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中 「스펙트럼」 비평
SF는 무엇에서 시작할까? 인간의 상상력? 과학의 발전? SF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할 테지만 인간의 상상력도, 과학의 발전도 만든 이의 ‘마음’이 없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것에 끌려 주의를 기울이는 마음(관심),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호기심) 그리고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마음(진심). 나는 이런 마음들이 모여 SF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마음에서 시작된 SF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한국형 SF 소설로 주목받고 있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속 단편들도 이런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이 소설에 어떤 마음이 들어있고, 그 마음들이 어떤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지를 책의 표지 일러스트의 배경인 「스펙트럼」을 토대로 살펴볼 예정이다. 왜 일곱 개의 단편 중 하필 「스펙트럼」일까 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나의 답은 마지막 꼭지에 있으니 끝까지 읽어주시길.
「스펙트럼」에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희진’과 그녀의 ‘손녀’, 그리고 외계 지성 생명체 ‘루이들’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외계인을 만난 경험을 들려주는 희진과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는 손녀의 시선에 따라 전개된다. 이에 따라 「스펙트럼」에는 희진의 마음과 할머니를 생각하는 손녀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다.
희진의 이야기는 그녀가 조난을 당하면서 시작된다. 희진은 조난 중 그 행성에 살고 있는 ‘무리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무리인들은 처음 보는 생명체인 희진을 공격한다. 이때 무리인 중 ‘루이’라는 개체가 희진을 보호하면서 그녀는 목숨을 건진다. 위급 상황에서 벗어나 조금의 안정을 찾은 덕분인지 생존만을 생각했던 희진에게 새로운 ‘마음’이 등장한다. 바로 ‘관심’이다. 그녀는 행성과 무리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무리인의 습성, 생김새, 문화…. 그녀는 자신을 보살펴주는 ‘루이’라는 개체에게도 관심을 가지지만 루이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희진은 자신을 마음을 거둔다.
외계 지성 생명체 집단에 대한 희진의 ‘관심’은 루이라는 하나의 개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변한다. 희진의 마음이 변화한 것은 그녀가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찾은 날이었다. 신난 희진을 보고 루이는 그날 저녁 그녀를 축하하는 듯이 행동한다. 희진과 루이가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무렵, 루이가 세상을 떠난다. 루이의 죽음으로 희진은 무리인의 특이한 문화를 알게 된다. 그들은 죽음에 이른 다음에도 죽지 않는다고 믿는다는 것. 몸만 바뀔 뿐 자아는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는 것. 첫 번째 루이가 죽은 이후 희진은 총 4명의 루이를 만나게 된다. 이에 희진은 의문을 품는다. 정말 같은 루이인 것일까.
희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루이들과 간단한 ‘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이 그리는 그림이 무리인들의 문자라는 것을 알게 되며 루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기쁨을 느끼고, 루이들이 지었던 이상한 표정이 미소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함께 웃어 보인다. 이렇게 루이들과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는 일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일련의 사건으로 루이가 있던 협곡에서 멀어지고 타고 왔던 우주선을 발견하면서 희진은 무리인들이 있는 행성과 루이에게 안녕을 고한다.
희진과 루이가 소통하는 부분에서 그녀의 ‘진심’을 엿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진심’은 행성을 떠난 후 비로소 나타난다. 희진은 행성에 표류하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우주를 떠돈다. 그녀는 지구인들이 무리인들의 행성을 찾지 못할 위치가 되어서야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신호를 보낸다. 지구에 돌아와서도 무리인들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모습을 보이는 희진. 사람들의 손가락짓에도 어째서인지 그녀는 입을 열지 않는다. 이 행동은 지구인들이 무리인들의 위치를 몰랐으면 하는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의 위치가 탈로 나는 순간, 지구인들은 첨단 문물들을 가지고 무리인들과 소통하려 할테니까. 오로지 감각만으로 진심을 다해 무리인들을 이해하려 했던 자신과는 다르게 말이다.
오랜 우주여행으로 미쳐버린 것이라며 희진의 ‘나는 최초의 조우자였다’는 주장을 무시하는 사람들과 달리 희진의 손녀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다. 그녀의 모험담이 매번 달라도 희진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다. 희진의 이야기 속 루이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그림들의 의미를 경청한다. 자신의 할머니를 ‘진심’을 ‘진심’으로 이해한 손녀는 희진이 바라던 바를 이뤄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루이의 언어는 우리와 다르기에 희진과 그녀의 손녀처럼 그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 짐작만 할 뿐이다. 희진에게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고, 그녀의 행동을 기록하고, 미소를 지어주던 루이. 희진과 온전한 대화조차도 못한 루이는 희진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그의 마음도 희진처럼 서서히 변화했고, 끝내는 루이도 희진처럼 다른 생명체를 진심을 다해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까.
