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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민정 Jun 26. 2019

달려라, 노란버스!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 ⑦

마감이 닥쳐서야 노트북을 들고 부랴부랴 카페에 왔습니다. 마음 급한 와중에도 메뉴를 고르는데 하세월을 보냈더랬어요. 머리가 팽팽 돌아가도록 카페인 음료가 좋겠지? 아니야 조급함을 가라앉히려면 허브티가 낫겠어! 아니야 아니야 끼니 대용이니까 아보카도 주스를 먹을까 봐.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홀로 심각했을까요? 결국 아메리카노를 시켰으면서 말입니다.      


흔히 취향의 시대라고들 합니다. 우르르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선호도가 존중받는 시대라고요. 커피에 관한 한 저의 취향은 모호합니다. 일견 결정 장애를 가진 사람처럼 메뉴판 앞에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아메리카노를 고집하는 남편의 단순한 취향이 때때로 부러울 정도입니다. 


그런 제가 심플해지는 카테고리가 있으니 바로 ‘여행’입니다. 여행만큼은 뚜렷한 취향이 있습니다. 패키지보다는 자유여행 쪽이에요. 최근 마스다 미리의 <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를 읽고(작가가 40대에 나 홀로 패키지 투어에 참가한 기록을 정리한 책입니다) 패키지 투어의 매력을 새삼 헤아려보기도 했으나 아직은 여전히 자유여행주의입니다.     


책에는 2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화장실이 붐빌 경우를 대비해 30분은 화장실을 위해 잡아두라고 쓰여 있는데 아무래도 저는 여행의 3/4을 볼 일에 투자할 만큼 유유한 사람이 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 딱 한 가지 패키지 투어에 탐나는 점이 있긴 합니다.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온다는 사실요. 낯선 곳을 여행하는 자의 불안을 가만히 잠재워줄 만한 요소지요.


바로 그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오는 버스’가 제주에도 있습니다. 동부의 오름들과 서부의 미술관 박물관들을 가로 질러 달리는 노란 버스, 일명 ‘관광지순환버스’입니다. 30분 간격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온종일 내렸다 탔다 하며 제주섬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는데, 그 비용이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3천 원이니 (뻔한 클리셰지만) ‘3천 원의 행복’이 따로 없습니다.     


왜, 제주에 360여 개의 오름이 있다고 하잖아요. OO악, OO이, OO봉, OO오름… 제각각인 오름 이름의 비밀, 궁금한 적 없으셨나요? 산에 있으면 ‘악’, 바다 가까운 건 ‘봉’, 나머진 ‘이’나 ‘오름’을 쓴다고 하는데, 뜻밖에 저는 이걸 노오란 버스 안에서 알게 됐습니다. 관광지순환버스에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란 표정을 한 여행도우미들이 타고 있는 덕분입니다.     


말하자면 가성비 좋은 ‘반(半) 패키지 투어’인 셈이지요. 교통수단이 해결되고 쏠쏠한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는 동시에 내가 원하는 장소에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머물 수 있으니까요. 날이 좋아서, 머리가 복잡해서,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저는 이 버스를 참 뻔질나게 탑니다…만 탈 때마다 승객이 적어 융숭한 VIP 대접을 받으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최근 부산의 이색풍경으로 꼽히는 산복도로를 달리던 만디버스가 1년 넘게 사업성 이유로 운행을 중단하면서 주민과 관광객의 발이 묶였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런칭 때 타볼 기회가 있어 애정을 갖고 있던 버스였는데 안타깝기 그지없었어요. 만디버스와 노란버스를 연결 짓는 게 다소 비약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기사를 읽으면서 이 글이 시작됐으니 그냥 적기로 할게요.     


부디 제주의 노오란 버스는 오래오래 달릴 수 있길 바랍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찬란한 어느 날 ‘3천 원의 행복’을 누려 보시기를요. 아이참, 좋은데~ 진짜 좋은데~ 말로 표현할 수가 없네!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주도의회에 연재 중인 칼럼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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