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항해일지
오전 4:38
어떤 날은 그렇지 않았지만, 오늘은 그랬다.
그것은 어쩌면 날씨와도 관계있을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피곤해서였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기분이다.
좋은 기분? 나쁜 기분? 좋은 기분은 행복인가 환희인가 아니면 즐거움일까
또 나쁜 기분은 절망일까 슬픔일까 혹은 분노일까?
기분이란 무엇일까? 문득 드는 의문에 찾아보니 ,
기분이라는 것은 어떤 순간에 느끼는 전반적인 마음상태나 감정의 분위기라고 쓰였다.
분위기, 그렇다면 기분은 어떤 하나의 특정 감정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나의 톤에 가까운 것이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무지개를 알고 나서의 시점이다.
당시 소년시절의 나는 미술 시간에 무지개를 그린적이 있는데,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크레파스로 스케치북 어딘가에 무지개를 표현했다. 보통 하늘에 있다고 여겨지니까 아마도 스케치북 상단에 그렸을 거라. 7가지 색으로 칠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
문득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지개 각각의 색의 경계가 이렇게 분명하게 나눠져 있던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무지개는 정말 일곱 가지 색으로 되어있는가.
빨강과 주황 그 사이에 있는 색은 없는가?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무지개가 사람의 기분 같다고 느꼈다. 밝은 색도 어두움색도 여러 개가 모두 뭉쳐있지만, 정확히 몇 개의 색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는 모르는, 그리고 각각의 색의 경계에 있는 색은 무슨 색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모르는.
때문에 우리는 기분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한다. 정확히 자신의 기분을 표현할 때는 어떤 특정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다. 하지만 그 마저도 정확한 기분을 모를 때도 많다. 가령 사랑하는 이를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한다거나, 누군가 나에게 칭찬을 해주지만, 나는 그것이 내키지 않을 때, 우리는 무지개에서 명명되지 않는 색들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러한 기분의 원천이 사람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이라는 것은 삶을 더 풍요롭게도 더욱 척박하게도 해준다. 그렇지만 날씨처럼 우리 마음대로 항상 통제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나는 살아오면서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이유인즉슨, 나는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을 소년시기에 자각하고 나서, 내 감정을 통제 아니, 정확히는 묻어두거나 외면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 때문에 나는 감정이 휘몰아치는 상황에서도 감정의 영향을 보통 사람들보다 덜 받아 보이는 사람이 되었다. 실제로 남들이 보는 나의 어떤 모습이 나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기쁜척하면 사람들은 저 사람은 항상 즐거워 보여라고 하기도 하고 설령 실제로 내가 항상 기쁜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남들의 시선은 나에게 기쁜 사람이라는 착각을 스스로 심어주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의 묻어둠은 유년기와 성장기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될 때까지 도움이 되긴 했다. 가령 사춘기 때의 주변친구들이 당시의 어떤 개인사로 인해 엄청난 슬픔이나 심각한 고민을 할 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슬픔이나, 속상함, 실망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나에게 흐리고 궂은 날씨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감정의 묻어둠을 연습을 한 나는 맑은 날씨아래서만 지내온 사람이나 다름없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맑은 날씨지, 화창한 날씨를 유지하진 않았다. 그저 비가 안 오고 구름이 잔뜩 있는 회색 날씨가 아닌, 그냥 해도 있고 구름도 조금 있는 막 맑다고도 흐리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날씨. 그땐 그것이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가끔 좋은 음악을 듣거나, 기분 좋은 산책을 하고 싶을 때, 그럴 때 스스로 약간의 맑음을 추가하고 약간의 가랑비를 내리는 정도로 감정이 아닌 감성을 이용했던 것 같다. 참고로 감정은 자연스럽게 오는 즉각적인 것이고, 감성은 감정의 해석과 같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갑작스러운 쏟아지는 비에 우울해지거나 화가 나버린 것이 감정이고,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를 보며 마음이 차분해지거나, 시원한 마음이 든다거나, 어떤 기억을 회상하게 되는 것이 감성이다. 나의 관점에서 감정에 휘둘리는 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날씨에 영향을 받는 것이고, 감성을 느끼는 것은 오늘은 차분하고 싶을 때, 나의 기분이란 날씨에 비를 살짝 흩뿌리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비가 오는 것이 정말 싫었다. 일단 우산을 드는 것이 귀찮았다.