「스펙트럼」을 쓴 김초엽 작가의 마음은 어떨까? 이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된 작가의 말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스펙트럼을 쓰던 시기에는 기술로 인해 변형된 인간의 감각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 교과서에는 늘 지식의 발견과 더불어 그 지식을 발견 가능하게 했던 도구, 장치, 실험 설계가 함께 제시된다. 우리가 여러 가지 도구들-망원경과 현미경, 현대 실험실의 주축인 실험장비들-을 통해 어떻게 세계를 탐구하고 확장해왔는지를 생각하면 흥미롭다.
「스펙트럼」에 등장하는 희진처럼 김초엽도 무언가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에 가려져 버린 인간의 감각. 이에 대한 관심은 ‘호기심’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그렇게 확장된 감각에만 익숙했던 한 과학자가, 인간의 감각만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세계와 타인을 만난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지가 궁금했다.
작가 김초엽은 이 호기심이라는 마음을 「스펙트럼」 속 희진과 루이를 통해 표현한다. 「스펙트럼」 속 희진은 무리인들을 만나기 전 기술에 의존했던 모습들을 보인다. 현미경, 데이터, 그래프로 세상을 바라보던 희진은 완전히 혼자가 되어 인간의 감각만으로 무리인들을 이해하려 하려 한다. 처음에 희진은 기술의 부재로 인해 외계 생명체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의 감각만으로 루이를 이해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여전히 희진에게 루이는 ‘눈앞에는 회색의 축축한 피부를 가진 여전히 낯선 존재’지만 희진과 루이는 진심을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한다. 이런 희진과 루이를 보고 나면 작가 김초엽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탐구하고 천착하는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을 이해해보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언젠가 우리는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겠지만, 그렇게 먼 미래에도 누군가는 외롭고 고독하며 닿기를 갈망할 것이다. 어디서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싶다. 앞으로 소설을 계속 써나가며 그 이해의 단편들을, 맞부딪히는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찾아보려고 한다.
사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는 나의 첫 SF소설이다. 내게 SF는 주로 영화들이었고, 그 영화들은 내게 엄청난 공포를 안겨주었다. 어떤 영화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해 인간들과 전쟁을 치르는 내용이었고, 어떤 영화는 사고로 인해 우주에서 홀로 생존해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첫인상이 이렇다 보니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어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마음은 ‘두려움’이었다. 이런 나를 보고 이 책을 먼저 읽은 지인은 좋은 책이라고 한번 읽어보라며 권했다. 그의 평가를 듣고 나의 마음에는 호기심과 관심이라는 것이 피어 올랐다.
잔뜩 겁을 먹고 책장을 넘긴 내 모습이 우스워질 정도로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는 내가 여태 보았던 SF와는 완전히 달랐다. 작가가 이야기에 담은 마음은 나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주인공을 보며 마음이 저리기도 했고, 글자를 읽으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경험도 했다. 그중 마음을 가장 두근거리게 한 단편이 바로 「스펙트럼」이었다.
유독 「스펙트럼」이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주인공들의 마음이 변화해가는 모습 때문이었다. 마음은 관계가 지속됨에 따라 이름을 바꾸며 변화해간다. 「스펙트럼」 속 희진의 마음은 넓은 개체(무리인과 행성)에서 하나의 개체(루이)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이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바로 ‘소통’이었다. 「스펙트럼」을 보면 희진과 루이는 대화가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마음을 나눴다.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그들의 마음은 변화해갔다.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어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 그것이 책을 읽는 나의 마음을 울렸다.
「스펙트럼」뿐만 아니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다른 단편들을 읽고 나서도 나의 반응은 같았다. 코가 찡해지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김초엽 작가의 문장이 엄청나게 뛰어난 것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스토리는 분명 아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SF들은 큰 권력 간의 전쟁과 약탈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행위들. 그것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안에 주인공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 주류였다.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속 이야기는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생명체의 것이었다.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생명체가 타인을 이해하고 진심을 전한다. 이들의 진심은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에게 닿아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의 스토리를 한 번에 표현하는 할 수 있는 문장을 「스펙트럼」 속에서 찾았다. 이 문장은 내 눈물샘을 톡 건드리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이를 변형해 이 글을 마치려 한다.
누군가가 마음을 전하는 것은 놀랍고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