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의지는 어디서 오는가?

올바른 당근, 올바른 채찍

by 이수염

해가 바뀐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하루를 경계로 급작스럽게 날이 추워졌다.

나는 양손을 파리처럼 비비며 손에 남아있는 온도에 불씨를 키워본다.

인간이 노화가 진행될수록, 생각이나 몸이 굳는 것이 당연지사지만, 작년에 컨디션 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일까? 어째 올해는 해가 바뀌는 경계를 넘는 것이 실감이 났다.

사주에는 대운이라는 것이 있는데, 개인마다 몇 해를 주기로 운세의 흐름이 바뀌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토속신앙은 물론이고, 종교도 없는 사람이지만, 대운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만큼, 25년의 끝자락부터 이상하게 정신이 맑다. 딱히 바뀐 환경은 없다. 여하튼 정신이 맑으니 모든 것을 잘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샘솟는다.

한 동안의 나는 마치 할 일을 다해 다시는 활동을 하지 않을 것만 같은 죽은화산처럼, 아무런 의지가 샘솟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새싹이 돋는 것만 같은 이번 의지가 나는 너무나도 반갑고 대견스럽다.


혹자들은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재능을 타고난다고 말한다. 그들의 말에 기대어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렇다. 내가 생각한 나의 재능은 무엇인가? 나에게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평생의 숙제 중 하나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적절한 답은 찾지 못했다. 그동안의 삶에서 하나 찾아 자랑해 보자면, 나는 죽지 않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이번에는 살려내는데 꽤 고생을 했지만.

인생이 수월하게 풀렸다고 생각한 적은 큰 틀에서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를 믿고 삶을 살아가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역시 소멸해도 다시 재생되는 의지다.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불멸의 의지다. 그래서 최근 몇 년이 나에게는 매우 척박한 대지를 혹독한 겨울 속에서 걷는 기분이었다. 생명의 씨앗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환경말이다. 하지만 역시나 나의 의지는 이러한 혹한기를 이겨내고 척박한 대지를 뚫고 싹을 틔운다. 여간 대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나를 지키는 나의 의지는 어디서 왔는가? 하고 스스로 자문해 보았다. 답은 스스로 탐구하는 자세가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는 철학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철학자의 저서들을 심도 있게 파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철학을 좋아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철학이라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개똥철학도 철학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개똥철학이 개똥철학이 된 이유를 짐작해 보자면, 어느 순간 질문을 멈췄기 때문 일 것이다.

감히 표현하자면, 철학의 본질은 어떠한 것에 대해 사유를 하고, 스스로 그 사유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모순점을 해결해 나가며, 해답을 찾고 자신의 세워가는 어떠한 진리나 현재 도달한 사유의 상태를 실질적으로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을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까닭으로는 나는 철학에 관한 책을 읽지 않아도 개개인이 철학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부분의 어떤 분야가 그렇듯 해당 분야의 책을 읽으면, 더욱 폭넓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이미 등불을 밝혀 놓은 길을 자신이 방향만 골라서 걷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질문을 멈추고, 맹목적으로 그 길을 따라 걷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젠가 어떤 문구를 보았는데, 다음과 같다.


' 인문학과 철학은 답을 주지 않고, 질문을 남긴다. 그 질문을 붙잡는 사람이 자기 인생을 산다. '


세상에는 수많은 명언들이 존재하지만, 결국 명언 속의 깨달음을 보는 것은 나 자신이고, 적용하는 것 또한 나 자신이다. 특히 적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르침을 주는 말들과 문장들이 있다.

그것들 중 몇 개는 서로 반대되는 문장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반대되는 두 문장 중 하나는 틀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앞서 말했듯 모두 좋은 가르침이고,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 때문에 나는 서로 다른 가르침을 비교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예를 들어 비교하자면 다음 두 문장이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


위 두 문장은 반대의 의미를 띠고 있지만, 두 문장 모두 우리에게 좋은 깨달음을 주고, 삶을 살아가면서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올바르게 적용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나는 주로 이것을 올바른 합리화와 올바른 반성이라고 표현한다. 간단히 말해 당근과 채찍을 나 스스로 적절하게 주는 것이야 말로, 자가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과도하게 자책을 하는 사람에게 채찍은 필요 없다. 마찬가지로 과도한 자화자찬하는 사람에게 역시 당근은 필요 없다. 올바른 합리화와 올바른 반성에 실패한 경우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자신을 아는 것이다.

대개 인간은 존재론적 위협을 두려워하기에,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반감이나 공포심이 있다. 그렇기에 자신을 잘 모른다면, 타인의 의견이나, 어떤 경험, 좋은 가르침이 있다 하더라도 수용하기 어렵다.

결국 자신을 알아야 타인이 주는 채찍이나 당근을 적시에 올바르게 적용하여, 내 것으로 흡수할 수 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여정 중에 하나는 나를 찾아가는 것이다. 괜히 소크라테스의 ' 너 자신을 알라 ' 라든지

손자의 ' 지피지기면 백전불패'처럼 수많은 철학자들과 위인들이 자신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겠는가?

나 역시 끊임없이 그런 여정을 하고 있다. 혹시나 그 여정을 중단하거나 잠시 발걸음을 옮기는 걸 멈췄더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여정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나의 상태에 맞게 휴식을 준다면, 다시 발걸음을 옮길 의지가 생길 것이다. 나 역시 그렇지 않은가?


나는 지금 몇 년 동안 멈춘 발걸음을 옮기는 현재가 너무 즐겁다. 자라난 의지의 싹이 너무나 반갑고, 기특하다. 자신을 찾는 여정은 결국 목적지가 다 다르기 때문에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누구보다 빠른지 느린지 비교하는 것이 무용하다. 그저 자신의 페이스대로, 웅크린 의지일 때는 휴식하고, 의지가 피어날 때는 걸음을 옮기며 꾸준히 여정을 계속 이어나가길 바란다.

나 역시 당신처럼 걷다 멈추다를 반복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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