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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삼 Nov 17. 2017

옛 연애의 단상, 그리고 새 출발

예전 같지가 않아

새로운 연애를 앞둘 때면 늘 옛 연애의 단상들이 떠오른다. 나는 내가 꽤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신기하게도 이 순간만큼은 좋은 기억들만 떠올라 웃음이 배실배실 새어 나온다. 그랬던 우리가 왜 헤어졌을까, 싶을 정도로.


나의 옛 애인들은 참 가지각색이었다. 친구들도 너의 스타일은 가늠하기가 힘들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하여 찾아낸 공통점은 그들이 몹시 차분하고 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점과 나라는 여자를 만났다는 점 두 가지 정도였다.

그중 한 남자친구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하루는 내가 너무 막히는 차 안에서 종알종알 쉴 새 없이 떠들어대니 그가 나를 차분히 불렀다.

삼삼아...
-응?
우리, 목적지까지 아무 말 안 하기 게임해볼까? 이기는 사람이 밥 사는 거야.


그 순간엔 정말 어찌나 서럽고 서운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는 참 웃긴 사람이었던 것 같다. 서른의 여자에게 '아무 말 안 하기 게임'이라는 제안을 했다는 것도, 밥값은 또 내기 싫어서 꾹 참았다 목적지에 도달하자마자 나 시끄럽다고 한 거야? 라며 따지던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혼자 웃었다. 그런거냐고, 내가 귀찮아져버린거냐고 따지는 내게 그는 웃으며 수고했다고 말하며 맛있는 밥을 먹여주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오는데, 그날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모른다. 언제나 내가 하는 거라면 다 좋다고 하던 그가 변한 것 같다는 불안감도 그즈음 찾아왔던 것 같고. 


지금 나는 새로운 연애를 앞두고 있다. 

상대는 내가 좋다고 했다. 서로를 아직 존대하며 호칭 정리도 되지 않은 사이에 그는 취중에 전화를 걸어왔다. 

"니가 좋아요, 난."

설렘도 잠시, 혼란이 찾아왔다. 예전의 연애들과는 마음가짐이 확연히 다르다. 나는 어느덧 30대 중반을 코앞에 두고 있고, 이전과는 상황이 여러모로 달라졌다. 결혼 후에도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나의 커리어를 볼 때 내게는 아직 해야 할 과제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기 때문.

이전의 나라면, 나도 좋다고 신나서 대답했겠지만, 지금의 난 자꾸만 주저한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결정은 점점 어려워져만 간다. 그래서 예전에 사람들이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가는 게 제일 현명하고 쉬운 방법이라고 했던 거구나, 새삼 읊조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지금의 나와 같은 마음인지, 예전의 나와 같은 마음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두렵다. 내겐 허비할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 무엇 하나 여유가 없는 지금, 확신이 없는 사람과의 시작은 무모하다는 걸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 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나요, 같은 진부하고 섹시하지 않은 질문이 또 있을까. 어차피 내게 돌아올 답변도 정해져 있을 텐데.


나이 들어 하는 사랑엔 설렘보다 평온과 안정감의 포션이 훨씬 크다고 늦은 결혼을 한 언니들이 모두 입 모아 말해주었었다. 나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져도 나는 가슴 뛰는 사랑이 하고 싶다고. 왜냐하면, 그땐 그게 가장 좋은 건 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금은 그 말뜻을 알 것도 같다. 그저 편안함만이 존재한다는 말은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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