여행을 고집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마음 편한 국내 여행을 선호하는 친구도 있다. 휴가가 시작되면 먹을 것을 냉장고에 꽉 채워두고 밀린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사람과 어디든 발길 닿는 대로 다니며 일상 모습을 그림에 담는 이른바 어반스케치를 즐기는 사람에 대해서도 나는 알고 있다. 라이프 스타일만큼 바캉스 스타일이 다양해지는 건 어쩐지 반갑다.
호캉스에 이어 최근엔 몰캉스가 유행이란다. 쇼핑몰과 바캉스의 합성어로, 한식 중식 양식 일식을 호령하는 식당들이 즐비하고 어린이 놀이시설과 서점 등이 들어선 복합 쇼핑몰에서 바캉스를 하는 거라는데 글쎄, 눈요깃거리 가득한 그곳에서 ‘바 카티오’가 될 수 있으려나? 본디 해봐야 깨우치는 성정이건만, 제주엔 몰이 없으니…쩝!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주도의회에 연재 중인 칼럼을 묶은 매거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