신발 사이로 들어오는 빗물에 양말이 젖어, 걸을 때마다 신발과 양말을 포함한 내발에서 빗물이 걸레를 돌려 짜듯 물이 나오는 기분은 정말 불쾌했다. 그렇지만 불평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아 비가 오네, ' 정도로 내 기분의 날씨를 유지했다. 성인이 된 지금 역시 비 오는 날보다 맑은 날이 좋긴 하지만, 지금은 비가 싫지는 않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에 피할 곳을 뛰어가는 사람들이라던가, 창밖을 보는 와중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창을 타고 흐르고, 맺혀잇는 빗방울을 보는 기분이라던가, 오히려 때때로 오는 비가 반갑기까지 하다.
감정의 묻어둠을 연습하며 살았던 소년은, 성인이 나는 이따금씩 감정의 홍수를 체험한다. 다행스럽게 연습의 결과로 기분이란 날씨의 영향을 매번 받지는 않지만, 감정의 홍수를 체험하고 나면, 어느 폭우나 태풍 후가 그렇듯 어중간함 없이 아주 맑고 청명하며 깨끗하다. 마음의 눈이 있다면, 흐린 눈이 갑자기 좋아진 기분이랄까.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 감정의 홍수를 체험하는 날이면, 내 안에 기르고 있는 화분들의 뿌리가 썩어버리고, 마음의 눈에 쉴 새 없이 빗물이 들와 시야를 침수시키기도 한다.
이 과정이 유독 힘들었던 시절이 나는 성인 된 후였던 것 같다. 댐에 가둬놨던 몇만 톤의 물들이 한꺼번에 방류되어 버리듯, 주체할 수 없고, 시야를 확보할 수도 없이 그저 방류되어 버린 거대한 물살에 파묻혀 휘둘렸다.
미뤄둔 숙제로 인한 감당할 수 없는 벌을 받는 것 같았다. 나는 나대로 잘 이겨낸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는데, 외면이라는 편법이었구나 싶었다. 과거의 내가 하던 감정의 묻어둠이라는 연습이 현재의 나에게 감정의 폭풍우라는 거대한 자연재해가 되었다. 현재의 나는 양껏 휘몰아치는 종말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방주처럼 고요하게 나의 내면을 누비고 있다. 막 고요를 되찾았다. 여하튼 해피엔딩이니 좋지 않은가?
감히 말하자면, 나는 과거의 나처럼 감정의 묻어둠을 행하던 이들이 감정표현이라는 것을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도 알고, 감정의 홍수 속에서 휩쓸리고 있는 사람도 그 거센 급류를 빠져나와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음 하는 마음이 분명하지만, 정확히 어떻게 하라고 알려줄 순 없다.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당신의 날씨는 당신이 제일 아니까. 간혹 인생을 항해에 비교하는 표현들이 있다.
그 표현들에 기대어 말하자면, 당신이 헤쳐나가고 있는, 혹은 휘둘리고 있는 날씨 안에서 항해하는 당신의 배의 일등항해사는 분명 당신일 것이다. 만약 맑은 날씨 속에서 순항하고 있다면, 급작스럽게 거센 폭우가 쏟아져도 괜찮다고 생각하자.
혹은 현재 당신이 폭풍우 속에서 정신없이 항해하고 있다면, 자신의 주변에 있는 당신을 사랑하는 선원들과
돛을 당기고 노를 저어보자, 없어도 괜찮다. 당신이 힘껏 기둥을 붙잡고 시야를 확보하고 버틴다면, 해는 뜨게 될 테니까. 비가 오는 것은 자연스럽고 해가 쨍쨍한 것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자신의 탓이 아니다. 그저 날씨는 변하게 두고, 날씨에 맞게 돛을 펼치고 접는 법에 집중하자.
감정이란 변화무쌍한 날씨에 자신만의 감성이란 돛을 알맞게 펼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항해를 잘할 수 있는 길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자신의 바다에서 일등항해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