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굳이 차인지는 모르겠다. 물(水)이 많은 사주라 여기저기 흘러 다니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어딘가에 가고 싶을 때 내 마음대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낮이든 밤이든 여름이든 겨울이든간에.
현실적인 문제로 거의 3년을 고민했다.
일단은 돈이 없었다. 차는 어찌저찌 중고차를 저렴하게 구한다해도 그걸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차가 생기는 순간부터 숨 쉬듯 나가는 할부금과 보험비, 기름값과 주차비. 거기다 감가상각까지 고려하면 그냥 돈을 벌어서 땅에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주차할 공간이 없었다. 사실 집을 매매한 데에는 차를 사고 싶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당시에 살던 아파트는 4중주차를 해야 할 정도로 주차난이 심했다. 아무리 작은 차라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차가 있어도 짐이었다. 그래서 전세가 끝나고 나면 여기보다는 주차난이 덜한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언젠간 차를 살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 어쩌다 흘러흘러 주차난이 적은 아파트로 이사는 했지만, 그만큼 금전적 부담이 늘어나서 도저히 차를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지하철이 바로 앞에 있으니 몇 년간은 뚜벅이로 살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결국 나는 차를 계약하고야 말았다.
하우스푸어와 카푸어를 같이 하는 나 같은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하카푸어?
예나 지금이나 돈은 여전히 없다. 나도 내 사정을 잘 알았기 때문에 네가 그렇게 차를 사고 싶으면 사라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도 한사코 거절해왔다. 유지비가 부담스러워 누가 차를 공짜로 준다고 해도 망설일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올해가 내 마지막 이십대구나' 하는 생각이 강렬하게 와닿았다. 스물아홉. 내 마지막 이십대의 삶. 그러나 상경한 지 4년 차,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일한 것 외에는 남는 게 없다. 내 이십대의 삶은 오로지 집과 회사를 오고 가는 장면들로만 가득하다.
스무살의 나와 스물아홉의 나가 이렇게나 다른 것처럼, 이십대의 내가 보는 풍경과 삼십대의 내가 보는 풍경은 분명 다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조금 더 일찍 내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조금만 더 일찍 이런 생각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돈은 앞으로도 몇 년이든 몇십 년이든 적으나 많으나 계속 벌어가며 살겠지만, 지금 이 시간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세상에 돈을 버는 방법은 많으나 젊음을 버는 방법은 없다.나는 분명 이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결국 나는 하나둘씩 모아 왔던 해외주식을 몽땅 깨었다.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더 투자해야 한다는데 요즘 시대에 맞지 않은 한심한 일이다. 이제 내겐 예적금도 없다. 빼다 쓸 수도 없는 소액의 청약과 펀드가 내가 가진 전부다.
매일 내게 젊을 때 10만 원 투자는 나이 들어 1000만 원 투자하는 것보다 낫다고 주문을 외는 동생은 차를 사는 게 아깝다고 했지만, 몇 년간의 고민 끝에 마음먹은 나의 굳은 결심을 말릴 수는 없다.
(동생은 정작 스물네다섯부터 차가 있었다. 내로남불-_-)
집을 살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정 내가 이걸 못 버티면 팔면 그만이지. 차도 매한가지다. 차를 운용해보다가 도저히 내 월급으로 감당이 안될 것 같으면 그때 가서 팔면 된다. 그 과정에서 잃은 취등록세나 감가는 인생수업했다고 쳐야지 뭐. 차가 너무 사고 싶어서 열심히 자기 합리화하는 거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실수 하나쯤 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차를 잘 타고 다닌다면 내 인생에 추억을 여럿 남길 수 있을테고, 차를 감당하지 못해 다시 팔게 된다면 앞으로 평생 이야기할 에피소드로 남겠지. 어느쪽이든 내 삶의 삽화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물론 거기에 사고나지 않고 안전하게 운전해야한다는 전제는 달아두어야겠지만.
차가 나올 때까지 앞으로 3~4개월.
내 생일이 1월이니 서른 살의 생일 선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물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새로운 삶의 방식은 구멍 뚫린 지갑에서 줄줄 흐르는 돈과 함께 하겠지만.차 없는 인생을 30년 정도 살아 봤으면 이제 몇 년쯤은 차 있는 삶을 살아봐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