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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Nov 06. 2021

나의 은밀한 취미생활

술자리를 취미생활이라 해도 될까요?


2년 차 사원이었던 2019년에 작성한 글을 찾아

뒤늦게 업로드합니다:)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술을 좋아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가장 무서운 대답이 뭘까. 네. 술 좋아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무서운 대답은 ‘아니요, 술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술자리를 좋아합니다.’라는 말이다. 보통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술자리에 빠지지 않고, 술을 자주 마시며, 주량이 높을 가능성이 많다.


만약 술자리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상사라면? 퇴근 후의 시간이 좀 괴로울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는 그 무서운, 술 아닌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우리 회사 사람들에게 다행인 것은 내가 아직 햇병아리 사원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부서 내에서 ‘화요 미식회’라는 아주 작은 비밀 모임을 하고 있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모임은 화요일마다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모임이다. 덕분에 나는 회사 근처의 맛집이란 맛집은 다 돌아본 것 같다.


심지어 모임 사람들과 같이 주말에 여행을 가거나 캠핑을 하러 가기도 다. 회사 사람들끼리 캠핑 오는 건 우리 밖에 없을 줄 알았는 데...캠핑장에 갔더니 여기저기서 대리님, 과장님을 찾고 난리도 아니더라.


보통 사내 모임은 비슷한 나이대의 비슷한 직급의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인데, 이 모임은 나이대와 직급이 천차만별이다. 모임원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로, 야근을 자주 한다는 것과 회식의 끝의 끝의 끝~까지 남는다는 것이다.


우리 회사는 퇴근시간이 7시여서 칼퇴를 하고 집에 가더라도 저녁식사보다는 야식에 가까운 시간대가 된다.


거기다 야근을 한다면? 일단 밥을 먼저 먹고 시작하거나 혹은 야식을 먹거나. 그러다 보니 만약 같이 야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끝내고 같이 저녁 먹고 가실래요?’라고 물어보게 되기 마련이다.


야근이 잦았던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삼삼오오 아주 가끔 야근 번개 모임을 갖곤 했다. 그때까지는 그야 말대로 가끔 치는 번개 같은 모임이었다.




우리 회사는 회식이 드문 편인데 그마저도 점심 회식을 할 때가 많고, 술을 동반한 저녁 회식은 대부분 1차에서 밥만 먹고 끝낸다.


술을 강요하지 않아서 사실 술 마시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1차에는 몇십 명이 함께하지만 보통 식사만 하고 9시쯤 집에 간다.


원하는 사람들끼리 남아 사비를 걷어 2차를 가는데, 2차에 남는 사람은 두 손안에 꼽을 수 있다. 종종 한 손안에 꼽을 때도 있다.


2차를 둘러보면 언제나 보던 그 사람, 3차를 둘러봐도 언제나 거기서 보던 그 사람. 그러다 보니 어느새인가부터 우리끼리 ‘어? 또 그 멤버?’라는 이야기를 하게 됐고, 그 말을 줄여 ‘또멤버’라고 부르게 됐다. ‘또멤버’끼리 화요일에 콜! 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자연스럽게 모임의 이름은 ‘화요 미식회’가 됐다.




이 모임이 처음부터 비밀 모임이었던 것은 아니다. 화요 미식회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에는 사내 단체 메신저 방에서 ‘번개’ 할 사람들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암묵적인 비밀 모임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단 내가 이 모임을 비밀로 여기게 된 것은 어떤 사건과 관련이 있다.


이 사건은 파트님의 익명 Q&A로부터 시작되었다. 파트장님은 업무에 대한 직원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상/하반기로 익명 질문 코너를 운영하였는데, 업무 환경 개선에 대한 요구부터 퇴사에 대한 욕구까지 아주 다양한 이야기들을 볼 수 있었다.


파트장님은 그 모든 이야기에 대해 장문의 답변을 달아 전체 공개로 회신을 해주셨는데, 거기서 나는 아주 큰 고민과 맞닥뜨리게 된다.


‘직원들끼리 가지는 모임 때문에 소외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런 모임을 자제하면 좋겠습니다.(술자리 등등)’




그 글을 읽자마자 ‘아, 저건 우리 모임을 말하는 거구나.’하는 느낌이 왔다.


처음에는 '주말에 같이 연극을 보는 사람들도 있고 같이 연차를 내서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 술자리는 안되는가? 취미생활은 같이 해도 되지만, 술자리는 같이하면 안 되는 건가? 술자리를 취미생활이라고 볼 수는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자리에 술을 못 마셔서 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집이 너무 멀어서 올 수 없는 사람도 있을 테고, 우리끼리 이미 너무 친해 보여서 모임에 참여하기가 껄끄러운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음식이나 술에 대한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모임원 구성이 구성이니만큼 이따금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고 그 때문에 나는 종종 남들보다 먼저 회사의 상황을 듣기도 했었다. 그런 점을 미뤄보면 누군가 그 모임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 의견에 대한 답변이 나를 더 고민하게 했는데 워낙 길어서 정확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내가 누군가의 모임에 초대받을 만한 사람인지 먼저 생각해봅시다. 누구나 모임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또 아닌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강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이었다. 나는 답변을 들은 직원의 마음이 신경 쓰였다.


 이후에 우리는 한동안 모임을 가지지 않았다. 물론 서로 바쁜 일이 있어서였을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누군가 나로 인해 소외감을 느꼈다는 게 미안했다. 서울에 아무 연고도 없는 내가 서울 토박이들의 부서에서 누군가에게 소외감을 느끼게 하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때부터 나의 긴 고민이 시작되었다. 회사 직원과 술자리를 가지는 게 바람직한가, 아닌가.


 일반적으로 회사의 술자리는 지양하는 게 맞다. 그런데 이 모임은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연히 모이게 된 것이고, 술이 취미생활이라는 전제 하에 퇴근 후의 시간을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보내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른 직원들 중에서는 아침에 일찍 출근해 카페에서 정기적인 티타임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에 대해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좀 더 친한 사람이 있고 좀 덜 친한 사람이 있는 거니까.


하지만 나는 내가 그 모임에 있기 때문에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술은 되도록 마시지 않는 게 좋고, 회사의 술자리는 없을수록 좋고, 술자리에서 회사 이야기를 하는 일은 더더욱 없는 게 좋다.


나는 이 회사와 이 부서가 첫 회사, 첫 부서이기 때문에 아직 뭐라고 판단할만한 경험이 부족한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게 될까? 그건 과연 언제쯤이 될까.




4년 차 주임이 된 지금은 이런 인연이 있어야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퇴사를 할까 생각하다가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좀 더 버티게 되고, 힘들고 지치는 일이 있어도 금방 털어낼 수 있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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