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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표현 Aug 04. 2021

'정상'과 '비정상'

영화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  <어느 가족> 리뷰

 

 가족이란 무엇일까? 일단 사전적인 정의를 살펴보면 가족은 ‘혈연’으로 묶인 최소한의 사회집단이다. 누군가는 ‘혈연’으로 다져진 이 관계가 어떤 집단보다 공고하다고 말한다. 혈연으로 묶인 집단이 정상, 그 외에 집단은 비정상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과 <어느 가족>을 살펴본다면 가족을 완성하고 단단하게 엮는 것은 핏줄만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속 가족은 서류상으로는 ‘가족’이라 표기돼 있는 ‘정상 가족’이다. 남녀로 구성된 부모,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로 이루어진 모습. 하지만 정상이라 불리는 이 가족을 보고 있자면 어딘가 불편하다. 때로는 ‘폭력’적이기도 하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아닌 그 아픔을 조롱하는, 서로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아닌 묵살해버리는 그런 관계. 이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공감은 당연히 없다.


 반면에 <어느 가족> 속 가족은 ‘가족’이라 말할 수 없다. 가족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이상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피가 섞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비정상 가족’에게는 가족이라면 떠오르는 애틋함, 이해, 공감 등이 존재한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지만 무언가 말하려고 하면 경청하고,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들은 서로를 보듬어가며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보다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이 둘을 비교하다 보면 우리가 지금껏 믿어왔던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이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란 개념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살펴보려한다. 가족의 유형과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사회가 근대화되면서 핵가족이란 새로운 가족 유형이 등장했고, 혈연으로 이루어진 이 가족의 형태는 오랜 시간 유지되며 점점 가족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시작으로 이런 가족의 형태가 ‘정상’이라는 고정관념이 형성됐고, 그에 따라 다른 가족의 형태는 ‘비정상’이 됐다. 제도적으로도 가족은 ‘혈연’으로 이루어진 관계로 정의해버렸다. 이로부터 정형화된 가족관계는 자연스럽지 못했는데, 가족은 '인간적인 관계'보다는 '제도적인 관계'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 안은 어딘가 이상한, 하지만 ‘정상’적인 가족을 생성했다.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에 등장하는 가족들처럼 말이다. 인간적인 관계가 아닌 ‘혈연’만으로 엮인 관계에서 오는 부작용이었다. 때문에 점점 우리가 생각했던 가족의 모습은 사라져 갔다. 이 가족이라는 제도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피’라는 밧줄로 가족은 단단히 묶어 이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소통하지 않아도, 이해하지 않아도, 공감하지 않아도 말이다.


 본디 가족이란 가장 친밀한 유대를 가진 공동체이다. 이를 제도적인 범위로 정립하고, 고정관념으로 정상, 비정상을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가족> 속 가족처럼 연대하며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에게 제도적인, 통념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 맞을까. 그들은 이미 가족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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