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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민정 Jun 03. 2019

효리네 민박에 나온 그 오름 말이야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 ③

원고를 쓰다 머리 좀 식혀볼 겸 텔레비전을 켰다. 아무 생각 없이 좀 웃고 싶어서 예능 프로그램을 찾았는데 리모컨을 돌리는 족족 제주도가 나왔다. <효리네 민박2(JTBC)>에선 나도 종종 가는 시내 한 마트에서 소녀시대 윤아와 박보검이 장을 보고 있었고, <숲속의 작은 집(JTBC)>에서는 새소리를 들으며 박신혜와 소지섭이 밥 해 먹는 장면이 전파를 타는 중이었다.      


이른바 여행 예능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장르들이 편성표마다 채워진 것은 몇 년 된 일이다. 연예인의 사생활과 여행지의 로망, 시청자들의 소구를 정확히 파악한 결과는 시청률로 돌아왔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게 뭐가 있겠나, 방송가에서는 너도나도 포맷을 확대 재생산하며 제작에 들어갔다. 새삼스러울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유독 카메라가 제주도를 비추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왜일까? 나만 알고 싶은 제주도가 온 천하에 까발려져서? (그러면 여행책을 쓸 수가 없지!) 아니면, 이 아름다운 섬에서 노는 사람, 일하는 사람이 따로따로인 듯 보여서? (관광지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얼마간 알게 됐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 테다). 그럼 대체 무엇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걸까?         


제주도가 소모되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유명 연예인이 다녀갔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 인증사진을 찍고, 그러는 사이 반짝이던 풍경들이 낡아가는 게 못내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가수 이효리가 뮤직비디오를 찍어 ‘이효리 오름’으로 알려진 금오름이 주차난과 무질서한 관광객들로 옛 모습을 잃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아! 비단 여기뿐일까?     


고향에 돌아와 소박하게 살고 싶어 작은 카페를 차린 사장은 맞은편 식당이 방송을 타는 바람에 거꾸로 피해를 입었다. 식당 웨이팅 손님들이 카페 앞을 무단 점거하는 일이 자주 있었던 것이다. 기어이 실내까지 잠식당했을 때(겨우 테이블이 세 개 있는 카페였다), 그는 결단을 내렸다. 더는 웃지 않기로. 다시는 친절을 베풀지 않기로. 아! 비단 이 사람뿐일까?     


방송이 사람들의 여행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 커지고 있다. 세종대학교 관광산업연구소와 여행리서치 컨슈머인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어떤 채널을 이용하겠냐는 질문에 전년 대비 유일하게 증가한 매체가 ‘TV 방송’이었다. 블로그나 카페, SNS, 지인, 여행지 공식사이트를 참고하겠다는 의견을 일제히 줄었다. 방송의 영향력이 커졌고, 커지고 있고, 커질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이 사실은 과연 제주에 빛일까, 그림자일까? 이쯤에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확실히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제주도가 많이 등장하면서부터 제주는 훨씬 더 여행하기 힘들어졌다. 한적했던 금오름이 이제는 걷기 대회를 방불케 하는 행렬 속 하나가 되어 올라야 하는 오름이 됐고, 커피만큼 주인의 입담이 맛있기로 유명한 카페에서 더 이상 사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다.     


그러므로 나는 며칠 전 관광지순환버스에서 만난 한 해설가의 말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제주도에 살지만, 매일 제주도에 반해요. 오래도록 지켜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무조건 알려지는 것보다 바르게 알려지는 게 중요하죠.”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주도의회에 연재 중인 칼럼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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