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1일, 소년의 단상
날짜와 시간이라는 단위로 우리는 시간이라고 불리는 흐름을 명명하고 구분하고 살고 있지만, 그 때문에 우리는 시간 속에 갇혀 살고 있다.
누군가가 정해 놓지 않았다면, 나는 25년을 34살에 갇혀 지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머릿속의 말인지 기억이 흐릿한 출처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런 말을 알고 있다.
‘ 어릴 적 기억이 선명한 건 대나무처럼 생긴 시간과 시간의 마디사이를 빼곡하게 채우며, 하루를 보냈기 때문이야. 우리는 나이 들수록 이런저런 이유로 그 마디 사이를 빼곡하게 채우지 못해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고 기억은 흐릿하지.‘
출처야 어찌 됐든 나는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어린 시절 하루 온종일 놀아도 밤은 늦게 찾아왔고, 시험기간이면 엄마가 정해놓은 공부시간까지 떨어지는 눈꺼풀을 간신히 참아내며 버텼건만, 그 시간은 길고 길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리고 그것에 몸을 맡겨 현재까지 떠내려온 나의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하다. 심지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렇다. 체력을 보충할 잠이 부족하고, 건강을 챙길 운동시간이 부족하며, 심지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에도 하루가 금방 지나가 아쉽기 마련이다.
전에는 철야를 하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하는 중에는 시간이 매우 느리게 갔고, 끝나고 나서의 시간은 몹시도 빠르게 지나가 다음날이 되어버리니까.
그래서 문득 좋아하는 것을 하는 시간과 싫어하는 시간에 흐름을 다르게 느끼는가 싶었지만. 그런 것은 또 아닌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좋아하는 것만 온종일 해도 밤은 늦게 왔고, 그때 하루가 지나감이 아쉬웠던 것은 시간이 빨라서가 아니라 내 넘치는 에너지가 원인이었다고 본다.
25년의 마지막날 새벽부터 이런 하소연을 하는
것은 나의 대나무 마디 사이사이가 아쉬워서이다.
후회는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마디마디가 빈 채로 지나갈수록 ‘ 좀 더 채워볼걸 ’ 하며 후회 비슷한 것을 한다. 방법이 없는 걸 알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나는 새로운 시간이 나 역시 몹시 기대된다. 나는 적시에 합리화를 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런 경우가 바로 지금이다.
나는 누군가 명명하고 만들어낸 단위인 25년, 34살에 갇혀 지냈지만, 다음 마디인 26년, 35살에는 그저 흘러감이 아닌 최대한 브레이크를 연달아 밟으며, 빼곡하게 채워 나갈 것이다. 물론 숱한 새해 다짐 정도로 끝날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떠한가?
지금 이 순간의 나는 하루 온종일 놀아도 시간마디를 빼곡히 채우는 그 시절 소년과 다르지 않다.