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양면성과 균형 잡기

중용의 기쁨

by 이수염

세상의 어느 것도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것은 없다.


나는 중용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중용, 치우치지 않고,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균형 잡힌 상태를 말한다.

살아가는 모든 부분에서 균형이란 중요하다. 그것은 신체기능에서도 식습관이나 감정과 이성사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생활과 사적인 생활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말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균형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표현이다. 균형을 보는 눈이란 어떤 사람이나 사건등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말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균형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균형이란 표현하자면 어떤 것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장단점의 조절 같은 것이다. 가령 성격으로 예를 들어보면 나는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이지만, 이러한 부분이 불균형하게 작용한다면, 무모함이나 충동적인 성격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소심한 성격은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단어가 주는 느낌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기에 부정적으로 표현하냐 긍정적으로 표현하냐에 따라 그 단어의 균형이 표현되는 것 같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균형을 보는 눈을 얻기 쉬운 환경에서 자랐다.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환경이 나에게는 불행이었다면 불행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환경이 자라면서는 중용이라는 것을 지킬 수 있게 도움이 되었다. 나의 부모님은 흔히 생각하는 부모님이라는 상징적인 단어에 잘 어울리는 분이었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겠지만, 자식을 위한 희생이나, 헌신 무한한 애정을 쏟아주는 것. 그러한 것들이 깊이 느껴지는. 나의 부모님이 그러한 분들이었다. 그에 반해 부모님의 부모님, 다시 말해 우리 아버지의 부모님들은 그렇지 못했다. 살아온 시대가 그렇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표현을 잘하는 부모님이 어디 있겠냐 마는. 특히 나의 조부, 할아버지는 나의 부모님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부모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자식을 대하는 두 부모의 대조적인 모습을 한 공간에서 겪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하나의 스크린에서 마치 두 가지 장르가 섞인듯한 영화를 보고 있는 듯, 모순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애초에 '부모'라던지 '사랑'이라는 단어를 어느 한쪽의 결로 느끼지 못하게 하였다. 부모라는 같은 입장에 있어도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른 모양새의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으로 나는 '부모님의 사랑처럼'이라는 표현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부족한 표현이다. 나에게는 헌신적인 부모의 사랑 이라던가 무관심한 부모의 사랑처럼 부모라는 단어 앞에 그 부모가 어떠한 부모인지 수식어가 붙는 것을 개인적으로 더 자연스럽게 느낀다. 때문에 나는 단어라던지 감정이라던지의 사물등의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에 이중성을 부여하고, 그 각각의 것들에서 균형을 찾아 살아간다. 제법 귀찮은 일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이 작업이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고 일종의 분류나 정리 같은 쾌감을 느낀다.


과학시간에 어떤 물체나 생물의 표피 따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것들의 구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어떤 구조로 어떠한 모양으로 모여있고 퍼져있고 몇 개의 어떠한 모양들이 합쳐져 구성하고 있는지, 나에게 뭔가의 양면을 보고 균형을 찾는 것은 거의 그런 작업이다.

우리는 살다 보며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고 절망하거나 희망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거나 증오를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 나 자신이 볼품없고 초라하게 느껴져, 만약 나라는 인간은 왜 자신감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생각의 이중성을 부여하고 들여다보며 나를 아프게 만드는 감정들과 생각들에 균형을 찾는 작업을 권한다. ' 나라는 인간은 매우 신중한 인간이구나.'라고 나를 다독여 용기를 내자. 신중한 사람인만큼 이번만큼은 덜 신중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의 균형을 맞춰보자.


산을 오르다 문득 어느 지점에 멈춰 서서 주변에 있는 각양각색의 아무 돌멩이들로 조심조심 균형을 맞추며 돌탑을 쌓고 소원을 빌듯, 우리도 살아가며 내가 가진 감정들과 장단점들의 돌멩이로 소중한 손짓으로 조심스럽게 균형을 맞추며 각자의 돌탑을 쌓아가자. 그렇게 산행을 지속하다 보면 곳곳에 쌓여있는 돌탑들이 내가 걸어온 길들을 더 다채롭게 만들고, 누군가 숨을 돌릴 때 내가 곳곳에 쌓아온 돌탑들을 보고 또 그들은 그들만의 돌탑을 내 탑 옆에 소중하게 쌓아 올릴 것이다. 그렇게 내가 걸어온 길은 나에게도, 뒤따라올 누군가에게도 소중함들이 모인 돌탑들이 모여있는 길이 되어 누군가의 길잡이가 될지도 모른다.


#일상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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