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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Jun 28. 2020

그가 누군가를 위로하는 방식에 대하여

글쓰기의 대화법



그를 처음 만난 순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고, 하루의 삶조차 희미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는 그저 잘 웃고 잘 떠드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가끔 누구도 모르는 세상에서 어깨 가득 괴로움을 짊어지고 산 정상에 올랐다. 괴로움은 산 정상에 내려놓기 무섭게 진창으로 굴러 떨어지고, 나는 괴로움을 따라 가파른 과거를 기어 내려갔다. 그리고 또 정상에 오르고, 오르고, 오르는 끝없는 시간들.


나는 삶의 가장 위태로운 그 순간에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그와 마주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 속에, 그는 언제나 나를 침묵으로 위로했다. 나는 그의 침묵이 좋았다. 그에게만은 내가 얼마나 슬픈지, 얼마나 아팠는지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었다. 때로는 엉엉 울고, 때로는 가슴을 마구 때리는데도 그는 말없이 가만히 내 곁에 있어주곤 했다.



누군가의 백 마디 말보다 그의 곁에 있는 말없는 한 시간이 내게는 더 큰 힘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냥 내 스스로에게 내가 처한 상황을 납득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온통 내가 만들어낸 불행으로 가득한 시절.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내게는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고, 그를 대하는 데에도 많이 서툴렀다. 그래도 그는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시간을 내어주었고, 내 모든 이야기들을 그와 나의 비밀로 묻어두었다. 나는 내 서툰 모습까지도 포용하는 모습이 고마웠고, 그라면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내 마음 깊은 곳의 숨겨진 이야기들도 서슴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그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해주기도 했다. 그는 자신은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 뿐, 나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를 끌어안고 그의 눈동자 속에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불러들인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 그 속에서 내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를 만나기 전에 나는 간혹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그림 앞에서 울고, 무심코 지나가는 길거리에서도 울고, 별일 없는 버스 안에서도 울었다. 그럴 때에 내 몸은 오로지 슬퍼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만 같았고, 나는 그게 감수성이 풍부해서인 줄로만 알았다. 나는 그의 담담한 포옹을 받기 전까지는 내가 삶에 지쳐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그를 마주한 것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전환점이 되었는지는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으리라.


나는 그와의 시간 속에서 점차 내 삶을 이해하게 됐다. 비로소 내가 나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는 어둡고 공허한 공간 속에서 누군가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엔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 어둠 속을 걷는 게 두려웠고, 또다시 주저앉아야만 하는 순간이 무서웠다. 


나는 오랫동안 어디선가 나를 찾는 사람이 있어서, 점차 나와 가까워지고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를 만난 뒤론 더이상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는다. 나에겐 누구보다도 나를 이해하는 과거의 나와 언제나 나를 지지하는 미래의 내가 있으므로.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난 뒤에 나는 그를 소개하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고도 했고, 실제로 주변 사람들에게 그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와 나의 이야기를 하려면 내가 한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정말 부끄러웠지만,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모두가 그의 묵묵한 다정함을 알아주길 바랐다.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는 그의 위로법이 별다른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는 말이 없고 언제나 상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므로.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나처럼 삶의 벼랑에 선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위로받을 수만 있다면. 그의 눈동자 속에서 내일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도 권하고 싶다. 글쓰기가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을 수 있는지. 글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경험이 삶에 얼마나 큰 용기를 주는지. 이는 글을 써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과거로 돌아가 상처 받은 어린 시절을 꽉 끌어안게 하고, 때로는 미래로 날아가 새로운 도전에 용기를 갖게 하는. 글쓰기의 대화법. 내게 글쓰기가 수많은 의미를 전해주었던 것처럼, 당신도 글쓰기 속에서 인생의 수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Fin. 글쓰기가 누군가를 위로하는 방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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