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엔 나이가 없...나?
얼마전 한 결혼식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보는 동창생을 만났다. 학창시절부터 나는 그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십년도 더 된 일이니 그도 변했고 나도 변했으리라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는 내게 거의 경이로운 수준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말 예뻐졌다"고 말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그가 그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니 내가 예전엔 그 정도였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말 섞는 것도 이미 피곤해져버린 찰나 그가 다시 다가와 삼삼이 정말 예뻐졌구나, 라고 말해 나는 그럼 그러지 말고 소개팅이나 좀 시켜주라고 했다. 그러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정말이냐고 물었다.
"다다익선" 이라고 짧게 답을 하고 나는 고개를 돌려 대화를 나누던 친구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며칠 후, 그가 카톡 친구 목록에 떴다. 다른 친구에게 그가 나의 번호를 물어 알아낸 모양이었다. 그리곤 갑자기 인스타 친구에도 그가 나를 팔로잉하기 시작했다고 알림이 떴다. 뭐 굳이 이렇게 네트워킹을 또 해야 하는건가 싶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참고로 그는 기혼자로 딸아이 하나를 두었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 그가 카톡이 왔다. 지난번에 얘기한 소개팅을 해주려 하는데, 혹시 꼭 이건 있어야 한다 하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8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면 좋겠어."
그가 꽤 구체적이네, 라며 살짝 비꼬는 듯한 말을 내뱉더니 마침 자신이 염두에 둔 형이 80년생이라고 덧붙였다. 만나보니 나도 나이가 적지 않아 나이 차가 크게 지는 편이 편친 않았다. 남자들이 스물아홉, 서른 즈음의 여자를 부담스러워하는 만큼, 여자들에게 그런 나이는 남자 서른아홉 마흔 즈음인 것 같다. 더구나 이제 곧 있으면 또 한 살을 먹질 않나.
어쨌거나 친구는 다시 형과 확인을 해본 후 다시 연락을 준다더니 며칠 후 형이 하겠다고 했다며 전화번호를 넘기겠다고 했다. 친구에 대한 호감이 없었던 만큼 소개팅에 대한 기대도 크게 없었다.
바로 다음날, 그 형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보통 같으면 전적으로 남자의 편의에 날짜를 맞추겠다고 답하겠지만, 이러고 저러고 말이 오가는 것도 귀찮아 그냥 당장 이번주 일요일과 다음주 중 고르라고 그에게 먼저 제시하자 그도 이번 일요일에 보자고 하여 이틀 앞두고 약속을 잡았다.
일요일, 그를 만나던 날 그는 내가 대학시절 주말이면 죽 치고 앉아있던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보자고 했다. 양해를 구하고 10분쯤 늦었는데, 그는 약속 시간 20분 전에 이미 도착해있었다. 허겁지겁 들어가니 그는 느긋하게 앉아있었다. 생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3시간쯤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는 꽤 나와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 같았다. 조금은 시니컬하고 그것이 해학인 줄 아는. 그에 대해 내가 들은 바는 그가 80년생이라는 점과 공무원이라는 점 정도였는데, 의외로 그는 나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집안 형편이 넉넉치는 않다고 꽤 구체적으로 털어놓았다. 조금 당황하긴 했으나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나는 눈치가 없으므로)
첫만남 이후로 남자는 내게 꽤 적극적이었다. 지방에 거주하고 있어 주말에 서울에 올라와 쉴 수 있으나 다음 주는 회사 등산 행사로 인해 상경이 어려워 그 다음주에 만나자는 약속을 정했다. 연애를 할 때면 하루가 멀다 하고 봐온 금사빠[옛날 용어니 요즘 친구들은 모를지도 모르겟지만, 내가 대학교땐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이르는 줄임말이었다] 들과의 연애에 익숙한 나는 벌써 '롱디는 안될 것 같아'라는 섣부른 걱정을 혼자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 그는 내게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을 해왔다.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을 하고 있다고 카톡을 보냈고, 그렇게 우리는 하루종일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사나흘쯤 지났을까, 늦은 밤 그는 내게 전화를 해도 괜찮냐며 허락을 받은 후 전화를 걸어왔다. 이런 저런 대화를 두시간쯤 나누고 통화를 마쳤다. 마치 연애를 시작한 연인처럼.
그리고 다음날 그는 내게 만취 상태로 전화를 걸어왔다.
"여보세요?"
- 삼삼씨,,,
"네"
- 저는요, 삼삼씨가 맘에 쏙 들어요.
다짜고짜 야밤에 받는 고백 아닌 고백. 너무 깜짝 놀라 헛웃음이 났다.
"쏙?!"(이라고???)
- 네, 쏙.
그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취기에 뱉은 말이지만 너무 진지해보여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우선 "감사"하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물었다.
- 저 안보고 싶어요? 네?
"아,,, 곧 보기로 했잖아요."
- 아니 그거 말고. 보고 싶지 않냐고요.
"아......."
- 전 보고싶습니다.
그렇게 좀 얼떨결에 전화를 끊은 이후로도 그는 이따금씩 그렇게 호감을 표시해왔다. 금사빠 둘째가라면 섭한 나지만, 나이가 서른셋이 되고 보니, 그게 맘같질 않다는 바를 깨달아서 나는 좀 천천히 가야함을 배웠는데, 서른여덟의 남자가 내뱉는 이 스물여덟같은 대사들에 적잖이 이질감을 느껴졌다.
이런 관계를 대해야 하는 법을 통 잊어버린 듯 나는 허둥지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