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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표현 Nov 01. 2022

렌즈

조각글 2

 

“인경 씨, 원래 안경 껴?”

 “렌즈가 다 떨어져서요.”

 이 질문만 벌써 5번째다. 내 눈깔에 무슨 관심들이 그렇게 많은지. 도수가 맞지 않은 안경을 써서 가뜩이나 머리도 아픈데.

 3달 전에 렌즈를 몇 박스나 사뒀던 것 같은데, 오늘 아침 화장대를 아무리 뒤져도 남아 있는 렌즈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나서는 아침 출근길은 정말 고난의 연속이었다. 버스 번호가 보이지 않아 휴대폰 카메라로 내가 타야 하는 버스 색과 비슷한 버스가 오면 버스 번호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놓칠까 봐 듣던 음악을 다 꺼두고는 지하철 음성 안내에 집중했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몸을 잔뜩 숙여 메일 내용을 확인했다. 결국 나는 서랍 구석에 놓여 있던 안경을 썼다. 4년 전에 맞췄던 안경이라 도수가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내 안경에 대한 안부는 퇴근 전까지 계속되었다. 눈이 많이 안 좋냐, 시력이 몇이냐, 라식은 왜 안 했냐, 안경알이 두꺼워 무거울 것 같다, 렌즈보다는 안경이 눈 건강에 좋다, 안경도 잘 어울린다, 안경을 쓰니 인상이 사나워 보인다… 나는 그때마다 사람 좋은 척 호호호 웃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부장은 내가 버스를 타기 전까지 ‘안경테라도 바꿔보는 건 어때? 인경 씨 얼굴형에는 얇은 게 잘 어울릴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나는 또 호호호 웃다가 버스를 후다닥 탔다.

 어? 버스에 이렇게 사람이 없다고? 퇴근 시간에는 바글바글한 데. 나는 일단 의자에 앉아 버스 음성에 집중했다. 역시나 버스를 잘못 탄 것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뜨며 여기서 집으로 갈 방법을 생각했다. 밤이라 그런지 카메라로 봐도 버스의 번호가 잘 보이지 않아 오는 버스마다 ‘기사님, 어디 어디 가나요?’고 물었다. 동네에 도착하고 나서는 눈이 보이지 않아도 쉽게 단골 안경점으로 갈 수 있었다.

 “렌즈?”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저씨가 말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씨는 서랍을 열었다.

 “3달 치 맞지?”

 “그냥 1년 쓸 만큼 주세요.”

 “그건 안돼.”

 아저씨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왜요?”

 아저씨는 렌즈를 3달 치만 사야 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아저씨의 입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아저씨는 설교가 끝났는지 봉투에 렌즈 박스와 세정액 등을 넣었다. 봉투 안에는 아저씨의 말대로 3개월 쓸 양만 들어있었다.

 “3개월 할부요.”

 “지금 쓰고 있는 안경, 언제 한 거야?”

 내 카드를 받아든 아저씨는 카드 단말기 버튼을 누르는 대신 컴퓨터를 뒤적거리며 기록을 살폈다.

 “온 김에 안경도 하나 하지?”

 “아니에요. 어차피 안경 불편해서 잘 안 써요.”

 아저씨는 요즘 안경이 얼마나 잘 나오는지 아냐며, 나에게 안경테를 여러 가지 보여줬다. 검은색, 갈색, 금속… 어찌나 종류도 다양한지. 나는 아까 부장이 한 말처럼 얇은 금속 테를 골랐다. 아저씨는 내가 안목이 있다며 안경은 이틀 뒤에 찾으러 오라고 말했다.

 나는 렌즈가 든 봉투를 들고 걸어갔다. 아저씨가 챙겨 준 안경 케이스에 쓰고 있던 안경을 넣었다. 시야가 더 흐려졌지만 코를 짓누르던 것이 없어져 종일 쌓였던 피곤함이 좀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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