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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삼 Dec 03. 2017

말말말,

그 폭력성에 관하여

근래 나타난 현상 중 하나가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자녀계획을 묻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다. 좀처럼 생각이나 행동양식을 바꾸기 어려운 어르신들조차 젊은 사람들의 불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많이 들어온 탓에 그 질문만은 터부시 하고 있다. 예의에 어긋나며 실례라는 것을 이제 그들도 이해했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며, 상대방에겐 상처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결혼도 노력여하와 무관한 안건 중 하나다. 열심히 소개팅을 하고 이러저러한 구차하리만큼의 노력을 쏟아도 단 하나뿐인 그 연을 찾는 일이 쉬울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에게 그것은 아직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인지, 결혼 안하냐는 그 실례를 그렇게들 무릅쓴다.

그러나 비단 이것이 어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혼초 삶의 방식을 조율해가느라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결혼 초년생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내 얼굴만 보면 너는 결혼하지마라 타령을 했다. 몇년간 내가 얼마나 노력과 실망을 반복해온지 아는 지인들에게 여간 실망스러운 순간이 아니었다. 자신들에게 아이를 안낳느냐는 질문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역설하던 그 모습은 온데 간데가 없었다. 그중 그나마 양반은 ‘넌 결혼 늦게 해’족. 그들에겐 그나마 할 말이라도 찾을 수가 있다. “이미 빠르지 않은 나이라서 말야...” 그러면 그들은 아직은 괜찮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자기는 결혼한지 3년차가 됐다며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그들이 과연 이 폭력성에 관하여 모를까? 그렇지도 , 아닌 것도 아니다. 나는 몇 번 그들에게 설명을 시도해봤다. 아이 안낳느냐는 질문과 다를 바 없는 말이라고. 그러면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우뚱 하며, 왜? 라고 몹시 의아해한다. 자신들이 결혼을 하기 위해 얼만큼 노력했었나, 얼만큼 진지했는가는 이미 잊은 듯 그들은 해보니 별 게 아니라고들 말한다. 아이도 낳고 나면 힘들고 좋은 게 있지만 아이 못 낳는 부부에게 아이 낳지 말란 소리 안하는 것과 결혼하지 못하는 노처녀에게 결혼하지 말라는 말이 어떤 의미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내 쪽에서는 더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왜? 라고 묻는 그 천진한 얼굴들과 인생 즐기는 노처녀 코스프레 과제까지 수행하며 대적해야 한다.


삶이 왜 이렇게 버거울까. 이해받는 건 포기 해도 또 다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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