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은 Jun 29. 2020

오늘도, 명상

 내일 뵙겠습니다.

 하루의 업무를 끝내고 나면 즐거워야 하는데,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일에는 익숙해져도, 이 마음에는 익숙해질 수가 없다. 일을 하면서 사소한 실수 하나 없긴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실수한 일들이 내 뒤를 따라 같이 집으로 향한다.


 대개는 퇴근 후 대중교통을 타고 바로 집으로 가지만, 이런 날엔 중간에 내려 잠시라도 걷는 것을 택한다.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이렇게 되뇐다. ‘발바닥이 땅을 딛는 느낌에 집중합니다. 오른발 뒤꿈치를 듭니다. 오른발을 듭니다. 오른발을 앞으로 뻗습니다. 오른발 앞꿈치를 딛습니다. 오른발 뒤꿈치를 딛습니다….’


 처음엔 조금 천천히 걷더라도 발바닥을 어떻게 떼고 붙이는 지에 집중해야 한다. 걷는 행동에 충분히 집중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만 생각하며 걷는다. 잠시 횡단보도 앞에 설 때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되뇐 후, 회사에서부터 따라온 일들을 하나씩 두고 간다. 그렇게 횡단보도마다 무거운 마음들을 조금씩 떼어가며 걷다보면 집에 도착할 때쯤 마음이 평온해 진다.


 명상이라고 하면, 일반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조금 특이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많은 것 같다. 사실 얼마 전까지 나도 그랬다. 명상은 수도자들이나 도 닦을 때 하는 것 같고, 지루할 것 같고, 왜 하는 지 잘 모르겠고. 명상에 대한 내 인식은 겨우 그 정도였다. 하지만 명상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사실 오래전부터 나도 모르는 새에 이미 명상을 해왔음을 알았다. 내 방식대로의 명상, 일명 ‘멍때리기’.


나는 예전부터 마음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질 때면, 다양한 곳을 찾아가 멍을 때리곤 했다. 야간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면서 멍때리기, 바닷가에 앉아 파도소리 들으며 멍때리기, 뒷산에 올라가 바위에 누워서 노래 들으며 멍때리기.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정리하는 게 명상이라면, 내가 지금껏 해온 멍때리기들도 모두 명상이 아닐까. 물론 아무 방법도 없고 이게 명상이라는 인식도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명상을 해오고 있었던 셈이다.


 세상에는 별별 명상이 다 있는데,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관조명상, 바다나 호수 같은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하는 관상명상, 만다라를 그리며 하는 만다라 명상 그리고 걸으면서 하는 걷기 명상까지. 심지어 음식을 먹으면서 하는(!) 먹기 명상도 있다. 어떤 장소에 있거나 어떤 행동을 하거나 내가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하고 있다면 그게 바로 명상인 것이다.


 이전엔 삶이 힘들 때에만 명상을 했다면, 요즘은 되도록 하루에 한번정도는 명상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특별히 시간을 내지는 않고, 자기 전 마음 속으로 호수에서 노를 젓거나, 출퇴근 길에 잠시 걸으면서 걸음에 집중하는 식이다. 명상 시간이 따로 생긴 것도 아니니까 언뜻 보면 생활에 바뀐 것이 전혀 없어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많은 것이 바뀌었다.


 첫째, 스스로에게 충분히 불안해하는 시간을 줄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은 불안할 때, 어쩔 줄을 모르고 무조건 불안하지 않아야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는데, 이젠 여유를 가지고 내가 왜 불안해하는지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조금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다. 불안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주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조용히 기다리다보면 불안은 새벽 안개처럼 흩어진다.


 둘째, 내가 해야할 일을 하고, 하지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참 쉬운 문장이지만 한편으로는 살면서 가장 지키기 어려운 문장이다. 물론 나도 아직까지 모든 일에 이 문장을 적용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글쓰기를 미뤄두고 유튜브 파도타기 삼매경에 빠지거나 주말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알람을 끄는 건 똑같다. 하지만 내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명상을 시작한 후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일상이 달라졌다. 예를 들어 하루 한 장 노트를 쓰기 시작했고, 일하기 전에 미리 계획 세우게 되었고, 자기 전에는 휴대폰을 보지 않고, 설거지와 분리수거를 다음날로 미루지 않는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데에 제일 좋은 방법은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해버리는 것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앞으로도 나는 매일 밤 호수에서 노를 저으며 잡다한 생각을 버리고, 출퇴근 길을 걸으며 횡단보도에 고민들을 한 웅큼씩 떼어두고 올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하게 될 것이고, 일상 속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들은 다시 바람으로, 공기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므로써 나는 이 순간을 살아갈 것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문장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명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작가의 이전글 구 선배의 어깨너머로 던져진 돌멩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