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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Jun 28. 2020

구 선배의 어깨너머로 던져진 돌멩이


오늘도 커피 한 잔을 마시다 구 선배에게 감사하다고 연락을 해볼까 생각한다. 몇 년간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이 고민은 아마 바위 위에 접붙인 꽃이 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정석가>에 따르면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어차피 나는 평생 선배에게 연락하지 않을 테니까.


내게 구 선배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자면, 마치 옷 속에 넣어둔 돌멩이 같은 존재라고 할까. 여기저기를 쏘다닐 땐 거기 있는지도 모르다가, 잠시 쉬어 가야지 하고 어딘가 앉으면 ‘나 여기 있소.’하고 살을 쿡쿡 찔러대는 존재.


그럴 때 나는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어, 가만히 그 뾰족한 돌을 굴려본다. 절대 내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을 이 돌은 어쩌면 대단히 빛나는 보석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아무렇게나 뭉쳐진 플라스틱 덩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나는 이것을 절대 꺼내지 않을 것이므로 그게 무엇이든 거기에 있다는 것만을 생각하며 지낸다. 무엇이 되었든 이 주머니 속의 것이 나를 지금으로 이끌어주었으므로.



대학교 3학년. 전공 수업과 과제만으로도 ‘사망년’이라고 불리던 시기. 그때의 나는 내 의사와 상관없는 수많은 일들로 허덕이는 중이었다. 예를 들자면 동기의 부탁으로 이름만 올리는 줄 알았던 학습모임이 알고 보니 고문 교수님까지 모신 정식 멘토 프로그램이었다거나, 네가 맡아주지 않으면 동아리가 해체될지도 모른다는 선배들의 협박 아닌 협박으로 팔자에도 없는 동아리 회장을 맡게 되었다거나. 한 주 걸러 한 번씩은 교수님의 논문 작성을 위한 일명 ‘독서 모임’에 끌려다니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도 이런 모임들은 네다섯 개가 더 있었고, 나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일에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일인데, 나는 그것들을 해결하느라 몇 달이고 쪽잠을 자야만 했다. 그러나 그 시절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그건 너의 책임이니 무조건 버티라’ 고 했고, 그 말들은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는 독수리만큼이나 날카롭게 나를 파고들었다.


수많은 책임들이 방학도 없이 계속해서 나를 몰아붙인 결과, 여름이 무르익을 즈음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신나게 기타를 치다가 갑자기 엉엉 울거나, 스터디 준비를 하다 문득 이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되뇌면서도 당연히 그 모든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그때 나는 내 인생의 사북 자리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그 어느 날, 나는 우연히 복도에서 구 선배와 마주쳤다. 물론 우연한 순간이지만, 나는 그 순간이 내게 주어진 운명이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도 있다. 마치 소설의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개연성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선배와 내 삶이 교차하는 어딘가에서 개연성의 발판이 움직였을 거라고 여기는 것이다. 마치 미하일이 시몬을 만나 신의 뜻을 깨달은 것처럼, 또는 베로니카가 죽기를 결심한 끝에 새로운 삶을 얻은 것처럼 말이다. 내게 의미 있는 순간이었기에 설명은 이토록 거창하지만, 사실 선배가 내게 건넨 말은 겨우 이 한 문장에 지나지 않는다.


“힘들면, 하나쯤 그만두면 안 돼?”

아무나 할 수 있는, 큰 의미도 없는, 그러나 그 누구도 내게 해주지 않았던 말 한마디.


과연 선배가 이 특별할 것 없는 순간을 기억할까? 아마 선배에게 이 순간은 길을 걷다 발에 차인 돌멩이 하나를 무심코 어깨너머로 던진 것뿐인, 기억할 거리도 없는 일상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우물 바닥만을 맴돌던 개구리에게는 무언가에 맞아 위를 바라보는 그 찰나가 인생을 바꾸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 이후로 내가 바깥세상에 나오는 데까지는 아주 괴롭고 지난한 5년의 세월이 필요했지만, 어쨌든 선배가 던져준 그 돌멩이 하나가 내게 바깥세상의 존재를 알게 했음만은 잊지 않았다.



아마 선배는 상상도 못하지 않을까. 몇 년 전 선배가 던진 말 한마디를 주머니 한 편에 쥐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내가 이 순간을 무한히 추억하면서도 선배에게 연락해 내 주머니 속의 돌을 꺼내어 놓지 않는 것은, 돌은 주머니 안에 있을 때만이 무수한 가능성을 지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구 선배의 어깨너머로 던져진 미시세계의 돌멩이는 때로 삶의 고통 너머에 바람이 불고 꽃잎이 날리는 하늘이 있음을 말하고, 때로 나의 인생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언어로 쓰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너무 지치면 잠시 쉬어가도 된다는 메시지도 여기서 온다. 한 사람의 삶을 단단하게 하는 것은 이토록 쉬운 일이다. 무엇이든 내 속에 나를 위로하는 울림 한 가지를 가지는 것.


 내 주머니 속의 돌멩이가 나를 찌를 때, 스스로 묻는다. 나는 과연 누군가를 죽이는 돌멩이를 던지는 자인가,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돌멩이를 던지는 자인가.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은 누구에게로 가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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