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기억이란, 삶의 중요한 감정적 자산이 된다.

좋은 기억의 순기능

by 이수염

혹자들은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원래 매우 유약한 인간이었다. 언제부터였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태생적으로였던 것 같다. 보호색을 쓰는 야생동물들은 보통 그렇게 강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누군가를 효율적으로 사냥하기 위해 보호색 같은 것을 쓰기도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위장색에 가깝다.

나의 경우엔 보호색이 맞았다. 내가 보호색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삶에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유약한 나는 게다가 어리기까지 했던 나는 세상에 속할 때마다 타의로 누군가에 의해 어딘가 깎여져 나가는 고통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보호색을 띠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본능에 가까운 해법이었다.

다행인 점은 나는 흉내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애니메이션이나 책 또는 영화를 좋아했던 탓일까? 거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드라마틱하게 부각된 특성들은 흉내쟁이가 되기로 한 나에게는 완벽한 길라잡이였다.

당연하게도 유약한 나는 강한 어떤 것들을 흉내내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나의 흉내가 통했는지 주변의 인물들로부터 강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외벽부터 세워놓고 시간을 벌어 나는 나의 내면공사를 하는 작업을 했다. 보호색으로 마는 한계가 있으니 어느 날이어도 좋으니 내가 원하는 어떤 강함에 도달하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살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여러 진짜 강해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투박하게 강한 사람, 부드럽게 강한 사람, 유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강한 사람. 그리고 강함중에서도 어느 강함의 단점도 보기 시작했다.


노자의 도덕경이었던가?(확실한 정보는 아니다) 그런 문구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나무가 너무 억세면 태풍에 부러지고, 바람에 맞춰 흔들리는 갈대만이 다시 일어난다고.

생각과 의지가 너무 강하면 수용하는 태도가 떨어지고 고집이 생겨, 생각자체가 고인 물이 될 수 있겠다는 경험을 했다. 아마 할아버지를 보며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인가 어떤 새로운 의견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흉내를 나의 보호색에 추가했다. 이 보호색은 나랑 너무 잘 맞아서, 누군가의 새로운 의견이나 다른 관점을 듣는 것이 좋아하게 되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네 생각은 어때?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그땐, 물론 때때로 의견충돌이나 의견이 달라 누군가와의 대화가 결론이 안 나고 끝나는 경우도 많았지만, 생각의 공유라는 게 항상 결론이 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애초에 공유 아닌가? 교육이나 가르침이 아니지 않은가?

그때의 나의 생각과 마음은 다시 생각해도 꽤나 괜찮은 흐름이었던 것 같다. 꽤나 폭이 깊고 고여있지 않고 적당한 유속으로 흐르는 괜찮은 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하는 것이 당시의 나에게 독이 될지는 몰랐지만. 스스로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 자신을 사랑하는 정도의 칭찬을 넘어서 오만과 자만으로 번졌다.

나는 주관이 있지만 수용을 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확정하고 단언했다. 그 결과 나는 나도 모르게 더 이상 수용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집쟁이가 되었고, 강물의 유속은 느려지다 못해 바다로 흐르지 못하고 어느 시점에 고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꽤 괜찮은 수용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남들에게 오만을 떨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부끄러워지는 기간이었던 것 같다. 멀리서 큰 강을 보면, 수심이 매우 깊고 강폭이 매우 넓어서 마치 흐르지 않고 멈춰있는 것과 같다고 상대의 말에 핀잔을 줄 정도였으니, 나의 오만방자함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물이 흐르지 않으니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 마치 어딘가에 가로막힌 것 같았다. 사실은 스스로 고여있음에도. 그 쯤 되니 나는 더욱더 고집쟁이가 되었다. 실제로 나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유년시절 보호색으로부터 시작해 만든 내가 부서지는 것이 싫었다.

당시 나의 과오를 고치는 것이 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나를 미워하지 말자고만 생각했다.

때문에 나는 나와 부딪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시기질투하는 것이라 느끼고 어린아이처럼, 미운 7살처럼 굴었다.

그러나 사람은 뜻하지 않은 경험으로 반성과 깨달음을 경험하곤 한다.

그 뜻하지 않은 경험이란, 특별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일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때때로 혼자 마트에서 장을 보는 순간이라던지, 자동차에 주유를 하는 순간이라던지,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와중이라던지, 혹은 단순히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당시 그 사람이 나에게 건넨 말 때문이라 던 지.


언젠가 그 애가 차를 타고 노을을 보러 가자고 한 적이 있다.

그 애와 나는 다른 도시에 살았기 때문에 나는 지리를 잘 몰랐다. 아무튼 그 애의 차를 타고 어느 산 전망대로 드라이브를 갔다. 그날이 크게 불꽃놀이가 있던 날이었던가? 전망대 주차장을 얼마 안 되게 앞두고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차량들의 대기행렬이 이어졌고,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던 것 같다. 나에게는 아니었지만, 그 애는 나에게 노을을 전망대에서 꼭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조급함도 혼자 느꼈나 보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가 차 안에 앉아 앞뒤로 차들 사이에 껴있었을 때, 그런 말을 했었나 보다.

여기서 보는 노을이 이쁘다고, 저 사이로 보는 노을 한번 봐 봐 좋다고, 전망대위에서는 언제든 볼 수 있지만 이중 간에서 보는 노을은 지금만 보겠지 보통. 하며 그 애의 조급함을 조금 달랬던 것 같다. 실제로 노을도 좋았다.

후에 그 애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내가 한 말들이 고맙고 좋았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애의 그런 생각과 말들이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 나는 고여있는 물이 된 지 좀 된 상태였는데, 그때 그 애의 칭찬과 그 애가 나를 보고 느낀 생각들이, 자만하기 전 수용하던 나의 모습 같아서 나도 좋았다. 이 말을 해주진 못했지만 쑥스러워서 당시엔. 아무튼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런 좋은 기억들은 때때로 언제 어디서든 나만 알고 나만 소중히 꺼내볼 수 있는 것들이어서 너무 굳어질 때도 너무 유약해질 때도 그런 기억들을 꺼내서 나를 다시 다잡고 내 생각을 흐르게 해주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일인칭 단수에 보면 기억에 관한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 그렇게 기억이란 때때로 내게 가장 귀중한 감정적 자산 중 하나가 되었고 살아가기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그때 고맙다고 못해주어서 아쉽다. 희박하지만 언젠가 마주친다면 말해주고 싶다.

네가 나에게 보내준 생각과 말이 나에게 귀중한 감정적 자산 중 하나가 되었다고,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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