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성격, 기질로만 같은사람으로 볼 수 없는 이유

by 이수염

우리는 사람을 이해하려 할 때 주로 한 가지 방식에 의존한다. 그 사람의 성격, 기질, 가치관, 혹은 본성을 통해 그 사람을 설명하려 한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며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


이 말은 인간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하고 직관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놓치는 방식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코 혼자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단순히 개인의 내부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 경험, 교육, 그리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가 함께 작용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지만 가장 잘 보이지 않는 요소가 하나 있다.

그 시대의 상식이다.


< 보이지 않는 공기 >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흔히 교육을 이야기한다.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적 경험 등. 이러한 것들은 분명 인간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교육보다 더 깊이 작동하는 것이 있다. 바로 무엇이 당연한가에 대한 감각이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도 그 생각의 출발점이 어디에서 왔는지 잘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미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공기를 의식하지 않고 숨 쉬는 것처럼 우리는 시대의 상식 속에서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어떤 전제를 가지고 생각하는지조차 모른다. 어떤 생각들은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전에 이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것이 바로 시대의 상식이다.


< 같은 성향, 다른 선택 >

이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만약 두 사람이 매우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같은 선택을 할까? 직관적으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동일한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시대에서는 그 정의감이 질서를 지키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또 다른 시대에서는 그 정의감이 권력을 비판하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성향은 같지만

정의의 대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엇이 정의로운지에 대한 기준 자체가 이미 시대의 상식 속에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과거를 쉽게 판단한다 >

이 문제는 역사 인물을 바라볼 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현대의 사람들은 종종 과거의 인물들을 쉽게 평가한다.

“왜 저 시대 사람들은 저런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저런 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을까?”

하지만 이 질문에는 하나의 함정이 있다. 우리는 이미 다른 시대의 상식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어떤 생각이나 제도가 오늘날에는 분명히 잘못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 그것은 문제라고 인식되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 시대의 상식 속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 법이라는 살아있는 구조 >

시대의 상식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법의 변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법을 하나의 고정된 규칙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한번 만들어지면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기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면 법은 오히려 살아있는 존재에 가깝다. 시대가 변하면 법도 변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사회 구조가 달라지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화하면 법 역시 그 변화에 맞추어 스스로의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규정이 어느 순간 새로운 범죄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과거에는 분명한 범법 행위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범죄가 아닌 것으로 바뀌기도 한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그 행위를 바라보는 도덕적 기준과 상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보면 법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시대의 상식을 가장 공식적인 형태로 표현한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상식은 다시 인간에게 영향을 준다.

사람들은 법을 통해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문제인지 배우기 시작한다. 결국 법은 단순히 인간을 통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시대의 상식이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순환 구조 라고 할 수 있다.


< 생각의 경계 >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지조차 이미 한 시대의 지식 구조 속에서 결정된다고 보았다. 우리는 자유롭게 생각한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이미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구조는 매우 강력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 시대를 기록하는 사람들 >

하지만 역사 속에는 조금 다른 위치에 서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 시대 속에 살면서도 그 시대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려 했던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역사서 < 사기> 를 남긴 사마천은

수많은 왕과 장수, 정치가들의 삶을 기록했다. 그가 기록한 인물들 속에는 영웅도 있었고, 간웅도 있었으며, 성군도 있었고, 폭군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그 모든 인물들을 하나의 시대라는 이야기 속에서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가가 아니었다. 그는 더 큰 질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런 인물들이 등장했는가. 왜 어떤 나라는 흥하고 어떤 나라는 몰락하는가.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한 시대의 정치와 제도, 그리고 상식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여러 나라의 흥망성쇠를 관찰하며 법과 제도의 구조를 연구했던 사상가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중국 고대의 정치사상인 법가의 사상가들,

특히 한비와 같은 인물들은 왕의 도덕성보다 제도와 법의 구조에 더 주목했다. 그들은 개인의 성품보다 시대를 움직이는 구조와 제도를 바라보려고 했다.


< 시대 안에서 시대 밖을 바라보기 >


이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완전히 시대 밖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 역시 그 시대 속에 살았던 인간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속한 시대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려 했다. 말하자면 시대 안에 있으면서 시대 밖에서 보려는 시선이다. 이 시선이 생길 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왜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가? 왜 이 제도는 존재하는가? 왜 사람들은 이 기준을 옳다고 믿는가?


< 마지막 질문 >

우리는 모두 어떤 시대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시대의 상식 속에서 생각한다.

하지만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그 상식에서 한 걸음 물러난다. 역사를 기록한 사람들, 여러 시대를 비교한 사상가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시대를 낯설게 바라보려 했던 사람들. 어쩌면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은 시대의 바깥에 서려고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는 여전히 그 시대 속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그 시대를 하나의 이야기처럼 바라보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 하나가 시작된다.

우리는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등장인물에 불과한 것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질문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과연 우리 시대의 상식을 얼마나 의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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